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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명량엔 12척 배와 성난 바다가 있었다[물에 관한 알쓸신잡]

이명철 기자I 2022.02.12 11:30:30

인력에 의한 밀물과 썰물 현상

[최종수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

너무나 유명한 말이죠? 명량해전을 앞두고 수군을 폐지하려는 선조에게 이순신 장군이 올렸던 장계에 담긴 글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장계를 올린 후 명량에서 남아있는 배로 330여척의 일본 배를 거의 전멸에 가깝게 격퇴합니다. 기적 같은 승전이 가능했던 것은 죽기를 각오로 싸운 병사들과 바닷물 흐름을 이용한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지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남 우수영 울돌목 해상에 설치된 총길이 110m의 스카이워크. (사진=해남군)


명량은 전라남도 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이라는 곳입니다. 명량은 울돌목의 한자 지명인데 울돌목과 명량 모두 바닷물이 울면서 도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지명만으로도 바닷물 흐름이 얼마나 빠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어 준 바닷물 흐름은 밀물과 썰물입니다. 밀물은 해수면이 높아져 바닷물이 육지 쪽으로 밀려들어오는 것을 가리키고 썰물은 반대 현상을 말합니다.

밀물과 썰물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요? 이 현상은 달, 태양, 그리고 지구가 서로 끌어당기는 인력으로 나타납니다. 지구에 인력이 작용하면 액체인 바닷물은 힘을 받아 움직이게 됩니다. 인력을 강하게 받는 곳은 바닷물이 모여 밀물이 되고 인력을 약하게 받는 곳은 바닷물이 빠져 썰물이 됩니다.

지구에 대한 인력의 크기는 태양이 달에 비해 165배나 크지만 밀물과 썰물에 대한 영향은 달이 태양보다 1.5배 정도 큽니다. 그 이유는 지구와의 거리에 있습니다.

태양은 지구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지구상의 모든 곳에 거의 비슷한 인력이 작용합니다. 이에 비해 달은 지구와 비교적 가까워 지구에 미치는 인력도 곳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인력의 차이가 밀물과 썰물을 만들고 태양과 달의 위치에 따라 세기도 달라집니다. 태양과 달이 일직선상에 있을 때는 지구에 미치는 인력이 가장 커지기 때문에 밀물과 썰물의 세기도 커지는데 이때가 그믐과 보름입니다.

태양, 지구, 달이 직각으로 배치되는 반달일 때는 태양과 달의 인력이 한 지점에 집중되지 않기 때문에 밀물과 썰물의 차이도 작아집니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가장 큰 때를 사리라고 하고 차이가 가장 작은 때를 조금이라고 합니다.

바닷물 움직임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인력 외에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바로 지구 자전에 위한 원심력입니다. 지구 자전에 의한 원심력과 달과 태양의 인력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밀물과 썰물이 생기게 됩니다.

지구 자전에 의한 원심력은 지구상 모든 지점에서 변함이 없지만 달의 인력은 지구가 자전함에 따라 지점에 따라 인력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달과 태양을 바라보는 쪽은 인력을 크게 받기 때문에 바닷물이 모여 밀물이 되지만 지구가 자전하면서 달을 바라보는 위치가 바뀌면 밀물과 썰물이 나타나는 지점도 달라집니다.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이유. (이미지: 최종수 박사)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겠습니다. 지구의 어떤 지점이 달을 마주보는 위치에 있으면 달 인력과 지구 원심력이 커 밀물이 되지만, 지구가 6시간 동안 자전해 90° 회전한 위치로 이동하면 달 인력과 지구 원심력이 약해져 썰물이 됩니다.

다음 6시간을 더 자전해 180° 위치로 이동하면 이번엔 지구 원심력이 커져 밀물이 됩니다. 이렇게 지구에서는 6시간마다 밀물과 썰물이 반복됩니다.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는 시간을 좀 더 정확히 계산하면 6시간보다 좀 더 긴 6시간 12분 쯤 됩니다. 이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지구가 자전하는 동안 달도 지구의 자전방향으로 매일 13°씩 공전하기 때문입니다.

어제 그 시간이 되었을 때 달은 어제 위치보다 13°만큼 동쪽으로 이동해 있기 때문에 지구가 이걸 따라잡기 위해서는 50분을 더 자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달이 어제 위치가 되기 위해서는 24시간이 아닌 24시간 50분이 걸립니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커지기 위해서는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는 곳이 만처럼 좁은 공간이어야 합니다. 만에서는 바닷물이 좁은 공간에 갇히기 때문에 밀물과 썰물의 수위 차이가 커지게 되죠.

이런 지형을 가진 곳이 바로 우리나라 서해안인데 밀물과 썰물에 의한 수위차가 5~8m나 됩니다. 서해에 비해 바닷물 흐름이 조금 열려 있는 남해안은 수위차가 2~3m, 바닷물 흐름이 완전히 열려 있고 수심도 깊은 동해안은 수위차가 0.2~0.3m밖에 되지 않습니다.

서해와 같이 밀물과 썰물의 수위차가 큰 곳의 길목은 물 흐름이 빨라지게 됩니다. 명량해전이 있었던 울돌목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바닷물 흐름이 가장 빠를 때는 시속 20km나 된다고 하니 그날 명량에는 12척의 배와 성난 바다가 있었던 셈입니다.

■최종수 연구위원(박사·기술사)은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University of Utah Visiting Professor △국회물포럼 물순환위원회 위원 △환경부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자문위원 △대전광역시 물순환위원회 위원 △한국물환경학회 이사 △한국방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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