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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인데 한판 쳐야지?"…명절 고스톱, 도박일까 아닐까 [이번 설, 이것만은]

박기주 기자I 2024.02.10 11:00:22

法, '일시오락의 경우' 도박죄 예외 적용
시간·장소·친분관계·판돈 등 고려 요소
"판돈 소액이라도…유죄 판결 받을 수 있어"

[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허전한데 판 깔아봐야지?”

명절이면 으레 나오는 말입니다. 오랜만에 모인 친척끼리 고스톱 같은 게임을 하며 우애를 다지곤 하죠.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판돈을 빙자한 세뱃돈을 주고받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간혹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들이닥치고 도박 혐의로 수사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 명절이 되면 경찰에 접수되는 도박 신고가 상당하다고 합니다. 고스톱 등 도박행위로 비칠만한 모습을 본 이웃 등의 신고가 접수된 건데요. 훈방조치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경찰을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죠.

(사진= 게티이미지)
이 때문에 어느 정도 수준이 도박 여부를 가리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도 많은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대부분 괜찮다’ 입니다. 형법 제246조는 ‘도박을 한 사람은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고스톱이 ‘재물 등 이익을 걸고 우연하게 득실이 결정되는 승부를 하는’ 도박행위기 때문에 무조건 도박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시오락 정도에 불과한 경우’는 예외로 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인데요.

법무법인 서연의 윤석준 변호사는 “재물 등 이익을 걸고 우연하게 득실이 결정되는 승부를 할 경우 도박행위에 해당된다. 따라서 명절에 친척 간에 고스톱을 했다는 것만으로 무조건 도박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며 “어떤 경우가 예외에 해당하는지 법원의 판결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관건은 ‘일시오락’의 범위입니다. 법원은 ‘일시오락 정도’를 판단할 때 △도박의 시간과 장소 △도박에 이르게 된 경위 △판돈의 규모 △행위자들의 친분관계 △행위자의 사회적 지위와 재산 정도 등을 고려한다고 합니다.

판례를 보면 지난 2022년 6월 대구지법은 지인들이 모여 ‘1점당 100원’ 고스톱을 쳐 돈을 모은 후 국수를 사먹기로 하는 내용의 내기를 한 피고인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판돈의 규모가 6만 2000원에 불과했고, 평소 알고 지난 사이였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일시오락’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었죠. 또한 지난해 7월 전주지법은 선후배 5명이 부동산 사무실에서 회당 판돈 1000원을 걸고 2시간 반 정도 ‘훌라’ 게임을 한 것도 도박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사진= 게티이미지)
하지만 유죄 판결이 나온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습니다. 지난 2006년 오모씨는 같은 동네에 사는 장모씨 등 3명과 1점당 100원씩 주는 방법으로 총 판돈 2만 8700원을 걸고 고스톱을 쳤다가 동네 주민의 신고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판돈이 3만원이 채 되지 않았던 것을 고려하면 의아한 판결인데요.

법원은 오씨가 평소 모르던 사람과 고스톱을 쳤다는 점, 기초생활 수급자로 수입이 적은데 이 같은 도박을 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오씨의 행위가 ‘일시오락이 아니다’라고 판단한 것이죠. 또 청주지법은 지난 2021년 판돈 4만3900원 수준의 ‘점 100원’ 고스톱을 친 이들에게도 벌금형을 내렸는데요. 도박 범죄 전력이 있다는 점이 판결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법무법인 정향의 장두식 변호사는 “명절에 만난 친척들과 일시오락에 불과한 수준으로 가볍게 즐긴다면 (고스톱 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도 “‘점 100원’이냐 ‘점 300원’이냐에 따라 유죄 무죄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시오락의 범위를 넘어서는 수준으로는 고스톱을 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윤석준 변호사도 “친척들이 명절에 자연스럽게 모인 자리에서 인당 2만~3만원의 소액으로 고스톱을 치는 것은 문제되기 어렵다”면서도 “그러나 폐쇄적인 장소에서 심야시간까지 장시간을 하거나, 친척 이외의 사람도 참여하거나, 판돈이 큰 경우에는 도박죄로 처벌될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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