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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킹맘]"남성 육아휴직은 제도 아닌 문화…마라톤과 같죠"

안혜신 기자I 2018.04.20 06:30:00

기원규 롯데그룹 HR혁신실 인재육성팀 상무 인터뷰
"오너의 확고한 의지 바탕으로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롯데 남성육아휴직 대상자들이 지난 4월 서울시 영등포구에 소재한 롯데리테일아카데미에서 ‘롯데 대디스쿨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자료: 롯데그룹)
[이데일리 안혜신 기자] “가족친화정책은 제도가 아니라 문화로 정착돼야 합니다. 인사 관련 제도는 100미터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입니다.”

롯데그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가정친화정책을 도입하고 있는 대기업이다.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제도’를 도입한 후 한 해 동안 남성 육아휴직자가 1100명을 넘어선게 대표적이다. 지난해 11월 초까지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우리나라 전체 남성육아휴직자 수(1만2000여명)의 10%에 해당하다.

지난해 롯데는 아이를 둔 남성직원에게 1개월 이상 육아휴직 사용을 의무화했다. 특히 휴직 첫 달에는 통상임금의 100% (통상임금과 정부지원금과의 차액을 회사에서 전액 지원)를 보전함으로써 경제적 이유로 육아휴직을 꺼리는 직원들도 부담없이 휴직에 나설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롯데그룹의 가족친화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기원규 롯데그룹 HR혁신실 인재육성팀 상무를 만났다.

기 상무는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 하까지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며 “여성의 육아휴직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하지만 남성 육아휴직에 대해서는 아직 공감대 형성이 부족한 상태”라고 말했다.

지금이야 여성의 2년 육아휴직이 보편화했고, 남성 육아휴직을 당연시 여기는 분위기가 정착했지만 도입 초기에는 저항이 만만찮았다고 했다.

기 상무는 “남성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직급은 대부분 과장이나 대리급이다. 그런데 육아휴직을 승인해줘야 할 부장급이나 임원들은 본인들은 육아를 맡아 한 경험이 없다보니 이를 탐탁찮게 여겼다”고 했다.

롯데는 간부진들이 ‘남자들도 육아를 하고 이를 위해 회사를 쉰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기 보다는 강제적으로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기로 했다. 정서가 바뀔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판단에서다. 오너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확고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 상무는 “이런 정책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오너의 확고한 의지를 바탕으로 정확한 전략을 수립해 아래로 전달하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작년 남성 육아휴직 신청자는 대상자의 60%로 절반을 넘어섰다. 최소 한달이상 육아휴직을 하고 온 직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고, 이런 긍정적인 분위기는 순식간에 회사 전체로 확산했다. 육아휴직 후 복직한 사람들은 회사에 대한 높은 로얄티와 함께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했다.

기 상무는 “올해는 80%까지 남성 육아휴직 대상자의 신청 비중을 높이는 것이 목표”라면서 “작년에 육아휴직한 사람들의 경험을 회사 전체적으로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남성 육아휴직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를 만들어 갈 생각”이라고 전했다.

롯데의 가족친화정책은 상당 부분 여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 2005년 25%였던 신입공채 여성 입사자 비율은 지난해 40%로 증가했다. 특히 롯데는 앞으로 여성임원을 전체 임원의 30%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기 상무는 “일부 남성들의 상대적인 박탈감 등 불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여성이라 무조건 우대하는 것이 아니고 여성 임원을 발탁할 때 철저하게 객관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우수한 자원은 성별에 관계없이 건전한 경쟁을 통해 합리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최근 가족친화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롯데를 벤치마킹하려는 기업들이 많다. 기 상무는 ‘경영진의 확고한 의지’와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롯데만해도 성과가 나기까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며 “멋있는 제도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 조직의 문화로 자리잡는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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