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규태의 코덱스] 최후의 만찬과 최후의 댄스

편집국 기자I 2020.12.10 06:00:00
[임규태 공학박사·전 조지아공대 교수] 12월은 가장 분주한 달이다. 하지만 올해는 그 당연한 일상이 통하지 않는다. 코로나 팬더믹이 지구촌을 완전히 삼켰다. 인류는 새로운 바이러스 공격에 속수무책이었고, 각국 정부는 자가격리와 거리두기 같은 고전적 전염병 대처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는 12월에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코로나 3차 대유행에 따라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2.5단계로 격상했다. 연례행사와 같았던 12월의 수많은 모임들은 모두 사라졌고 우리 앞에 놓여진 것은 관성적인 행위들이 거세된 커다란 시간의 구멍뿐이다.

코로나는 현대인의 일상적인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렸다. 이제는 만원 전철과 버스로 정시 출근하는 것이 당연시되지 않는다. 모든 팀원이 같은 시간 한자리에 모여 얼굴을 마주 보고 회의를 하지 않아도 회사가 망하지 않는다는 비밀이 공개되었다. 당연히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그럴듯한 명분의 술자리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현대인들은 유수 풀에 띄운 튜브에 몸을 맡긴 것처럼 하루하루를 생각 없이 살아왔다. 하지만 코로나는 사회적 존재로서 감당해야 했던 상당수의 관성적인 행위들을 리셋시켰다. 이제 우리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넘치는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하는 처지가 되었다. 목적 없이 흘러가는 삶에 중독된 현대인들이 감당하기에 너무 어려운 숙제다.

그 해답은 자신의 영역에서 역사를 만든 이들의 삶에서 찾을 수 있다. 대표적 인물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다. 그가 남긴 수만장의 코덱스 메모에는 미술뿐 아니라 건축, 군사, 의료 등 다양한 분야의 아이디어와 영감이 빽빽이 적혀 있다. 하지만 그의 그 많은 아이디어들 중 실제로 구현된 것은 많지 않았고, 그나마 중도에 포기한 것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왜 그는 미완성 작품이 많았을까. 그 이유는 ‘동기’의 결여 때문이다. 생각이 넘쳐났던 그는 자신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동기가 없으면 작업을 시작할 수 없었다. 어렵사리 작업을 시작했다 하더라도 완성을 차일피일 미뤘고 결국 포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동기 중독증인 그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 작품을 완성할만한 충분한 동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의 동기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작품이 ‘최후의 만찬’이다. 이 걸작이 그려진 곳은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식당이었다. 그는 식당이라는 장소에 적합한 예수와 제자의 최후의 만찬 장면을 그리는 일을 맡았지만, 사실 그 주제는 당시에 꽤나 인기 있는 주제였다. 그에겐 그 이상의 동기가 필요했다.

그는 스승 베로키오 공방에서 건축 설계를 통해 터득한 3차원 구도를 적용해서 벽화가 입체감이 나도록 구도를 잡았다. 덕분에 델레 그라치아 성당의 수도승들은 예수와 12제자들과 함께 식사하는 착시 현상을 일으켰을 것이다. 심지어 다빈치는 만찬장에 놓여 있는 음식 메뉴까지 고민했다.

그는 실험 정신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당대 미술가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프레스코가 아닌 회화에 사용되는 템페라 기법을 적용하기로 마음먹는다. 프레스코는 회벽을 바르고 그 회벽이 마르기 전에 채색을 완성해야 했다. 아이디어가 넘쳐났던 다빈치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험하기 위해 오래 작업할 수 있는 템페라 기법을 도입했다.

4년에 걸친 다양한 동기 유발을 통해 가까스로 작품이 완성되었지만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음식을 조리해야 하는 식당은 항상 고온에 습기가 가득 차 있다. 코팅한 벽에 계란으로 물감을 녹이는 템퍼라 기법으로 그린 그림이 굳을 틈이 없었다. 결국 다빈치의 걸작은 완성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벽을 타고 주룩 주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다빈치는 처음에는 복원을 시도했지만 결국 핑계를 대고 떠나버린다.

동기 부여에 집착한 또다른 천재는 마이클 조던이다. ESPN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최후의 댄스(Last Dance)’는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의 삶을 심층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시카고 불스가 NBA 5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마지막 6번째 우승하는 97-98 시즌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늘 화려한 조명을 받던 농구 황제 조던이었지만, 시카고 불스에서 활동한 마지막 1년은 시련의 시기였다. 구단주는 6번째 우승 여부와 상관없이 불스를 전면개편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불스 멤버들을 감당할만한 재정적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필 잭슨 감독은 재계약 불가를 통보받고 1년 짜리 계약으로 팀을 이끌어야 했다. 영원한 2인자 피핀은 조던에 비해 형편없는 대우를 받는 것에 불만을 품고 팀을 이탈했다. 리바운드 천재인 데니스 로드먼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마이클 조던 자신의 문제가 더욱 치명적이었다. 언론들은 그가 도박 중독이라고 몰아붙였다. 몇 해 전에는 아버지가 강도에게 살해당한 충격으로 농구를 은퇴하고 야구 선수로 활동했다. 그가 잠시 떠난 사이에 새로운 라이벌 팀들이 등장했다. 조던은 이러한 최악의 조건 속에서 어떻게 6번째 우승이라는 대업을 이뤘을까. 그 답은 ‘동기’였다. 고교시절 평범한 선수였던 그를 최고의 자리로 이끈 원동력은 동기였다. 그는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라 있는 그에게는 새로운 동기가 필요했다. 그가 찾아낸 동기는 분노와 적개심이었다. 조던은 플레이오프에서 맞닥뜨리는 상대팀 에이스가 자신을 모욕했다며 공개적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전직 동료, 떠오르는 슈퍼 신인들은 모두 조던의 극한의 동기 부여의 희생양이었다. 그는 만들어진 분노를 연료 삼아 자신과 팀의 6번째 우승을 이끌어냈다.

동기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보인 다빈치와 조던의 삶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다빈치는 무책임함으로 비난을 받았고, 조던 역시 동기 상실로 커다란 심적 고통을 받았으니까. 하지만 코로나로 관성적인 삶이 무너진 우리에게 그들의 삶은 한줄기 빛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그들처럼 우리 앞에 던져진 12월의 공허한 시간을 채울 수 있는 자신만의 동기를 찾아낼 수 있을테니까.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즈의 전성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라스트 댄스’(사진=ESP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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