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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돌풍부터 2012년 대선까지…대선판을 흔든 플랫폼

김유성 기자I 2022.03.12 12:58:53

2002년 대선, 웹 통해 노무현 지지 결집
2012년 떠오른 팟캐스트, 또다른 변수로
2022년 유튜브, 이젠 무시 못할 대세로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2002년 대선은 당시 민주당에서도 아웃사이더로 꼽혔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승리한 선거입니다. 불과 2001년만 해도 이인제 대세론 속에 민주당 군소 후보에 속했고,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고도 ‘단일화’ 논란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회창이란 존재가 워낙 강력했던 이유가 크지만, 기존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비춰진 그의 평가가 박했던 이유가 크다고 봅니다.

이 같은 상황에도 노무현이 유력 대선 후보가 된 결정적 요인 중 하나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가 꼽힙니다. 시민정치가 인터넷과 만나 노무현이라는 대통령을 낳게 된 것입니다. 신문과 방송을 통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그를 평가했던 것입니다.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도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 붙은 이름입니다. 매체들이 붙인 ‘대쪽 이회창’과는 다른 맥락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웹’(web)이란 가상 공간을 통해 만들어진 최초의 한국 대통령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기존 여론 권력과는 다른 맥락에서 나온 그이기에 지금까지 사랑받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진 : 이미지투데이
참고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임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TV를 통해 유명해졌습니다. 1990~1991년 나왔던 지상파 드라마 ‘야망의 세월’을 통해 전국구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죠. 현대그룹을 모티브로 한 이 드라마에서 패기 있는 젊은 사장이 나옵니다. 이 캐릭터가 ‘이명박’이었습니다. 유인촌 씨가 이 역할을 했고, 이 인연 덕에 두 사람은 정치적 동반자가 됩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대선 후보로 주목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지상파 토크쇼 ‘무릎팍도사’라고 합니다. 의사 출신 벤처기업가로 잘 알려진 그였지만, ‘정치인 안철수’로 거듭다는 결정적 역할을 무릎팍도사가 한 것이죠.

◇2012년 대선, 팟캐스트가 흔들

2002년으로부터 10년이 지난 2012년, 대선 판을 흔든 게 있으니 바로 팟캐스트입니다. 바로 정치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입니다.

BBK 등 이명박 전 대통령의 여러 의혹을 희화화해 전달하면서 나는꼼수다는 대박을 칩니다. 한 회당 1000만 다운로드 수를 기록할 정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습니다.

2002년 웹 게시판을 통해 진보 지지층이 결집했다면, 2012년에는 팟캐스트라는 플랫폼이 진보 지지층의 저변을 넓히는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이 콘텐츠를 들으며 당시 스마트기기에 밝았던 30~40대 남성들이 정치적 유대감을 갖게 됐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나는꼼수다는 또 이때까지 지리멸렬했던 민주당이 회복하는 기반을 만드는 계기도 됩니다. 이른바 반이명박의 결집이 정치 세력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나는꼼수다에서 떠올랐던 인물들이 여럿 있습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지목했던 진보의 기수는 바로 문재인이었습니다. 문재인이란 사람은 그전에도 주목받던 정치인이었지만, 나는꼼수다를 통해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게 됩니다.

이때 팟캐스트는 기존 미디어들이 독점하던 ‘아젠다셋팅’(의제설정)의 기능까지 하게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이명박 결집입니다. 2000년대를 기점으로 ‘언론이 만드는 유력 정치인의 전형’은 붕괴되기 시작했고 2012년 대선이 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고 봅니다.

◇2022년 대선, 대세로 떠오른 유튜브

2022년 이번 대선은 또 많이 달라졌습니다. 유튜브는 물론 카카오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이 60대 이상 노년층까지 확대됩니다. 과거와 달리 플랫폼이 젊은 유권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전히 방송과 신문이 갖는 미디어 권력은 막강하지만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에 그 힘이 약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윤석열이란 존재가 알려지게 된 계기도,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결정적일 수 있습니다.

반문재인의 결집이 유튜브를 통해 이뤄지고, 여당에 ‘항거’하는 모습을 보였던 윤석열의 언행과 모습이 유튜브를 통해 유통됐던 것이죠. 이들 콘텐츠는 카카오톡을 통해 또 빠르게 유통됩니다.

20년전에는 웹, 10년 전에는 팟캐스트를 통한 진보층의 결집이 있었다면 이번 대선에는 유튜브를 통한 보수층의 결집이 보다 강하게 이뤄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결집의 힘은 양당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로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국민의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30만이 넘고, 그 안에 다양한 영상들이 있습니다. ‘쇼츠’ 영상이라고 해서 후보와 당 대표 등이 직접 출연한 영상도 업로드돼 있습니다.

국민의힘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된 윤석열 당선인 영상
더불어민주당 유튜브 채널은 이와 비교하면 한 발 늦은 감이 있었습니다. 채널 구독자 수는 10만 중반 정도입니다.

보수 유튜버 숫자와 진보 유튜버 숫자도 차이가 있는 듯 합니다. 진보 유튜버보다는 보수 유튜버의 시장이 더 커 보입니다. 아무래도 노년층 시청자들의 시청 시간과 빈도가 30~40대 직장인보다는 많을 수 밖에 없고, 구매력 또한 어느정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튜브에 무너진 미디어 권력

취재 형태도 바뀌었습니다. 이건 코로나19 영향이 크긴 합니다. 이젠 각 정당에서 기자 회견을 하든 후보의 정견 발표를 하든 유튜브 실시간 라이브를 합니다. 각 정당이 방송사 TV에 의존하지 않고 각자의 채널에서 각자 구독자에게 자신들의 정견을 실시간으로 방송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현장에 가지 못하는 기자들도 이런 실시간 라이브를 보고 텍스트 기사로 옮기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기자들, 즉 전통 미디어 관계자들에 의해 독점됐던 그들만의 정치 공간이 유튜브라는 매체를 통해 온갖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있는 것입니다.

유튜브로 실시간 공유된 지난 3월 3일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백브리핑 장면
이 같은 현상은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정치인들도 이제는 유튜브 출연을 피하지 않습니다. 방송사나 신문사들도 유튜브 채널을 따로 만들어서 정치인들을 만나러 가기도 합니다.

각 정치인들도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본인의 활동상을 올립니다. 잘 알려진 유명 정치인의 유튜브 채널일 수록 더 주목받고 구독자 수도 많습니다. 그들의 영향력이 유튜브 구독자 수인 셈입니다.

다만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만약 유튜브 알고리즘 변수 상에 어떤 외부적인 요소가 개입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컨대 특정인에 대한 호의적인 내용만 반복되거나 혹은 부정적인 것만 반복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국가권력은 유튜브 세계관을 가만 놓아둘까요?

확증 편향도 문제입니다. 내 취향 콘텐츠만 보다보니 생각의 범위가 좁아지는 현상입니다. 다른 이의 생각도 들어보고 종합적으로 생각해볼 기회가 있어야 하는데, 유튜브에 몰입하다보면 이 기회를 잃을 수 있는 것이죠.

이런 면에서 신문과 방송은 장점이 있습니다. 한정된 분량이라고 하고, 기계적인 중립이라고 한다지만, 다른 반대편의 의견이나 반론도 실으려고 노력합니다. 여당 상황을 보면서 야당 상황도 같이 읽는 것이죠.

그런데 유튜브 채널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포 등과 같은 혐의로 누군가의 고발이 있기 전까지는 방치되곤 합니다. 가짜뉴스라고 해도 말이죠.

앞으로의 선거는 이 같은 현상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판단 기준을 갖고 각 후보자들을 판단해야할까요? 생생한 정보가 많아졌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진실이라고 보기 힘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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