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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확대경]무늬만 주식회사 남양유업

김재은 기자I 2019.03.01 06:30:00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지난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계기로 주주의 제 목소리 찾기가 한창이다. 그간 거수기였던 국민연금은 집사(스튜어드)의 역할을 제대로 하겠다며 저배당·갑질 기업들에 배당 확대, 경영 개선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기업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 당장 배당을 늘리겠다는 곳도 있고, 중장기 경영개선안으로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기업도 있다. 주주가치 제고는 시대적 흐름이다.

하지만 대리점 갑질로 유명한 남양유업(003920)은 호기롭게 국민연금의 배당 확대 제안을 거부했다. ‘배당 확대시 최대주주의 이익이 가장 많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일반주주와 최대주주간 배당액을 달리하는 차등배당 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남양유업은 애써 모른 척 한다.

나아가 ‘저배당은 장기투자를 위한 포석’이라고도 했다. 그럴싸해 보이지만, 유업계는 성숙산업으로 반도체처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지 않다. 더군다나 남양유업은 최근 5년간 동종업계에서 가장 적은 770억원을 투자했다. 롯데푸드의 투자액(3900억원)대비 5분에 1수준에도 못 미친다. 그 덕에 이익잉여금은 지난해 9월말 기준 9150억원이나 된다.

남양유업은 배당과 투자엔 인색했지만, 임원 급여는 통 크게 늘렸다. 1998년 이후 2017년까지 20년간 배당금(보통주 기준)은 주당 750원에서 주당 1000원으로 겨우 33.3%(250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임원의 평균 급여는 4967만원에서 3억2158만원(등기이사)으로 84.6%(2억7191만원)나 늘어났다. 배당금보다 임원급여가 2.54배 가량 가파르게 증가한 것.

특히 홍원식 회장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8억895만원을 급여로 받았다. 2017년 남양유업 연간 배당금 총액(8억5500만원)과 비슷하다. 상황이 이러니 최대주주(홍원식 회장) 이익이 가장 많아 배당을 늘리지 않는다는 말이 궤변으로 들릴 수 밖에….

물론 남양유업 외에도 배당 확대 요구를 거부하거나 배당을 줄이는 곳도 있다. 성장을 위해 투자가 필요하거나 업황 변화에 대비해 내부유보금을 쌓아놔야 하는 경우 등이다. 과도한 배당은 기업가치를 오히려 훼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같은 회사의 사정을 설명하고 장기적인 주주가치 제고 계획을 제시하는 게 주주에 대한 예의다.

뭐가 문제냐는 식의 짠물 배당에 궤변을 늘어놓는 남양유업은 ‘홍 회장 일가의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듯 하다. 1964년 창업주 故홍두영 회장이 설립해 아들인 홍원식 회장으로 승계된 상태다.

하지만 잠깐. 남양유업은 주식회사로 무려 40여년전인 1978년 거래소에 상장했다. 주식회사는 주식을 소유한 주주가 주인인 회사를 말한다. 400여년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유래했다. 동방 해상교역을 하는데 엄청난 위험과 비용이 드는 만큼 투자자들이 일정금액(지분)을 투자해 성공하면 이익을 나누고, 실패하면 투자한 만큼의 손실을 봤다.

홍 회장 일가가 남양유업의 지분 절반(53.85%)을 가지고 있지만, 엄연히 나머지 절반의 지분을 보유한 다수의 주주가 있다. 그래서 주식회사는 내 것이 아닌 우리(주주) 것이다. 그게 싫으면 100% 가족 소유의 회사가 되는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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