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아파트 돋보기]주택관리사 피살 사건, 업계서 엄벌 촉구하는 이유는?

김나리 기자I 2021.05.22 09:00:00
[이데일리 김나리 기자] 우리나라 주택의 77%는 아파트·연립·다세대주택 등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공동주택 형태로 이뤄져 있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의 도움을 받아 이 같은 공동주택에서 실제 벌어지거나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알아보고, 매 주말 연재를 통해 꼭 알아둬야 할 상식과 더불어 구조적인 문제점과 개선방안, 효율적인 관리방법 등을 살펴본다.

(사진=대한주택관리사협회)
지난해 10월 28일 주택관리사들과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인천 서구의 한 공동주택 관리사무소에서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관리비 문제로 다툼을 벌이던 중 근무 중이던 관리사무소장을 흉기로 무참히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7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참할 정도로 사회적 충격과 여파가 컸습니다.

사건 이후 피고인에 대한 공판이 4차례 열렸고, 지난 3월에 열린 4차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아무 근거 없이 피해자를 의심한 점, 사건 전 미리 변호사를 검색한 점, 병원에서 간호사 등에게 멀리 간다고 한 점, 집에서 가방에 칼을 넣어가 피해자가 혼자 있는 시간을 이용해 살해한 점을 고려할 때 악의적, 계획적인 살해”라며 가해자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했습니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도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근본적인 제도 개선 요청과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주장했습니다. 협회는 지난해 말 전국 주택관리사들이 동참한 가운데 가해자 엄벌, 재발 방지, 제도 개선 등을 요구하는 ‘국회 앞 1인 릴레이 시위’를 했습니다. 피해자 유가족과 함께 국회 앞에서 삭발식도 진행했습니다. 국회와 정부 등에는 공동주택관리법 개정 및 대책 마련 등을 적극적으로 요구했고, 가해자 엄벌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은 탄원서 수천 장도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열린 1심 선고 판결에서 인천지방법원은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된 피고인에게 징역 17년형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은 미리 준비한 흉기를 자신의 품속에 넣어 주거지에서 나왔고, 흉기를 이용해 짧은 시간 동안 피해자의 목 부위 등을 수차례 찔렀다”며 “피해자를 만나기 전부터 계획적으로 살해하려 했던 것으로 보이는 등 범행 동기와 수법 등 죄질이 특히 나쁘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재판부는 “피해자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고 피고인은 유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줬다”면서도 “자수한 피고인이 범행을 대체로 인정하고 30년 전 폭력 범죄 외 별다른 전과가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에 협회 측은 “법조계에서는 일반적으로 17년형이 비교적 중형이라고는 하나 주택관리사 피살 사건은 공동주택 관리제도 도입 30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초유의 사태”라며 “이 사건은 공동주택 관리 종사자의 업무 환경이 위협받고 있는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법부는 선량한 공동주택 관리 종사자에 대한 범죄 재발 방지 차원에서라도 피고인을 강력히 처벌함으로써 일벌백계의 본보기로 삼았어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사법부가 이번 피살 사건이 지닌 특수성이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게 협회 측 입장입니다. 피해자 유가족과 동료 주택관리사들도 1심 판결에 대해 “이번 사건이 지닌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매우 유감스러운 결과”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검찰도 당초 구형량보다 낮은 징역 17년형이 선고됨에 따라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했습니다. 반면 피고인도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향후 피살 사건 2심 재판은 서울고등법원 형사 재판부에 배당돼 6월 2일에 첫 재판이 진행될 예정으로 알려졌습니다.

공동주택을 관리하는 주택관리사들은 업무 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 이 같은 사건·사고가 언제 또 다시 벌어질지 모른다고 우려합니다. 협회에 따르면 대부분의 공동주택 관리 종사자들은 1년 미만의 단기 계약에 따른 불안정한 신분이며, 입주자들이 요구하는 각종 민원과 갑질 등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습니다. 실제 부당 해고, 임금 삭감, 협박, 폭행 등 사건이 발생해 언론에 종종 보도되는 실정입니다.

협회 관계자는 “이처럼 공동주택 주택관리사들이 처한 문제점들에 대해 입주민인 국민과 국회, 정부 등 각계각층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인식 개선과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나서야 경비원 자살 사건이나 주택관리사 피살 사건 등과 같은 사건·사고가 감소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