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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의 시대]장애인 자녀의 생활 신탁으로 보장받는다

이승현 기자I 2020.11.14 09:26:51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 어느 날 아침 지방의 한 영업점에서 급히 상담요청이 왔다. 도움을 요청하는 직원의 설명을 들으니 장애인 자녀를 위한 세제혜택을 활용한 장애인신탁과 그 자녀를 위한 종합적인 지원설계를 요청하는 내용이다. 신탁이 필요한 곳이라면 직접 대면해서 상담하고 특히 장애인과 치매, 미성년 후견 등의 경우이기에 무엇보다 우선해 상담을 배정했다.

“아이보다 딱 하루만 더 살고 싶다!”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
상담을 청한 이는 50대 여성 박소희 씨였다. 박씨는 남편과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고 있는데 둘째 아들이 발달장애인이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있고 아직은 부부가 계속 일을 하고 있다. 박 씨 부부의 가장 큰 고민은 발달장애인 아들에 대한 것이었다. 성년이 된 아들이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하거나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사회성을 기르기를 바라지만, 아들은 그런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고 대개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박씨 부부는 은퇴가 다가오면서 아들을 위한 안전한 자산관리 방안을 고심하던 중 ‘장애인신탁’과 우리 트러스트센터를 알게 됐고 일단 가까운 지점에 상담을 요청하였다.

신탁을 하려는 목적은 현금일부와 오피스텔을 장애인 아들에게 미리 증여해 아들이 사망할 때까지 그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다. 엄마인 자신이 사망한다면 장애가 있는 아들이 혼자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박 씨는 상담하는 동안 “아이보다 딱 하루만 더 살고 싶어요”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박씨는 자신이 없더라도 아들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금전 요구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고, 험한 세상에서 인격적으로도 충분한 대우를 받을 수 있길 바랬다.

박씨가 보유한 현금과 월세가 나오는 오피스텔 한 채를 아들에게 증여한 후 아들이 수탁자인 금융기관과 신탁계약을 맺으면 자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고 세제혜택도 받을 수 있다. 장애인에게 5억원까지 증여하고 그 증여된 재산을 신탁할 경우 증여세 과세대상에서 제외되는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위한 재산관리 방안과 관련해 증여세 혜택을 마련해두고 있다. ‘장애인신탁’이 그 중 하나이다. 장애인신탁을 체결하고 일정한 조건을 갖추면 증여받은 재산은 5억 원까지 과세가액에 산입하지 않는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52조2 에서 규정하고 있는 장애인신탁 규정은 1998년 최초 도입돼 수익자로는 ‘장애인복지법’에 의한 장애인, 국가유공상이자, 항시 치료를 요하는 중증환자(암환자, 만성신부전증환자, 고엽제후유증환자 등)이 해당한다. 재산을 증여할 수 있는 사람으로는 부모나 할머니.할아버지 등 직계존비속 뿐 아니라 타인도 가능하다. 신탁할 수 있는 재산은 금전 외에도 유가증권. 부동산도 포함된다.

신탁 방법으로는 두가지가 가능하다. 하나는 아들에게 재산을 먼저 증여 후 아들로 하여금 신탁계약을 하게 해 제혜택을 받는 경우이다. 둘째는 본인이 직접 신탁계약을 체결해 아들을 수익자로 지정하는 방법이다. 세법개정으로 2020년부터 적용된다.

단, 증여세를 면제받기 위해선 지켜야 할 조건이 3가지 있다. ① 증여받은 재산을 전부 자본신탁법에 따른 신탁업자에게 신탁할 것 ② 그 장애인이 신탁의 이익 전부를 받는 수익자일 것 ③ 신탁 기간이 그 장애인이 사망할 때까지 되어 있을 것을 지켜야 한다. 만약 이런 조건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에는 증여세가 부과된다.

박 씨의 경우 만약 아들에게 먼저 증여를 하게 되면 당장 신탁계약을 맺기는 불가능했다. 둘째 아들이 증여받은 재산의 소유자로서 신탁계약의 ‘당사자’가 되어야 하는데, 장애 정도가 심해 법률행위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법률행위를 대신해 줄 ‘성년후견인’을 먼저 선임해야 한다. 물론 성년후견인으로는 박씨 자신이 될 수 있다. 아들이 20대로 젊어 앞으로도 많은 법률 대리행위가 필요하기에 시간적 여유를 두고 처음부터 후견인을 선임해 진행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만약 후견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바로 아들을 위한 신탁계약을 하고자 한다면 2020년부터 추가된 방식, 즉 박씨가 직접 신탁계약을 맺고 아들을 수익자로 지정할 수 있다.

만약 5억원을 성인자녀에게 증여한다면 약 7800만원의 증여세를 부담하게 된다. 장애인신탁제도를 활용할 경우 이를 절감할 수 있다. 또한 2018년부터 중증장애인을 위한 의료비, 간병비, 특수교육비 등의 목적으로 중도인출이 허용됐고 2020년부터는 중증장애인의 기초생활비 용도의 인출이 150만원까지 허용되는 등 점차 현실적 고민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개선되고 있다.

다만 5억원의 비과세 한도문제나 증증 장애인의 경우에만 월 150만원 한도의 생활비 인출을 허용하는 게 적정한가 등에 대한 추가적인 제도개선은 필요하다. 또한 제도의 활용을 높이기 위해서는 꼭 자본신탁법상의 신탁업자에게만 신탁하는 것이 적정한가에 대한 검토도 요구된다.

일본에서도 장애인을 위한 신탁제도를 둬 증여세를 면제해주는 이유는, 장애인은 상속이 발생했을 때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우므로 부모 등이 생전에 증여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은 1975년에 처음 도입되었는데 2013년 경증지적장애인도 가입 대상에 추가하되 중증장애인보다는 낮은 비과세 한도를 부여하고 있다.

장애인신탁의 실질적인 대안, 부동산신탁과 주식신탁의 활용 그리고 장애인보험

현금을 신탁할 경우, 증증 장애인이 아니라면 월 150만원의 생활비를 중도에 인출할 수는 없고 낮은 이자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에 직면한다. 그래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오피스텔 구입 등 부동산신탁을 고려할 수도 있다. 부동산의 임대수입으로 아들의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도록 신탁을 설계하고, 만약 5억원을 초과한다면 유언대용신탁과 부동산관리신탁계약을 추가로 맺어 부모 사후에 해당 부동산이 온전히 장애인 아들에게 이전되도록 설계할 수도 있다. 아들은 자기 생을 다할 때까지 신탁을 통해 생활비를 충당하고, 부모 사후에는 은행에 부동산관리신탁을 맡길 수도 있기에 안전성을 확보할 수도 있다.

또한 우량주식의 장기적인 신탁을 통해 배당금을 통한 현금확보나 연간 4000만원까지 장애인을 위한 연금보험 비과세 혜택도 있어 다양한 방안을 함께 활용할 것을 권유 드린다.

◆배정식 센터장은…

1993년 하나은행에 입사해 현재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0년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리빙트러스트를 연 뒤, 신탁의 사회적 역할을 확장하고 있다. 서울대 금융법무과정, 고려대 대학원(가족법), 건국대 부동산 대학원 등을 거쳐 호서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현재 금융연수원 등에서 강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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