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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가]"시대의 흐름 속에서 전통문화 이해해야"

송주오 기자I 2017.11.15 06:05:00

이효재 한복 디자이너 겸 보자기 아티스트
전통문화 강의하며 '조선의소반, 조선도자명고' 다시 읽어
한국근대문화 유산 보존 프로젝트 '오래가게' 참여

이효재 한복 디자이너가 10일 서울 종로구 자택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신태현 기자)
[이데일리 송주오 기자] 최근 경복궁 등 고궁에서 한복을 입고 다니는 젊은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한복은 명절을 제외하고는 찾지 않는 전통 의상이었다. 고궁 주변으로 알록달록한 색채의 한복을 빌려주는 대여소가 생기면서 일어난 변화다. 하지만 전통 한복의 정신과 가치를 훼손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제대로 된 한복이 아니란 이유에서다.

◇“전통을 틀 안에 가두지 말라”

지난 10일 만난 이효재 한복 디자이너는 한복 논란에 대해 비교적 명쾌하게 답을 했다. 그는 “20대 안팎의 젊은이들에게 전통 한복을 입으라고 하면 디자인이나 높은 가격 때문에 주저할 것”이라며 “전통 한복을 고집할 게 아니라 변화한 사회와 시대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통이란 세상의 생활양식에 맞게 변형돼 소화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이 디자이너의 철학은 최근 그의 사무실 ‘효재’를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서 광화문으로 옮기면서 다시 한 번 실천됐다. 그는 “성북동에서의 삶은 고즈넉하고 조용한 맛이 있었는데 광화문으로 오니 생동감이 넘친다”며 “손님들도 교통이 편리하다며 만족해한다”고 전했다. 성북동 시절엔 유명 사찰인 길상사과 더불어 그의 사무실이 관광 명소였지만 교통이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런 불편함을 이기고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있지만, 이 디자이너는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교통의 요충지로 이동했다. 유명 관광지라는 이점을 과감히 버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유연한 사고방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효재 디자이너가 추천한 ‘조선의 소반, 조선도자명고’
그는 명망 높은 디자이너이면서 동시에 유명한 독서광이다.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이동할 때 틈틈이 책을 읽는다고 한다. 어린 시절 숫기 없는 성격 탓에 친구들과 교류가 적었던 그가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도구가 책이었기 때문이다. 독서가 습관처럼 굳어졌다.

독서량이 감소하고 있는 현 사회를 그는 어떻게 볼까.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19~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15년 평균 9.6권이던 연간 평균 독서량이 2016부터 최근 1년간 8.7권으로 줄었다. 2016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한국인의 생활시간 변화’에 따르면 10세 이상 국민의 평일 기준 독서 시간은 6분으로 하루 10분 이상 책을 읽는 사람은 10명 중에 1명도 안 된다.

대답은 의외였다. 이 디자이너는 “대나무에 기록하던 것이 종이로 옮겨갔고 이제는 전자기기로 이동했을 뿐”이라며 “‘읽는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전통문화’에 빠진 일본인…조선 소반의 美를 일깨우다

그런 그가 추천한 책은 ‘조선의 소반, 조선도자명고’(1996, 아사카와 다쿠미)다. 이 책은 조선의 소반이 가지고 있는 미적 가치와 이를 토대로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한다. 책의 저자인 아사카와 다쿠미는 1914년 일본에서 조선으로 건너와 1931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조선에서 묘목을 기르는 업무를 하다가 조선의 민예품에 빠져 ‘조선민족미술관’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조선의 소반, 조선도자명고’는 실상 두 권의 책이다. 지은이인 다쿠미가 출판한 ‘조선의 소반’(1929년), ‘조선도자명고’(1931년)를 각각 출판했기 때문이다. 두 권의 책에는 기물의 종류와 명칭, 만드는 도구 및 재료, 가마터 등이 상세히 기술돼 있다.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는 현재 서울 중랑구 망우동 공동묘지에 안치돼 있다.

다쿠미와 이 디자이너는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킨 인물이란 점에서 연결된다. 이 디자이너는 보자기 아티스트라고 불린다. 보자기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올려놓았다. 세계 각 국을 돌며 보자기를 알리고 있으며 지난 2010년엔 일본 도쿄돔의 5만명 관중 앞에서 보자기 아티스트를 시연한 적도 있다. 지금도 국내를 방문하는 VIP들의 선물 포장을 맡고 있다.

사실 이 디자이너는 젊은 시절 ‘조선의 소반, 조선도자명고’를 완독했다. 그러다 전통문화 강연이 늘면서 책장에서 다시 꺼내 읽기 시작했다는 그는 “과거엔 단지 교양서적 중 한 권으로서 접했다”며 “하지만 다시 읽으니 과거엔 느낄 수 없었던 재미를 찾게 됐다”고 평했다. 어떤 사람이 소반을 받았을지, 어떤 음식이 놓였을지, 계절은 어떠했으며 지역은 어디인가 등등의 궁금증이 샘솟으며 그 당시로 돌아가는 기분이라고 전했다.

이효재 한복 디자이너가 10일 서울 종로구 자택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사진=이데일리 신태현 기자)
소반에 주목한 그는 현 삶에서도 이를 적용하고 있다. 소반에서 음주를 즐기던 선비들의 음주 문화를 실천하고 있는 것. “예전 선비들은 도포가 길어 남에게 술을 따라주지 않고 본인이 스스로 마셨다”며 “효재에서 음주를 즐길 땐 각자 한 병씩 본인의 속도에 맞춰 마신다”고 웃으며 말했다.

‘조선의 소반, 조선도자명고’에서 출발한 얘기는 서울시의 근대 문화 보존 사업으로 이어졌다. 그는 올해 서울시와 손잡고 ‘오래가게’ 39곳을 선정, 이를 소개하는 책자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시는 9월 ‘오래가게’ 39곳을 선정해 발표했다. ‘오래가게’는 ‘오래된 가게가 오래 가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식 표어인 ‘노포’를 대체하기 위해 시민공모를 통해 선정됐다. ‘오래가게’ 프로젝트는 도시 이면에 감춰진 오래된 것들의 가치와 오래된 가게만이 가진 매력·이야기를 알리기 위한 특별 관광 콘텐츠다.

‘오래가게’로 선정된 곳을 살펴보면 조선 철종 때부터 지금까지 156년간 전통을 지키며 조선왕실의 전통 금박공예 기술을 이어오고 있는 ‘금박연’, 46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만나분식’, 2대에 걸쳐 맥을 이어오며 프란치스코 교황,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부 등 국내외 국빈들이 찾은 ‘명신당필방’ 등으로 근대한국문화의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 디자이너는 “‘오래가게’ 프로젝트에서 사진 한 장과 함께 시 한 줄을 적고 있다”며 “유럽 못지않은 전통과 의미를 지난 장소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꽃·케이크 대신 ‘책’ 선물 어때요

그에게 있어 책은 독서의 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직접 책을 출판하며 지식과 지혜를 공유하는 창이기도 하다. 이미 ‘나는 치마 저고리가 좋아’(2008년)를 시작으로 ‘열두 달, 효재처럼 2010’, ‘효재처럼 손으로’, ‘효재처럼 보자기 선물’ 등 20권의 책을 출판했다.

독서왕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는 꽃과 와인, 케이크 등을 선물하는 것이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 잡은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이 디자이너는 “와인이나 케이크를 주고받는 문화가 보편화한 것은 몇 년 안 됐다”면서 “책을 선물함으로써 마음의 안식을 공유하고 여유로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29권의 책을 더 출판해 총 49권의 책을 낼 계획이다. 왜 하필 49권일까. 여기에는 재미난 이유가 있다. ‘4’는 죽을 사(死)와 유사한 발음으로, ‘9’는 악재(惡災)가 깃들었다고 여겨 기피하는 숫자다. 이 디자이너는 사회의 금기시 되는 부분을 타파하고자 49권으로 정했다고 전했다.

이효재 한복 디자이너가 10일 서울 종로구 자택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사진=이데일리 신태현 기자)
▷이효재 디자이너는

1958년생으로 국내에 보자기 아티스트라는 독창적인 길을 개척했다. 독창적인 보자기 매듭으로 보자기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올려놓았다. 보자기 하나로 전 세계를 누비며 한국의 미(美)를 알리고 있다. 그는 전통문화 알리기에 앞장선 공로로 올해 한국직업능력개발원으로부터 전통생활문화부문 명인으로 지정됐다. 한복 디자이너로도 유명한 그는 1986년 ‘효재 한복디자이너’를 론칭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드라마 ‘왕의 여자’, ‘영웅시대’ 등의 의상 제작에 참여했다. 또 LG하우시스와 협업해 친환경 벽지를 제작했으며 롯데호텔에서는 특별메뉴를 선보이는 등 전통문화와 자연을 지키고 알릴 수 있는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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