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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거래소 찾아다니는 韓코인족…막을 수 있을까?

임유경 기자I 2022.09.10 10:00:00

국내 바이낸스 앱 일일 이용자 수, 코인원과 비슷
우회로 많아 해외 코인 거래소 차단은 현실성 떨어지는 조치라는 지적 커
지나치게 강한 규제가 풍선효과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이데일리 임유경 기자] “가상자산 사업자(VASP)로 신고하지 않은 해외 코인 거래소는 내국인을 대상으로 영업할 수 없다”는 금융 당국의 경고가 무색하다. 홈페이지에서 한국어 지원 기능만 빼면 바이낸스, 바이비트처럼 신고 대상에서 손쉽게 제외되는 데다가, 한국어 사이트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명백한 미신고 불법 업체에 대해서도 영업 중단을 강제할 방법이 마땅치가 않아서다.

이런 해외 거래소를 이용하려는 국내 투자자들의 수요도 계속되고 있다. 바이낸스 앱(안드로이드 기준)의 일일 한국인 이용자 수는 6만명 수준으로 국내 중형 거래소들과 비슷하다. 적지 않은 규모다. 미신고 불법 업체 멕시(MEXC)의 한국어 텔레그램 방에 가입한 활동인원도 1만명이 넘는다.

해외 거래소는 ‘미신고’ 업체이기 때문에 한국어 지원이 안 되거나 국내 거래소를 통해 코인 전송이 안 되는 등 사용에 불편함이 크다. 그런데도 이를 ‘극복’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 정도라는 점에서 어찌 보면 놀라운 숫자다.

정부는 해외 거래소를 찾아다니는 코인 투자자들을 막을 수 있을까?

비트코인이 290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는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지원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시세가 나타나고 있다.(사진=뉴스1)
구멍 숭숭 뚫린 정부의 미신고 해외 거래소 차단 조치

지난해 9월 시행된 ‘개정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에 ‘가상자산 사업자(VASP)’로 신고한 코인 거래소만 국내에서 영업이 가능하다. 미신고 불법 행위를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해외 거래소도 신고 대상에 포함된다. 지금까지 신고 후 합법적으로 영업하고 있는 해외 업체는 후오비코리아 한 곳뿐이다.

FIU는 미신고 해외 거래소에 대해 ▲사이트 접속 차단 ▲수사 기관에 통보 ▲국내 거래소를 통한 코인 전송 금지 ▲신용카드로 코인 매입 중지 등 강경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여전히 미신고 해외 거래소에는 한국 투자자들이 북적이고 있다. 9일 앱 분석 서비스 모바일 인덱스에 따르면 국내 바이낸스 앱(안드로이드 기준) 이용자 수는 일일 6만명에 이른다. 이는 국내 3위 거래소 코인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국내 투자자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는 바이낸스, 바이비트 등 대형 글로벌 업체는 한국어 지원을 제거하는 간단한 조치만으로 신고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런 기준은 FIU가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신고 대상이 아닌 만큼 정부도 이들 업체와 이용자들에 대해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신고 대상 기준에 해당하면서도 불법 영업을 이어가는 업체도 많다. FIU는 지난달 16개 미신고 사업자의 국내 영업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기간에 위반 사실을 통보했지만, 현재까지 이 중 6개 업체는 성황리에 영업 중이다. 대놓고 한국어 사이트를 운영하며 한국 이용자만 대상으로 한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본지 9월7일자 ‘[단독]금융위 단속 소용 없었다…‘불법’ 외국 코인거래소 활개’ 참조)

FIU는 불법 해외 거래소 이용을 막기 위해 국내 거래소에서 이들 업체로의 코인 전송을 차단시켰다. 국내 거래소에서 원화로 코인을 매입하고(주로 전송 수수료가 적은 트론 같은 코인 매입) 이를 해외 거래소로 보낸 뒤 스테이블코인(1달러와 가격이 연동된 코인)으로 바꿔 거래에 이용하는 사례까지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이용자들은 코인 전송이 막히지 않은 다른 해외 거래소를 한번 거쳐서 이들 거래소로 코인을 보내는 우회로를 찾아내 계속 이용 중이다.

(사진=로이터)
해외 거래소 차단 현실성 떨어져...문제부터 재정의 해야

미신고 해외 거래소를 차단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사이트 접속 자체를 차단한다고 해도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하면 간단히 우회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트 접속 차단은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이용까지 막기 때문에 실행하기도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해외 거래소를 차단할 수 없다면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해외 거래소로 향하고 있고 있는지 이유를 살펴보고, 문제를 재정의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현상은 공급과 수요가 맞아 떨어진 결과로 봐야한다. 해외 거래소 입장에서 한국 투자 시장은 매력적이다. 암호화폐 시장 통계 사이트 코인힐스에 따르면 전 세계 일일 비트코인 거래량 중 원화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달러, 엔화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을 만큼, 한국 투자 시장은 활성화돼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해외 거래소에는 국내 거래소에 없는 상품이 있기 때문에 찾아가는 것이다. 하락장이 길어지는 최근 시장 상황에서 공매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해외 거래소로 갈 수밖에 없다. 국내 거래소들은 VASP 신고 전후로 현물 거래를 제외한 모든 신규 서비스를 정리했다.

법무법인 린의 구태언 변호사는 이런 상황을 “지나치게 강한 규제가 만든 풍선효과”라고 지적했다.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국내 거래소에 대해 지나치게 강한 규제를 적용하다 보니, 해외 거래소로 수요가 이동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국내 거래소의 3배 레버리지 상품은 금지해도, 바이낸스의 125배 레버리지 거래는 허용하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 고팍스는 가격이 하락할 때도 수익을 낼 수 있는 ‘헤지토큰 상품’(기초 자산이 되는 코인이 하락할 경우 역으로 가격이 상승함), 가격 변동의 3배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레버리지 상품’ 등을 운영하다가 VASP 신고 전에 모두 종료했다.

물론 공매도나 레버리지 거래 같은 고위험 투자상품을 국내 거래소도 허용해야 한다는 논의를 하기엔 너무 이르다. 아직 루나·테라 사건으로 시작된 국내 거래소의 자율규제안도 나오기 전이니 말이다. 하지만, 현재 규제가 과도해 풍선효과가 일어나고 있다는 공감대는 형성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지나치게 강한 규제로 국내 거래소가 새로운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여지가 원천 봉쇄돼 있다. 코인원은 2020년 8월 출시한 간편구매 서비스를 1년4개월 만에 접기도 했다. 수수료 없이 필수 정보만 확인하면 USDT 같은 스테이블코인을 간편하게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인데, 특금법을 지키면서 사용성을 해치지 않을 방법을 찾지 못해 중단했다.

구 변호사는 “가상자산 거래소 분야에서도 역차별이 일어나고 있다”며 “규제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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