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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뮤지컬 ‘베르테르’의 창작진이 다시 뭉쳤다. 공연계 스타 연출가 고선웅이 원작을 바탕으로 극작과 연출을 맡았고, 작곡가 정민선이 ‘베르테르’에 이어 실내악 편성의 음악으로 비장함을 더했다. ‘베르테르’의 제작자인 극단 갖가지의 심상태 대표는 예술감독으로 참여했다. 마치 제2의 ‘베르테르’를 꿈꾸는 작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안타까운 첫사랑을 낭만적이면서도 비극적으로 표현한 ‘베르테르’와 달리 ‘히드클리프’는 웃음기 하나 없이 비장하다. 고선웅 연출은 희극과 비극을 오가며 관객을 웃고 울리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히드클리프’에서는 웃음을 최대한 절제한다. 히드클리프의 복수가 펼쳐지는 2막은 증오로 변해버린 사랑의 어두운 단면이 끝없이 이어지며 관객의 감정까지 소진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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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히드클리프’는 원작 속 인물들은 위악적으로 그린 걸까. 프로그램북에 실린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은 소유하려 할수록 망가지는 것 같다”는 고선웅 연출의 말에서 이유를 유추해볼 수 있다. 지나친 사랑이 증오가 돼 누군가를 망가뜨리는 모습을 통해 작품은 역설적으로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다만 작품이 던지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선 두 주인공이 한없이 망가지는 모습을 참고 견뎌야만 한다.
2개의 직사각형으로 구성한 무대 세트는 단촐하다. 대신 상하로 움직이는 오케스트라 피트 무대와 회전 무대가 역동감을 더한다. 무대 좌우에 배치한 악단은 인물들의 지독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감싸는 듯 하다.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의 깊은 무대를 활용한 결말은 비극적인 사랑에 실낱같은 희망의 여운을 느끼게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0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신작’ 뮤지컬 부분 선정작이다. 공연은 7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