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블리자드의 이중성

김무연 기자I 2020.06.13 10:00:00

블리자드, 조지 플로이드 항의 시위 지지 천명
반면 홍콩 시위 알린 게이머 블리츠청 중징계
주요 시장 중국 눈치 보며 홍콩인 인권 무시한단 비판
농구스타 르브론 제임스도 선택적 올바름에 구설수

[이데일리 김무연 기자] “모든 동물이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조지 오웰’이란 필명으로 알려진 영국의 작가 에릭 아서 블레어의 작품 ‘동물농장’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평등을 주장하는 자들이 자신은 평등하지 않게 특권을 누리는 위선적인 삶을 합리화하는 사람에 대한 비판을 닮고 있다.

유명 게임업체 블리자드 인권 문제에 대한 ‘선택적 올바름’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선택적 올바름이란 비슷한 상황에 대해 자신이 도움이 될만한 데에는 그 방향성을 지지하지만 도움이 되지 않거나 피해를 받을 수 있는 경우에는 지지가 아닌 비판을 가하는 경우를 뜻한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는 미국 시민들(사진= AFP)
지난달 25일 미국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시에서 20달러 위조지폐 사용 신고를 받고 출동한 백인 경찰 데릭 쇼빈이 비무장·비저항 상태의 흑인 용의자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하던 과정에서 무릎으로 목을 눌러 질식사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비무장이었던데다 경찰의 명령에 순순히 따랐던 플로이드가 살해당하면서 미국 전역에는 항의 시위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사람들은 ‘흑인들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란 구호를 외치며 광장으로 나왔다. 시위대 중 일부는 상가를 공격해 대규모 약탈과 방화가 일어나는 등 미국 사회는 여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BLM 운동은 미국을 넘어 국가, 인종, 계층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리오넬 메시 등 스포츠 스타들도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검은 화면을 올리며 BLM 운동에 동참했다. 게임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글로벌 최고 게임사 중 하나로 꼽히는 액티비전 블리자드도 지난 1일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흑인 사망 사건 항의 시위’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블리자드의 플로이드 사망 사건 항의 시위를 지지한다는 글에 ‘홍콩은 빼고’라는 글을 남긴 게임 개발자 마크 컨(사진=마크 컨 트위터)
그러나 블리자드에 돌아온 것은 비판과 조롱이었다.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2의 개발에 참여하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총괄 프로듀서로 활동했더 마크 컨은 블리자드의 시위 지지 공식 표명 입장글을 게시하며 ‘홍콩은 빼고’라는 말을 남겼다. 게이머들의 반응도 호의적이지 않다.

블리자드에 비아냥이 쏟아지는 까닭은 회사의 이중적 태도 때문이다. 블리자드는 흑인 인권 문제에 앞장서 지지를 표명했지만 중국 정부가 홍콩을 탄압할 때에는 별다른 입장을 취하지 않았고 외려 홍콩을 지지하는 게이머에게 출전 정지 등 중징계를 내린 선례가 있다.

2019년 10월 7일 하스스톤 마스터즈 아시아·태평양(APAC) 지역 시즌2 마지막 경기에서 하스스톤 프로게이머 ‘블리츠청’(Blitzchung)이 경기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방독면을 쓰고 “광복홍콩! 시대혁명!”이란 말을 외쳤다.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 시위로 시작된 홍콩 민주화 운동의 주요 구호 중 하나다.

이에 하스스톤 개발 및 서비스를 담당하는 블리자드는 그랜드마스터 박탈 및 상금 몰수, 1년 간 출장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인터뷰를 진행한 캐스터 두 명을 해고했으며, 이를 공지한 하스스톤 홈페이지 공지란의 댓글을 막고 해당 대전의 VOD 역시 삭제했다.

블리츠청(Blitzchung)이 홍콩 시위 지지를 위해 방독면을 쓰고 발언을 하는 모습(출처=유튜브)
블리자드는 ‘공공을 불쾌하게 하고 블리자드의 이미지를 손상했다고 판단되는 행위를 할 경우 그랜드마스터에서 배제하고 총 상금 0달러를 만들 수 있다’는 규정을 적용했다고 해명했지만 중국 정부를 의식한 것이란 비판이 강하게 제기됐다.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중국 시장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 콜 오브 듀티 모바일을 텐센트의 자회사와 공동 개발하는가 하면 디아블로 이모탈의 개발을 중국 업체 넷이즈에 맡기도 했다. 중국 정부와 각을 세웠다가 게임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른 중국에서 자사 게임을 발매하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홍콩 시위에 대해선 강경 대응을 했단 분석이다.

비판이 거세지자 블리자드는 블리츠청의 출장정지 기간을 6개월로 단축하고 상금도 돌려줬다. 그러나 ‘하스스톤 대학부 챔피언십’ 경기 중 미국인 대학생 게이머 3명이 블리츠청에 대한 연대의 표시로 경기장에 “홍콩을 해방하고 블리자드를 보이콧하라”는 간판을 내걸자, 블리자드는 또 이들에게 6개월 출전정지 조치를 강행했다.

이미 미국 내에서는 이러한 선택적 올바름 문제가 지속적으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미국 농구계의 거물인 르브론 제임스는 평소에도 운동선수는 사회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한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난하는 등 진보적인 발언을 해왔다.

그러나 휴스턴 로켓츠의 데럴 모리 단장이 ‘홍콩 시위를 지지한다’는 트윗을 올리자 ‘교육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비난해 큰 비판에 직면했다. NBA가 중국 자본에 휘둘리고 있는데다 르브론 제임스 자신 또한 중국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이런 선택적 올바름을 두고 미국 내의 논쟁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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