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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포장의 기술'

전재욱 기자I 2020.09.02 05:30:00

코로나19로 집밥족 증가해 식품회사 수혜
맛 좌우하는 포장재 기술력 빛 발해
김치 대중화 이끌고, 전자레인지 무한변신
재미 더해 보는 맛까지…다음 단계는 '친환경'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식품회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본의 아니게 수혜를 입었다. 바깥활동이 뜸해지면서 집밥 수요가 늘어난 덕이다. 그간 포장 기술력 향상에 주력해온 식품회사는 더 빛을 봤다. 포장에 얽힌 배경을 알고 보면, 맛도 배가 된다.

(사진=대상)
◇김치 대중화 이끈 ‘가스빼기 기술’


코로나19는 김치의 내수와 수출 매출 모두를 끌어올렸다. 1~5월 포장 김치 국내 매출은 전년보다 20% 넘게 성장했고, 상반기 수출은 40% 이상 늘었다.

‘포장 김치’ 산업의 핵심은 ‘김치’가 아니라 ‘포장’이다. 김치는 발효과정에서 가스가 발생하는데, 이게 골칫거리다. 처리하지 못하면 용기가 부풀어 유통 과정에서 폐기 처분해야 한다. 맛을 유지하기에도 걸림돌이다.

이 문제를 처음 해결한 건 대상이다. 비결은 ‘흡수제’였다. 포장재 안에 흡수제를 넣으면 발효가스를 빨아들여 진정시킨다. 제습기와 비슷한 원리인데, 잔존물을 남기지 않는 건 다르다. 이를 바탕으로 1989년 국내 최초 포장 김치 ‘종가집’이 탄생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김치가 ‘공산품’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김치 가스를 잡으려는 노력은 ‘배출’ 방식으로 진화했다. 포장재를 여러 겹 포개고, 겹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가스를 빼낸다. 포장재 안에서 가스 압력이 일정 수준으로 오르면 틈이 벌어지고, 내려가면 닫힌다. 흡수제를 넣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고, 혹시나 먹어서 탈이 날 염려도 없다. 가스를 안에서 묵히는 것보다 빼내는 게 속도 시원하다. 관건은 공기와 김치의 접촉 차단이다. 김치 라이벌 대상과 CJ제일제당은 각자 방식으로 ‘가스빼기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사진=CJ제일제당)
◇전자레인지가 압력솥으로


간편식은 코로나19를 만나 물 만난 제비처럼 날았다. 대부분 전자레인지로 조리하는데, 어떤 포장 방식을 적용하는지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개중에 압력솥 원리를 따온 증기 배출 방식이 흔하다. 포장을 뜯지 않고 용기째로 전자레인지에 넣어 조리한다. 포장 안에서 음식이 가열되면 수분이 증기로 변한다. 뜨거운 증기를 가둬서 음식 단면을 감싸니, 고루 조리된다. 수분이 덜 날아가므로 식감도 촉촉하다. 패키지가 터질 염려는 없다. 증기 압력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패키지가 숨통을 열어 밖으로 빼낸다. 롯데푸드 ‘쉐푸드 세븐데이즈플랜’, CJ제일제당 ‘고메 함박스테이크’·‘고메 토마토 미트볼’ 등에 이런 기술이 숨어 있다.

(사진=롯데푸드)
전자레인지를 라면 끓이는 냄비로 만든 것도 포장의 힘이다. 본디 라면은 센 불로 끓는 물에서 조리할수록 맛이 좋다. 면발 탄성이 세져 쫄깃하고, 국물 농도가 짙어져 맛이 깊다. 컵라면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불과 냄비가 없어도 이런 맛에 가까워질 수 있다. 문제는 안전이다. 마이크로웨이브 파(波)가 닿으면 열을 받은 컵라면 용기가 변형할 수 있다. 더는 조리하지 못할뿐더러, 안전하지도 않다.

‘신라면블랙사발’(왼쪽)과 ‘너구리컵라면’.(사진=농심)
전자레인지용 용기는 이런 걱정을 덜어낸다. 종이 용기에 특수 필름을 입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여기에 허가를 내줬다. ‘전자레인지용은 안전하다’는 의미다. 농심이 2017년 ‘신라면블랙사발’을 전자레인지용으로 출시하며 저변을 닦았다. 오뚜기와 삼양을 비롯해 유통사 자체 브랜드(PB) 상품도 이런 컵라면을 만든다. 물론 그냥 물을 부어서 먹어도 된다.

(사진=오뚜기)
보는 맛을 적용한 제품은 먹는 맛을 더한다. 농심은 너구리 컵라면에 ‘하트’ 문양을 숨겨뒀다. 뜨거운 물을 넣어 용기 안에 온도가 오르면 색이 변하는 ‘변온 잉크’를 너구리 캐릭터의 눈에 그려 넣었다. 하트 눈 너구리와 눈싸움을 하면서, 라면이 익는 동안 무료함을 달랠 수 있다.

오뚜기 ‘아임스틱 잼’은 스틱 형태로 처음 출시된 잼 상품이다. 일회용이라서 숟가락이나 나이프 없이도 빵에 쉽게 발라먹을 수 있다. 회사 관계자는 “자녀가 있는 집에서는 잼으로 빵에 그림을 그리면 먹는 재미가 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이면 ‘가치’ 소비

포장재가 이런 갖가지 기술을 구현하려면 강한 내구성이 기본이다. 포장재 대부분이 플라스틱이거나 이를 원료로 쓰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코로나19가 전 지구에 친환경을 화두로 던진 점을 고려하면, 식품회사 포장재는 ‘F 학점’에 가까운 실정이다.

(사진=빙그레)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가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빙그레 ‘더위사냥’은 빙과 제품 가운데 보기 드물게 종이 포장재를 쓴다. 지난달 이를 계기로 환경부와 함께 ‘저탄소 친환경 생활로 지구온도 낮추자’ 문구가 들어간 특별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CJ제일제당은 리사이클(재활용), 리커버리(자연분해), 리디자인(플라스틱 경량화)에 초점을 둔 ‘3R’을 포장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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