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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은의 지구 한바퀴]⑭엘찬텐, 구름 속 `피츠로이`

김재은 기자I 2015.08.29 06:00:00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칼라파테 린다비스타에서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엘 찬텐(El Chanten) ‘피츠로이(Fitz Roy)’다.

Caltur 버스를 타고 두어시간갔을까. 터미널에서 모두 내리게 한 다음 왼쪽은 영어, 오른쪽은 스페인어로 설명을 들을 수 있다며 안내한다. 피츠로이 트레킹 구간에 대한 다양한 코스 설명이 이어진다. 대충 들었다. 어차피 우리는 캠핑을 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저 편도로 한시간 반 남짓 걸리는 전망대에서 피츠로이를 보고 올 계획인 탓이다. 아, 엘찬텐 국립공원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엘칼라파테에서 버스를 타고 2~3시간 달리면 엘찬텐에 도착한다. 사진=구글맵
짐을 찾아 터미널을 나서는데 아기자기한 엘찬텐 간판이 우리를 반긴다. 기념사진도 몇 개 찍고, 미리 예약해 둔 호텔을 찾아 걷는데, 생각보다 멀다.

간신히 물어 호텔을 찾았는데, 이런! 우리가 예약한 호텔은 현재 수리중이란다. 미안하다며 한 직원이 근처 호텔로 안내했다. 우리가 예약한 호텔보다 좀 더 비싼것 같은데 추가 차지는 없다고 했다. 체크인을 하고, 3층 방에 올라가려니 엘리베이터가 없다. 근 한달간 여행 짐이 모두 든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올라야 했다.(물론 캐리어는 신랑이 모두 옮겼다.)

간신히 3층 방에 자리를 잡으니 나가기가 귀찮다. 아무래도 아침부터 버스로 이동한 터라 점심이 애매할 듯 해 미리 싸온 샌드위치와 음료로 요긴하게 배를 채웠다.

잠시 쉬다 토레스 델 파이네와 쌍벽을 이루는 피츠로이를 보러 나섰다. 토레스 델 파이네 못지 않게 피츠로이와 세로토레가 좋았다던 후배는 피츠로이에서 오래 있으라 했지만, 우리는 큰 미련이 없었다. 1박 2일 일정으로 멀리 전망대에서 피츠로이를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피츠로이를 볼 수 있는 등산로 입구. 사진=김재은 기자
평소 15분이상 걷는 것도 질색하던 내가 어느새 ‘한시간 정도야’하는 여유있는 마음으로 바뀌어있다. 물과 바나나를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에 오른다. 들꽃도 보고, 풍경도 감상하며 천천히 걸었다. 여기선 만나는 사람마다 웃으며 “올라(Hola)!”하고 인사를 건넨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우리도 차츰 “올라~”하고 화답했다. 올라(Hola)는 스페인어로 안녕, 안녕하세요란 뜻이다. 사람들이 참 밝고 신나보인다.

등산로를 오르다보면 산들로 둘러쌓인 엘찬텐 지역을 볼 수 있다. 사진=김재은 기자
등산로 입구에서 다소 가파른 산길을 한 시간 정도 오르니 오른쪽은 피츠로이 전망대(Mirador), 왼쪽은 카프리 호수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전혀 망설임 없이 전망대로 방향을 틀었다. 20분쯤 더 걸었을까. 사람들이 하나둘 보인다. 그런데 피츠로이는 구름에 가려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사람들도 전망대에서 구름이 걷히길 기다리는 모양이다. 우리도 고목나무 한켠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금세 구름이 걷힐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좀 기다려보기로 했다.

피츠로이 전망대에 도착했지만, 야속하게도 보여줄 생각을 않는다. 사진=김재은 기자
생각해보니 이번 여행에서 마젤란 펭귄도 보고, 토레스 델 파이네도 또렷히 보고, 페리토 모레노 빙하 투어도 무사히 마쳤다. 날씨가 좋지 않아 계획된 일정이 어그러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피츠로이 하나쯤은 날씨 탓에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게 이치에 더 맞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 짧은 여행에서 파타고니아 절경을 모두 다 직접 보고 가겠다는 건 지나친 욕심이지 싶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구름이 조금 걷힐 때마다 셔터를 눌렀다. 구름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저 멀리 있는 피츠로이의 아우라는 충분히 느껴진다. 토레스 델파이네도 구름 속에 가려진 채 멀리서 봤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날씨 좋을 때 피츠로이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봉우리들. 사진=김재은 기자
우리가 서있는 전망대 높이가 750m 부근이고, 피츠로이는 무려 3375m로 전망대보다도 2600m이상 높은 산(바위)인 셈이다. 한라산이 1950m, 백두산이 2750m인 점을 생각하면 피츠로이는 정말 높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 날씨가 생각보다 춥다. 바나나를 먹고 물을 마시며 20~30분쯤 기다렸을까. 구름이 사라지기는 커녕 피츠로이는 더 많은 구름 속으로 숨어든다. 아무래도 오늘은 보지 못할 것 같아 내일 아침에 다시 올라오기로 하고 일단 철수했다.

호텔로 돌아온 우리는 카운터에 엘찬텐에서 맛집을 물어 찾아갔다. 6시가 좀 지나 도착했는데, 대기하는 사람만 5~6명이다. 레스토랑에선 지금 예약하고 8시쯤 오면 저녁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 덕에 우리는 엘찬텐 시내구경에 나섰다.

아기자기한 길을 걸으며 마트에 들러 몇가지 과자와 음료수를 샀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마그넷 등 기념품도 사고 시간 맞춰 다시 찾았다. 그리 넓지 않은 10여개의 테이블엔 사람이 꽉 차 있다.

관광객은 그리 많아보이지 않았다. 스테이크와 생선을 하나씩 시키고, 병맥주를 다른 걸로 각각 시켰다. 점심이 부실했던 터라 맛있게 배를 채우고는 호텔로 걸어 돌아왔다.

호텔에서 추천해준 엘찬텐 레스토랑. 스테이크가 제법 맛있었다. 사진=김재은 기자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창밖을 보니, 어제보다 더 뿌옇다. 구름이 더 많아지고 비도 금세 내릴 것 같다. 전망대에 다녀올지 잠시 고민하다가 미련없이 포기했다. 어제보다 더 안 좋은데 설마 보이겠냐며 좀 더 자는 쪽을 택했다. 호텔에서 주는 조식을 먹고 다시 칼라파테로 가기 위해 짐을 챙겼다.

다음날 아침 버스 타기 전에 터미널에서 수차례 찍은 사진중 그나마 피츠로이 봉우리가 나온 컷. 사진=김재은 기자
칼라파테로 다시 돌아가는 건 부에노스아이레스행 비행기를 타기 위함이다. 버스를 기다리며 그 모습을 다 보여주지 않은 피츠로이를 향해 계속 셔터를 눌렀다.

하루에 버스가 몇번 안다니는 터라 엘찬텐에서 칼라파테 이동에 하루를 잡았다. 그 덕에 린다비스타도 훌륭했지만, 좀더 비싸고 럭셔리한 디자인 스위트 칼라파테 호텔에서 1박을 하게 됐다. 이제 내일이면 파타고니아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크다.

우리가 죽기 전에 다시 와 볼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칼라파테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엘찬텐 버스터미널에 걸려있던 피츠로이 사진. 사진=김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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