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원(27·남)씨는 총 6번의 연애를 했다. 전력을 기울였던 연애도 있었고 아닌 연애도 있었다. 현재 만나는 여성은 그중 정말 잘해주고 싶은 경우였다.
둘이 만난 지 200일 좀 가까이 되던 시기에 여자 친구가 김씨를 자신의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처음 만나는 여자 친구의 친구들 사이에서 김씨는 꽤 긴장한 상태였다. 친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김씨는 여자 친구를 다정히 챙겼다. 5명 몫의 음식값도 '이번 한 번이니까'라고 생각하며 계산했다.
그런 김씨를 보고 여자친구의 친구 중 한 명이 말했다.
"똥차 가고 벤츠 온다더니, 오빠 완전 벤츠남이시네요!"
내가 왜 '벤츠남'이지?
김씨는 의아했다. 무슨 뜻인지 묻고 싶었지만 '벤츠'라는 말이 나쁜 어감으로 들리진 않아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하하, 고맙습니다"라며 감사의 인사까지 전했다.
후에 알고 보니 벤츠남은 능력 있는 남자,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헌신하는 남자, 잘생긴 남자 등을 뜻했다. 결국, 여자 친구에게 잘 하는 남자였다. 그는 나쁜 뜻이 아니란 것에 안도했지만, 한편으론 '차처럼 등급이 매겨지는 기분'에 좋지만은 않았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서 계산하지 않았다면, 여자 친구를 다정하게 챙기지 않았다면 나도 '똥차' 취급을 받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후 여자 친구를 만날 때마다 행동거지에 더 신경 썼다. 지금은 '벤츠남'일지라도 작은 실수를 하는 순간, '똥차'로 전락할지도 모르기에.
그래서 김씨는 노력했다. 피곤함을 무릅쓰고 여자친구를 데려다 주는 것, 다퉈도 항상 먼저 사과하는 것, 기념일엔 좋은 선물을 해주는 것 등. '벤츠남', '남자다운 남자'가 되기 위해. 그런데 때로는 의문이 들었다.
이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차에 대해 얘기를 하던 중, 여자 친구가 김씨에게 했던 말 때문이다.'남자'이기 때문에?
"그래도 오빠는 남잔데 오빠 나이 정도 되면 하나 있어야 하지 않아?"
순간, "나랑 너는 한 살 차이인데다 취직도 너가 먼저 했는데, 왜 나만 차가 있어야 해?"라는 말이 김씨의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김씨는?'남자'라는 이유로 자신에게만 주어지는 잣대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저도 여자친구가 절 배려 해주길 바라고, 제가 화가 났을 땐 먼저 사과했으면 좋겠고 데이트비용도 부담해주길 바라요. '남자'라는 이유로 '벤츠남'인 척했을 뿐이죠."
김씨는 다시는 '남자'라는 이유로 '벤츠남'처럼 행동하고 싶지 않다. "남자는 키가 180정돈 돼야지"라던가, "직장인 남자라면 차는 있어야지"라던가, "남자는 쪼잔하면 안돼" 등의 얘기를 듣고 싶지 않다.
김씨는 "제 주위 남자들이나 제 자신도 '남자라면'이라는 생각이 있었다"며 "잘 우는 남자, 겁 많은 남자, 왜소한 남자에 대해 '무슨 남자가'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그게 잘못됐다는 것을 알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편견과 잣대로 '~~녀', '~~남' 등을 만들어 판단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존중이나 칭찬에 대한 개념이 아닌 것 같다"며 "성별에 대해 갖는 특정 잣대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어지는 기사 : 나는 전직 ‘개념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