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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킹맘]퇴근하면 집으로 출근…독박육아의 끝은 '사직서'

김보영 기자I 2018.04.20 06:30:00

한국 일가정 양립지수 터키·멕시코 이어 최하위권
초보 워킹맘 이은경씨 "친정어머니 도움 덕에 버텨"
핀란드 워킹맘 헤이니씨 "일·가정 양립에 취미생활도"
국가 육아 보조에 회사도 지원, 부부는 역할 나눠 분담

일러스트=심재원(그림에다) 작가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우리나라에선 부모 중 한 명이 직장을 포기하거나 휴가를 내지 않는 이상 평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가거나 개인 여가활동을 즐기기가 불가능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4월 발표한 ‘일·가정 양립지수’가 한국은 10점 만점에 5점으로, 터키와 멕시코에 이어 가장 낮다. 반면 핀란드는 8.1점으로 최상위권이다. 한국과 핀란드 워킹맘의 하루를 비교해 봤다.

◇“친정 어머니 도움 없이는 육아-회사 병행 꿈도 못꿔”

“지금 회사에 이직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들 서진이(3)를 임신했어요. 임신 사실을 늦게 안 것도 있지만 회사에 너무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석달 가까이 상사한테 임신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죠.”

1983년생 이은경(35·여)씨는 중소기업에서 길거리의 안내판, 전광판 등을 디자인하는 콘텐츠 디자이너다.

2016년 서진이를 낳은 후 1년간 육아휴직 끝내고 지난 2월 복직한 초보 워킹맘이다.이씨는 업무에 적응하랴 서진이를 돌보랴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씨의 하루는 오전 8시 서진이의 기상과 함께 시작한다. 이유식을 준비하고 씻겨 옷을 입히는데 족히 한시간은 걸린다. 오전 9시 20분 아이를 등원 시킨 뒤 회사에 출근하면 10시다. 호텔 요리사인 남편은 직장까지 출근길이 먼데다 출근시간마저 일러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나마 이씨 회사가 지난해 출근시간을 10시로 늦춘 덕에 숨통이 트였다.

이씨는 “남편은 금요일이 휴무여서 매주 금요일은 남편이 등하원 준비와 육아까지 도맡아 주고 있지만 나머지 요일은 독박 육아중”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친정 어머니가 집에 머무르면서 도와주셔서 아직 크게 힘들진 않지만 언제까지 가능할 지 걱정”이라고 했다.

이씨의 퇴근 시간은 오후 6시 30분. 서진이 하원은 대부분 친정 어머니 몫이다. 이씨가 집에 돌아와 저녁을 짓고 식사를 마치고 나면 오후 8시가 넘는다. 서진이를 씻기고 나면 오후 10시다. 남편은 빨라야 오후 9시 30분에 퇴근한다. 보통은 오후 10시가 넘는다. 이씨의 남편은 집에 들어서자 마자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서진이와 남편이 잠든 오후 11시 이후가 이씨의 자유시간이다. 그러나 이 때도 필요한 육아용품과 생필품 구매를 위해 인터넷 쇼핑을 하는데 대부분 시간을 할애한다.

이씨는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는 육아하는 직원들을 배려해준다. 지난해부터는 전 직원 출근 시간을 오전 10시로 늦춘 덕에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가능해졌다”고 했다.

1년 넘게 회사를 떠나 있던 탓에 일을 새로 배우다시피했다. 생소하기만 한 회사일과 육아를 동시에 떠맡아 막막함에 혼자 울음을 터트릴 때도 많았다. 회식참석도 눈치가 보였다. 이씨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을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면 저녁자리가 좌불안석이었다”고 했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내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그림의 떡’이었다. 이씨는 “남자직원이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걱정해야 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며 “지금은 많이 나아져 육아휴직을 내는 남자직원들이 늘었지만 평균 1~3개월짜리”라고 전했다. 이씨의 남편도 허리를 다쳐 잠시 병가를 냈다가 이어서 3개월간 육아휴직을 했다.

이씨는 “직장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어머니의 도움을 받지 않고 아이를 어린이집 종일반에 보낼까 생각 중인데, 지금 다니는 어린이집은 종일반을 희망하는 수요가 없어 고민”이라고 했다.

“베이비시터도 생각해봤지만 한 달에 200만원을 어떻게 감당할까 엄두가 안나요. 아이를 하나 더 낳고 싶은데 자신이 없어요. 둘째를 낳으면 그 때는 정말 제가 직장을 그만둘지도 모르겠네요.”

한국인 워킹맘 이은경(35)씨와 아들 서진(3)군. (사진=이은경씨)
◇일·가정 양립에 취미생활까지…세마리 토끼 잡은 핀란드 워킹맘

“핀란드에선 육아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부모는 없어요. 정부가 만족할 만큼 지원해주고 부부가 서로 육아와 가사를 분담해 부담을 줄이죠.”

헤이니 코호넨(Heini Korhonen·42)씨. 8년차 외교관이자 육아 경력 5년차인 베터랑 워킹맘이다.

그는 “핀란드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게 사회적 성취와 직장생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잘라말했다.

외교관인 헤이니와 중견기업의 IT 컨설턴트로 일하는 남편의 하루는 오전 6시 30분에 시작한다. 오전 7시 아들 아이노(Eino·4)를 깨우는 건 헤이니의 몫이지만 아침 식사 준비와 아이노를 씻기고 옷을 입히는 일은 남편이 담당한다.

헤이니씨는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만지는데 시간이 걸려 상대적으로 금방 출근준비를 끝내는 남편이 아침 식사와 아이노의 등원 준비를 맡고 있다”며 “오전 8시 30분인 아이 등원은 나와 남편이 돌아가면서 한다”고 했다.

헤이니와 남편의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하지만 번갈아 맡는 하원 때마다 둘 모두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한시간 일찍 퇴근한다.

헤이니씨는 “노트북과 스마트폰이 있으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어 굳이 사무실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며 “어린이집이 오후 5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아이 하원을 책임지는 날엔 오후 4시면 퇴근한다”고 말했다.

회사의 양해를 구할 것도 없이 출퇴근 시간을 조절하는 방법도 있다. 핀란드는 이미 2000년대 초반 ‘근로시간은행제’(Time Bank)를 도입해 정해진 시간내에서 자유롭게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헤이니씨는 “핀란드 내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주당 37시간”이라며 “이 시간만 채우면 자유롭게 출퇴근시간과 하루 근로시간을 정할 수 있다”고 전했다.

티나 카이니스톨라(Tiina Kainistola) 핀란드 고용경제부 대변인은 “근로시간은행제는 비수기에는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바쁠 때는 늘려 기업은 생산성을, 노동자에서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헤이니씨의 남편이 일하는 회사는 아이가 아프면 특별휴가를 주고 병간호를 맡아줄 전문 베이비시터를 파견하기도 한다. 물론 무료다.

남성육아휴직도 자리잡은 지 오래다. 핀란드에서는 부부가 합해 1년간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헤이니씨 부부는 각자 공평히 6개월씩 육아휴직을 내고 아이를 돌봤다.

헤이니씨는 “핀란드 맞벌이 부부들은 아이를 낳고 나면 효율적인 가사 및 육아 분담을 위해 한 달, 1주 단위의 가사 분담 스케줄표를 작성해 거실이나 냉장고 벽에 붙여놓는다”며 “부부 구성원 모두가 일에서의 성취를 추구할 권리를 가진 사회적 일원이자 육아의 책무를 가진 부모로서의 책임과 권리를 동등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헤이니씨는 가사외에 개인의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도 잊지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가사분담표를 작성할 때 여가활동 시간도 빼놓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금요일 오후마다 검도를 배우는 헤이니씨 부부는 이때마다 친척이나 이웃에 아이노를 부탁한다. 반대로 이웃이나 친척이 아이를 맡길 때는 대신 돌봐준다.

“저는 외교관이자, 한 아이의 엄마이자 누군가의 아내인 지금의 삶을 굉장히 만족하고 즐기고 있어요. 핀란드에선 부모란 이유로 사회적 성취와 직장생활을 방해받지 않아요. 남성 뿐 아니라 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핀란드 워킹맘 헤이니 코호넨(Heini Korhonen·42)씨와 그의 아들 아이노(Eino·4). (사진=헤이니 코호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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