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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편가르는` 교육감들 탓에…애꿎은 어린이집만 700억 지원 날릴 판

이지현 기자I 2019.08.12 06:21:00

교육은 교육부 보육은 복지부…법 이유로 교육감 예산 받고도 ‘꽁꽁’
지자체 보육예산 하석상대…연말까지 집행 안 되면 내년 예산 차질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어린이집 누리과정 보육교사 처우를 개선하고자 추가로 책정된 예산을 교육감들이 집행을 거부하고 있는 탓에 700억원이나 되는 거액의 지원금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재정당국과 시도 교육청 사이의 갈등에 애꿎은 어린이집만 차별적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누리과정 교사 지원 놓고 소관부처 공방…731억 예산 방치돼

11일 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올해 책정된 누리과정 보육교사 처우개선비 등 예산 713억원이 허공에 뜬 상태다. 어린이집 주무부처는 보건복지부인데, 국회가 난데없이 보육교사 처우개선비를 교육세로 분담하라고 했고 이 때문에 기획재정부는 관련예산을 교육감들에게 내려보냈다. 그러나 교육감들은 어린이집이 자신들의 관리 대상이 아니라며 예산 집행을 외면하고 있다.

이번 예산 713억원은 보육교사 1인당 3만원씩 처우개선비를 지원하기 위해 158억원, 누리과정 운영비로 아동 1명당 8000원씩 인상하기 위해 555억원 각각 책정됐다. 기재부는 이 예산을 교육세에서 편성했고 이 때문에 예산을 집행하는 주체는 교육감들이다. 그러나 경기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교육감들은 이 예산을 반납하기로 했다. 교육감들은 아무리 교육과정인 누리과정(만3~5세)을 운영하더라도 어린이집은 복지부 관할이라는 점을 예산 집행 거부의 이유로 들고 있다.

최진욱 시도교육감협의회 대변인은 “어린이집에 대한 관리책임은 교육감이 아닌 복지부에 있다”며 “(기재부는 왜 관련 예산을) 복지부에 왜 주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교육감들이 재정당국에 항의하기 위해 예산을 고의적으로 집행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유아교육지원특별회계를 통해 유치원 누리과정 지원은 교육세로, 어린이집 누리과정 지원은 국고로 부담하도록 구조를 짰는데 국회가 이를 어겼다고 본 것. 실제로는 어린이집은 교육기관이 아닌 보육기관으로, 교육감들이 교육세를 보육기관에 지원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행법상 어린이집은 보육기관으로 복지부가 담당하고 유치원은 교육기관으로 교육부와 교육청이 맡고 있다.

◇어린이집만 교육 질 저하 우려…자칫 관련예산 사라질 수도

문제는 이같은 교육감들의 이기주의 때문에 같은 누리과정을 받는 어린이들이 어떤 기관에 다니느냐에 따라 자칫 교육의 품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누리과정은 주로 유치원에서 진행하는 교육과정이지만, 어린이집에서 누리과정을 받는 아동도 57만명이나 된다. 보육교사 처우개선은 아이들에 대한 교육의 질 향상으로 이어진다. 유치원이든 어린이집이든 다니는 기관에 따른 차별 없이 동일한 교육과정을 받을 수 있도록 누리과정을 만들어놓고 결국은 주무부처에 따라 차별이 생겨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정작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지방자치단체들이다. 3년 전 예산 때문에 발생했던 어린이집 파업 등 `보육대란 사태`가 혹시나 되풀이될까 우려한 지자체들이 부랴부랴 보육교사 처우 개선과 운영비 인상분을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자체들도 다른 곳에 써야 할 보육 예산을 억지로 끌어다 쓰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렇게 되면 연말에는 지자체들의 보육 예산도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교육감들이 예산을 반납하겠다고 결의했음에도 예산은 정부에 귀속되지도 않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아직 예산을 반납한 곳은 한 곳도 없다”고 말했다. 이 상태대로라면 내년 누리과정 예산이 오히려 깎일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내년 예산을 책정할 때 불용예산을 고려해 재정당국이 예산 감축 카드를 꺼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출산율 감소로 영유아 관련 예산은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교육감들의 입장에 보육 전문가들은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국가 예산을 국회에서 결의해 사용한다는 데 교육감들이 반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는 것. 장진환 전 한국민간어린이집회장은 “교육관련법과 보육관련법이 다르다고 지방재정 교부금을 줄 수 없다는 것은 근시안적 시각”이라며 “유아교육 전체를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로 보고 판단하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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