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쏙 들어간 ‘조기 추경’…불씨는 남았다

박종오 기자I 2017.02.09 06:49:04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연초 정부 돈을 대거 풀어 경기 침체를 막아야 한다는 ‘조기 추가경정예산 편성’ 주문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대선 국면에 들어서며 정치권 관심이 떨어진 데다, 국내 경기도 예상 밖 안정세를 보여서다.

하지만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시기가 늦춰질 수는 있으나 재정 확대의 필요성은 여전하다고 주장한다.

◇‘2월 추경’ 없던 일로

△유일호 경제부총리(왼쪽)가 8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수유전통시장에서 상인의 어려움을 들으며 떡을 구매하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9일 기획재정부 예산실 고위 관계자는 “현재 내부적으로 추경 편성과 관련해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정치권에서 주장했던 ‘2월 추경’은 현재로선 완전히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잘라 말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정부와 새누리당은 올해 2월 전 추경 편성을 적극 검토하고,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큰 주요 재정 사업비 30% 이상을 1분기(1~3월)에 조기 집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연초 나랏돈을 풀어 민생 경제 한파를 막겠다는 취지였다.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은행 등도 정부의 올해 ‘재정 긴축’ 편성을 문제 삼으며 힘을 보탰다. 그러나 이후 논의 진척 없이 2월 추경이 물 건너갔다는 것이다.

조기 추경 편성이 백지화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1분기 실적을 보고 추경 편성 여부를 검토하겠다”며 일찌감치 진화에 나섰다. 한은의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치는 통상 4월 말(작년은 4월 26일)에 나온다. 정부의 추경 예산안 편성에 한 달, 국회의 추경안 심의 및 통과에 한 달 정도가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빨라야 올 상반기 중 추경 확정이 가능한 시간표다.

새누리당 분당 등 조기 대선 체제 전환에 따라 요동치고 있는 정치판도 조기 추경 주장에 힘을 뺀 한 원인이다. 여권 관계자는 “추경 얘기를 꺼내려면 다시 상임위원회를 열고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될지 의문”이라며 “의원들이 다 대선 때문에 정신이 팔려있어서 회의가 열릴 지부터가 미지수다”라고 말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당 간사인 추경호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는 “대외 경제 여건 악화 등으로 추경이 강력히 필요하다는 견해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정치 분위기상 여당에 자중하는 기류가 형성되면서 현실적으로 얘기를 꺼내기 어렵게 된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조기 대선을 앞두고 돈을 쏟아붓겠다고 하면 현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꼴인 데다, 야당도 다음 정부에 추경 편성권을 넘기고픈 생각에 대선 전 추경에는 강력히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며 “요즘은 기재부도 인사를 앞둔 탓에 뭔가 얘기를 하려 해도 다음 인사가 오면 논의하자고 미뤄버린다”고 귀띔했다.

기재부는 이달 10일 정권 교체를 대비해 실·국장급 이동은 최소화하고 총괄 과장급 인사를 대거 단행할 예정이다. 다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일이 손에 잡힐 시기가 아니라는 의미다.

◇수출·투자 선방…그러나 추경 필요성은 ‘여전’

△재정 조기 집행률 추이. 재정을 상반기에 당겨쓰는 이런 ‘가불식 재정 운용’은 하반기 재정 고갈을 초래해 추경 편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단위:조원,%, 자료=국회예산정책처]


예상 밖 경기 선방도 조기 추경 필요성을 낮췄다. 한은에 따르면 작년 4분기(10~12월)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4%였다. 비록 다섯 분기째 0%대를 기록한 것이나, 일각의 마이너스(-) 성장 전망을 무색게 했다. 최근 수출(작년 11월~올해 1월)과 투자(작년 10~12월)가 나란히 3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이는 것도 긍정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 견해다.

예컨대 최근 수출·투자가 동반 호조세를 보이는 것은 ‘슈퍼 사이클’에 올라탄 반도체 호황으로 인한 ‘착시 효과’ 영향이 크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8일 경제 동향 간담회에서 “새해 들어 불과 한 달여 만에 세계 무역 질서에 큰 변화를 가져올 만한 상황이 전개됐다”며 “앞으로 수출 전망을 낙관할 수만은 없게 됐다”고 강조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 벌어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TP) 탈퇴 등 보호무역주의 강화를 우려한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6일 내놓은 ‘경제동향 2월호’를 보면 국내 투자은행·경제 전망기관 등의 전문가 20명은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2.4%로 예상했다. 작년 10월 조사 때(2.5%)보다 0.1%포인트 낮춘 것이다. 2.4%는 유일호 부총리가 제시한 추경 편성 기준(2% 초중반 또는 2.5% 미만)과 부합한다.

△자료=KDI ‘경제동향 2월호’
이번 조사에서 일부 전문가들은 “실물 경기 안정을 위해 과감한 재정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회 예산정책처 역시 최근 발표한 ‘2017년 경기 위축에 대응한 재정운용방향 검토’ 보고서에서 “올해 재정 여건은 재정 건전성을 고려한 지출 증가 억제, 경제 분야 예산 감소 등으로 인해 경기 대응 역량이 줄어든 것이 특징”이라며 “올해 상반기 재정 조기 집행의 경기 부양 효과를 극대화하되, 하반기 이후에도 경기 부진이 이어진다면 추경 편성의 필요성과 부정적 효과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성태 KDI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은 “경기 하방 위험이 가시화하지 않으면서 당장 추경을 편성할 필요성은 낮아졌다”면서도 “올해 1분기 성장률이 작년 4분기보다 많이 내려가거나, 대외 충격으로 인해 국내 경기가 꺾일 조짐이 나타나면 추경 편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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