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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전용공간 내 한 세미나실. 시각예술·문학·음악·연극·무용 등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연구생들 각자는 원하는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주고받았다. 그중 연극연출 분야로 참가한 유명훈(33) 씨는 “이 자리는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가 어떤 생각을 갖는지 공유하는 열린 장”이라며 “편안하고 부담 없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공동창작’을 위한 의견 교환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문학분야의 황유원(34) 씨는 “시를 많이 쓰고 있는데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며 “한 가지 주제 아래 시와 무용, 음악을 결합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하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우리 문화예술을 이끌어나갈 차세대 예술가를 위한 융·복합 교육에 나섰다. 문학·시각예술·공연예술분야 신진 예술가들의 새로운 창작주제와 조사연구, 창작과정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를 지난 4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 중이다.
△70명 예술가에 연구비 등 지원…창작지원금 최대 3000만원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는 기존 차세대예술인력육성 지원사업(AYAF·아야프)과 창작아카데미(오페라·무대예술 등)를 통합·개선한 사업으로, 만 35세 이하 차세대 예술가가 참여하는 연구·창작아카데미 과정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작품창작뿐 아니라 창작준비를 위한 분야별 교육과 연구비를 지원한다. 문학·시각예술분야는 연구비로 월 50만원씩 6개월간 1인당 300만원을 지원하며, 공연예술분야는 4개월간 1인당 200만원을 제공한다. 창작지원금은 작품당 1000만~3000만원 이내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
기존 창작비용 보조에 그친 지원사업을 보완해 장르를 세분화하고 참가인원을 대폭 늘렸다. 문학·시각예술·연극·무용·음악·오페라 등 6개 장르의 예술가 70명이 어울려서 함께 강연을 듣고 협업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최근 융·복합 콘텐츠와 인재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데 따른 맞춤형 교육이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특권도 제공한다.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와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 바트로메우 마리 리바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과 마리아 린드 2016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시각예술), 작가 이강백과 연출가 고선웅(연극), 현대무용가 차진엽과 김설진(무용) 등의 강연을 마련했다.
연구생들은 각 분야별로 중간발표를 거쳐 내년 2월께 최종 1~2작품을 선정할 예정. 아카데미과정에서 발굴한 우수작품에 대해선 제작·발표를 지원하는 한편 창작산실지원사업 등과 연계한 후속지원을 이어갈 방침이다. 김효은 창의예술인력센터 창의아카데미팀장은 “서바이벌임에도 창작자끼리 연대해서 서로 협력하려는 의지가 높다”며 “이를 통해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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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악·국악 어우러지는 창작품 연구 중”
대학에서 클래식작곡을 전공한 강경묵(29) 씨는 양악과 국악의 콜래보레이션 작업을 할 생각에 들떠 있다.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에는 지난해 홈페이지에 난 공고를 보고 지원해 참여하게 됐다. 강씨는 “아직까지 대학에서 서양작곡을 전공하는 학생에게 국악을 직접 가르치는 커리큘럼은 거의 없다”며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장르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창작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강씨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양악과 국악의 융합이다. 전혀 다른 느낌의 음악이지만 각 음악의 특성을 살려 공연을 기획해보고 싶다고 했다. “단순히 협업하는 수준이 아닌 타임머신을 타고 공간이동을 하는 느낌으로 공연을 제작해보고 싶다. 아직은 막연하지만 조명이 켜진 한쪽에선 19세기 한국의 국악연주를 들려주고, 다른 쪽에선 20세기 유럽에 있는 듯한 서양음악을 연주하는 거다. 이런 콘셉트는 처음 시도해보는 거라 설렌다. 하하.”
수업을 들으면서 평소 관심있던 국악을 좀더 심도있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강씨는 특히 국악의 ‘즉흥성’에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서양음악은 주어진 악보대로 연주자가 각자의 개성을 살려 연주하지만, 국악은 직접 음을 창조해 즉석연주를 하기도 한다. “양악에선 재즈를 제외하곤 10분 이상 악보를 안 보고 연주하는 경우는 없다. 반면 국악의 ‘산조’나 ‘사물놀이’의 경우 정형화된 악보가 없고, 연주자들은 느낌으로 공연을 이어간다. 서양음악이 잘 훈련된 스포츠선수라면 국악은 잘 노는 놀이패 같은 느낌이다.”
최종 작품으로 선정돼 자신의 무대를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는 게 강씨의 목표다. 강씨는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이 어떤 작업을 하는지 견제할 시간이 없다”며 “나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무대 위에서 멋지게 선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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