X

[25th SRE][WORST]몰표없다 안심 말라…꼼꼼해진 시장의 눈

박수익 기자I 2017.05.30 07:06:00

기업별 등급수준 적정성(워스트레이팅) 설문
대한항공·SK해운 신용등급 이견 가장 많아
롯데 계열사 우려↑…산은캐피탈 등급 `거품`
포스코대우·효성 등급은 저평가됐다는 의견

SRE가 조사하는 기업별 등급수준 적정성 설문(워스트레이팅)은 신용평가사가 매긴 신용등급이 기업 펀더멘털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묻는 것이다. 주식시장으로 따지면 애널리스트의 `매수`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는 작업. 그래픽 속 기업들은 이번 워스트레이팅에서 많은 지적을 받은 곳이다.


[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이데일리 신용평가 전문가설문(SRE) 항목 중 하나인 기업별 등급수준 적정성 설문(워스트레이팅·Worst Rating)은 회사채를 분석·운용하는 시장전문가들이 봤을 때 신용등급이 기업 펀더멘털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묻는 것이다. 주식시장 리포트로 따지면 애널리스트는 매수 추천했지만 펀드매니저나 개인투자자들은 해당 종목에 ‘거품’이 끼어있어 더 이상 사고 싶지 않다거나 보유물량도 팔아버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논리다. 바라보는 대상이 주식이냐 채권이냐의 차이인데 주식은상장할 때나 유상증자를 제외하면 해당회사에 직접 들어가는 자금이 없는 반면 채권은 기업의 상시적인 자금조달 창구이다.

◇SRE는 왜 워스트레이팅을 선정하나

원금보장기능이 없는 주식과 달리 채권은 기업이 애초 약속한 조건대로 원리금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 판단해야한다. 원리금 지급능력이 가장 확실한 AAA부터 채무불이행을 의미하는 D까지 일련의 알파벳 기호로 표기하는 것이 신용등급이다. 이 알파벳 기호가 원리금 지급 보증을 ‘약속한다’는 법적 효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과 투자자를 연결해주는 가교이자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더욱 정교하고 독립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이데일리가 SRE를 통해 신평사 등급 신뢰도를 평가하는 배경이자 워스트레이팅 설문을 진행하는 이유이다.

2005년부터 연 2회씩 실시해 올해 25회째를 맞은 SRE는 지난 12년간 신평사가 내놓은 신용등급에 거품이 끼어있음을 지적했고 STX, 동양, 금호, 웅진, 대한전선,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많은 기업의 신용위험을 선제적으로 경고했다. 이를 통해 신평사에게 세밀한 분석을 촉구하는 동시에 해당기업에도 결단력 있는 재무구조 개선에 나설 것을 촉구해왔다.

◇‘몰표’ 없다고 신용위험 낮아졌다는 의미 아니다

다만 최근 수년간 신용평가사들이 기업신용등급을 잇따라 강등하면서, 등급을 올리는 숫자보다 내리는 숫자가 더 많은 하향 우위 기조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금융위기 이후 수년간 지속한 연쇄 부도기업 후폭풍도 지나가면서 대형 신용사건을 일으키는 기업도 잦아들었다. 이 때문에 개별기업의 등급 적정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크레딧시장 전문가들의 의견도 어느 한 기업에 집중되지 않고 나뉘는 흐름이 최근 2년여에 걸쳐 나타났다.

25회 SRE 워스트레이팅 설문도 이러한 추세를 이어받아 몰표를 받은 기업은 없었다. 워스트레이팅에서 몰표를 받는다는것은 해당기업의 신용위험 우려가 집중된다는 의미인데 이러한 집중 현상은 완화됐다. 그러나 시장 의견이 한쪽에 쏠리지 않는다고 해서 기업들의 신용위험도 낮아졌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25회 SRE는 워스트레이팅에 단골로 올랐던 기업들에겐 여전히 안심해선 안 된다는 시그널을 전했다. 동시에 그동안 크레딧시장의 관심 밖이었던 기업들을 소환해 꼼꼼하게 옥석을 가렸다. 신평사들이 뚜렷한 근거 없이 키맞추기식 등급평정을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워스트레이팅 후보군은 ‘AAA’와 ‘BBB’ 사이의 투자적격등급을 보유한 기업 가운데 40개 안팎의 후보군을 선정한다. 응답자들은 후보군 가운데 5개 이내로 선택할 수 있다. 25회 SRE 워스트레이팅 조사 결과 상위 30위 득표 현황이다.


◇대한항공 우려 줄었지만 안전지대 아냐

이번 설문에 참여한 유효응답자(회사채업무경력 1년 미만 제외) 151명 중 29명이 대한항공(BBB/BBB+)·한진(BBB+)의 신용등급에 이견이 있다고 손을 들었다. 득표율로는 19.2%인데 이는 지금까지 25회째 이어진 SRE를 통틀어 워스트레이팅 1위기업의 득표율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다.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대한항공을 둘러싼 신용위험 우려가 이전보다 잦아들었다는 점과 그렇다고 여전히 안심할 상황도 아니라는 점이다.

1년에 두 차례 실시하는 SRE는 작년 10월 설문부터 등급적정성과 함께 등급 방향성도 물어보고 있다. 기업 신용등급이 크레딧시장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고평가됐는지 반대로 지나치게 저평가돼 등급(전망)을 올려줄 필요가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하는 과정이다. 과거 신용등급 거품론이 제기되던 시기와 달리 지금은 등급 적정성에 의문을 가지는 시각이 무조건 ‘고평가’를 의미하는 것이아닐 수 있다는 시장 상황을 수용한 설문방식이다. 신용평가회사마다 등급이 다른 ‘스플릿’ 상황에서 어느 신평사 등급이 시장컨센서스에 부합하는지 살펴보는 의미도 있다.

대한항공은 신용등급 스플릿 상황이다. 한기평은 작년 12월 대한항공 신용등급을 BBB+(부정적)에서 BBB으로 강등했다. 한신평과 NICE신평은 이보다 한 단계 높은 BBB+를 제시하면서 등급전망만 부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크레딧시장 전문가들은 한기평 등급이 타당하다고 봤다. 대한항공 신용등급 적정성을 지적한 29명은 크레딧애널리스트 8명,채권매니저·브로커 21명인데 이중 매니저 4명을 제외한 25명은한기평이 부여한 등급(BBB)이 적정하다고 답했다.

한기평은 “저비용항공사와 외국항공사 시장진입이 본격화하면서 대한항공의 시장지배력이 약해진 가운데 유가·환율·금리 등 대외변수로 실적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며 “한진해운 추가지원 가능성은 일단락됐지만 이 과정에서 평판 훼손이 있었고 LA호텔 투자 등 계열리스크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또 경쟁력 유지를 위한 항공기 투자도 이어지기 때문에 영업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무거운 빚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SK해운 신용등급 이의제기 급증

SK해운(A-) 신용등급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크게 늘었다. SK해운은 작년 10월 조사에서는 득표수 16위 수준이었으나 이번 설문에서 네 번째로 많은 지적을 받았다. 워스트레이팅은 순위가 낮아야 해당 회사에 좋다. SK해운 등급에 이의제기한 24명 중 채권매니저 1명을 뺀 23명은 지금보다 등급이 내려가야 한다고 답했다.

현재 신용평가사 3사는 SK해운에 똑같은 신용등급을 부여했지만 등급 전망은 안정적(한신평)과 부정적(NICE신평·한기평)으로 엇갈린 상황. 크레딧시장 전문가들이 부정적 전망에 무게를 실어준 것이다.

SK해운은 최근 재무구조 개선과 해운 사업 경쟁력 강화차원에서 회사분할을 단행했으나 불투명한 해운업황과 투자부담을 감안하면 현 신용도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게 시장 목소리다.

◇현금부자 롯데 신용도 균열 생길까

롯데그룹 주력계열사 롯데쇼핑(AA+)·호텔롯데(AA+)도 23표를 받아 여섯번째로 많은 지적이 나왔다. 이 회사들은 2015년 상반기(21회)부터 워스트레이팅 후보군에 올랐는데 초반에는 크게 눈에 띄는 수준은 아니었으나 최근 크레딧시장의 우려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작년 하반기 설문때 공동 7위에 올랐고 이번에는 한 계단 더 상승했다. 신평사가 매긴 신용등급에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답한 시장전문가 23명 모두 하향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3명에는 크레딧애널리스트 12명도 포함돼 있다.

40개 워스트레이팅 후보군 가운데 크레딧애널리스트만 따져보면 롯데 계열사를 하향조정 1순위로 꼽았다. 오랫동안 ‘현금부자’ 소리를 들어온 롯데이지만 최근 영업실적이 정체기를 걷고 있는데다 지배구조 잡음, 해외사업 부진, 사드보복 우려감이 더해지면서 신용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신용등급 뒤에 부정적 등급전망이 달려있는 대신에프앤아이(A+)도 18표를 받았다. 이 회사는 1조원 규모로 예상되는 서울한남동 외인아파트 개발 사업을 진행 중인데 사업경험부족, 자금조달, 수익성 우려를 받고 있다.

◇산은캐피탈 계속된 등급 거품논란

단골손님들도 워스트레이팅 상위권 자리를 지켰다. 응답자 25명이 산은캐피탈(AA-) 신용등급에 이의를 제기했고, 25명 전원 하향조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하향조정 숫자만 따지면 대한항공과 함께 공동 1위. 산은캐피탈의 현 등급은 모회사 산업은행(AAA) 유사시 지원 가능성으로 독자신용등급(자체신용도)보다 최소 1단계 높은 평가를 받는 상황이다. 민낯은 A급이다.

산은캐피탈 매각 이슈가 온전히 잠재워졌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다른 캐피털회사보다 고평가돼 있다는 것이 크레딧시장전문가들의 일관된 시각이다.

이랜드리테일(BBB)·월드(BBB-/BBB) 신용등급도 25명이 지적했다. 이중 23명은 하향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두산중공업(A-)·인프라코어(BBB-/BBB)는 21명이 지적했고 19명이 하향조정 필요성을 언급했다.

작년 하반기 조사와 비교하면 이랜드그룹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고 두산그룹을 향한 우려는 잦아들었다. 이랜드는 재무구조 개선의 핵심 리테일 기업공개(IPO)를 연기하며 ‘플랜B’를 꺼내들었고 두산은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으나 밥캣 IPO를 완료했다. 시장과 약속한 재무개선 로드맵을 정상적으로 이행했느냐의 차이다.

◇신평사 부담 덜려고 등급 키 맞추나

현대중공업(A-/A)과 삼성중공업(BBB+/A-) 신용등급에 이의제기한 응답자도 각각 15명, 22명이었는데 세부 결과가 흥미롭다. 현대중공업은 15명 중 6명이 상향조정해야한다고 답했고 삼성중공업도 22명 중 5명이 같은 의견을 냈다.

워스트레이팅 조사는 하향조정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대세다. 특히나 이들은 업황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조선업종이라는 점에서 상향조정 의견이 다수 나온 것은 이채롭다. 신평사의 획일적인 등급평정에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란 해석이다. 한 크레딧애널리스트는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이슈가 불거지자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 등급을 떨어뜨렸는데 신평사 스스로 확신도 없으면서도 부담을 덜기 위해 특정 산업 이슈가생기면 키맞추기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포스코건설·에너지 낮춰야…GS건설 등도 하향 우위 의견

포스코그룹 비주력계열사를 향한 크레딧시장 우려도 지속됐다. 포스코건설(A+)은 17표를 받았는데 전원 하향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나왔다. 이 회사 등급 뒤에는 현재 부정적 전망이 붙어있다.

신평사간 등급 스플릿 상황인 포스코에너지는 11표를 받았는데 응답자 모두 낮은 등급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한신평과 NICE신평은 AA-(안정적), 한기평은 한 단계 높은 AA(부정적)을 부여하고 있다.

이밖에 GS건설(15표 중 하향 14표), 대우건설(12표 중 하향11표), 동두천드림파워(10표 모두 하향), 한국캐피탈·JB우리캐피탈(9표 모두 하향), E1·LS네트웍스(9표 모두 하향), 아시아나항공(9표 중 8표 하향), 하이트진로(9표 중 8표 하향) 등도 하향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법 많았다.

AA급 LG전자도 10표 중 7표가 하향조정이 옳다고 했고 스플릿 상황인 효성캐피탈(A-/A)은 7명 전원 하향조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애큐온캐피탈(A), SK건설(A-), 평택에너지 서비스(A-/A)도 각각 7표, 5표, 5표 씩 등급을 내려야 한다는 답변이 나왔다.

◇포스코대우·효성 상향의견…신평사 설문후 현대로템 올려

포스코대우 신용등급은 24명이 지적했는데 17명이 상향조정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회사 등급은 AA-(한신평·NICE신평), A+(한기평) 스플릿상황에서 설문을 진행했다. AA-등급이맞다고 본 시장참여자가 17명이고 A+가 타당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7명이란 의미이다.

효성 신용등급도 17명이 이의제기했는데 이중 15표가 상향조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손을 들었다. 효성은 작년 10월 조사에서도 상향조정 의견이 많았다. 당시 설문은 신용등급이 A(긍정적)인 상황에서 진행했고 설문 이후 한신평과 NICE신평은 A+(안정적)로 높였다.

이번에는 등급이 한 단계 올라온 상황에서도 추가 상향 의견이 다수를 차지한 것이다. 포스코대우와 효성은 크레딧애널리스트와 채권매니저그룹에서 고르게 상향 의견이 나왔다.

CJ CGV(A+/AA-)도 상향의견이 하향의견보다 1표 많았다. 11명이 선택했는데 상향 6명 하향 5명이다. 상향 6명은 채권매니저 5명과 크레딧애널리스트 1명.

현대로템(A)도 9명이 선택했는데 이중 7명이 상향조정이 타당하다는 이유로 손을 들었다. 현대로템은 설문 당시엔 등급전망에 부정적 꼬리표가 달려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설문이 끝난 이후 국내 신평3사는 4월말~5월 중순에 걸쳐 현대로템 등급전망을 안정적으로 일제히 올렸다.

SRE는 작년 하반기 조사부터 등급적정성과 함께 등급 방향성도 물어보고 있다. 기업 신용등급이 크레딧시장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고평가됐는지 반대로 지나치게 저평가됐는지 한 번 더 확인하는 과정이다. 25회 SRE 조사결과 하향조정 의견이 많은 상위 30개사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