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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권리장전]"교육은 포기 못해요, 제가 죽어도 아이는 살아가야죠"

이슬기 기자I 2017.10.02 06:30:00

형을 향한 관심이 샘났던 동생, ‘마음의 병’이 결국 장애로
"돈이 없으면 빚이라도 낼 수 있지만 애 맡길 곳 없어 막막"
" 가까운 학교 보는 게 소원인 장애아 부모마음 헤아려주길"

[이데일리 이슬기 기자] 장애학생 부모들이 차디찬 강당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마이크를 잡은 이은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는 “욕을 하시면 욕 듣겠습니다. 모욕을 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학교는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며 절규했다.

지난달 5일 탑산초 강당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서진학교) 설립 2차 주민토론회’ 장면이다. 뉴스 화면에서 장애학생 부모들의 모습을 본 이성희(39·가명)씨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신 역시 장애가 있는 두 형제를 키우는 엄마로서 “(특수학교를 설립할 수 있도록)제발 도와달라”며 눈물 흘리던 호소가 누구보다 가슴에 절절하게 와 닿았다.

이씨는 “특수학교가 혐오·기피 시설로 취급받는 사실 자체가 슬프지만 집값 등을 이유로 건립을 반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장애가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소재 국립 특수학교 한국우진학교에서 장애학생들이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형을 향한 관심이 샘났던 동생, ‘마음의 병’이 결국 장애로

태어났을 때부터 목을 가누기도, 눈 맞춤도 어려워했던 ‘발달장애 경계’ 첫째 진영(8·가명)이와 달리, 둘째 재영(5·가명)이는 모든 게 정상이었다. 세 돌까진 그랬다.

“진영이가 휠체어를 타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시작됐어요.”

지난해 5월 첫째 진영이는 ‘소아대퇴무혈성괴사’란 병을 얻었다. 근육의 움직임을 조절하지 못하다보니 행동이 과격해져 뼈와 관절이 괴사한 탓이다. 괴사한 뼈와 관절이 다시 자랄 때까지 진영이는 1년간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다.

25㎏이 넘는 진영이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빌라 3층 계단을 매일 오르내렸다. 엄마의 온 신경은 진영이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엄마 사랑을 독차지 하는 형’. 재영이 눈에 형은 그렇게 비쳤다. 자신도 형처럼 하면 엄마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땐가부터 재영이는 혼자 걸으려 하지 않고 발음도 뭉개기 시작했다. 별다른 이유없이 짜증을 내는 일이 부쩍 늘었다. 휠체어를 더 큰 것으로 바꿔 형제를 나란히 앉혀 태우고 다니기 시작했다.

재영이 증세가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설마’하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도가 심해져 재영이 발음은 알아듣지 못할 정도가 됐다. 올해 초 병원을 찾은 이씨는 ‘조음장애’(혀짤배기 소리를 내고 말소리가 정확하지 않거나 이상한 소리로 대치되는 등의 증상)라는 판정을 받았다. 형처럼 관심을 받고 싶던 재영이 마음의 병이 ‘장애’로 이어졌다.

‘첫째를 보육 시설에 맡길 수 있었다면 재영이가 저렇게까지 되진 않았을텐데….’ 이씨의 마음은 무너졌다.

◇“교육 포기 못해, 부모 죽어도 아이는 살아가야”

“돈은 빚이라도 낼 수 있지만 문제는 애 맡길 곳이 없는 거죠.”

형제 모두 장애를 얻게 되면서 이씨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남편(42)은 서울 은평구에서 직장이 있는 경기 안양까지 매일 출퇴근하는 터라 형제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 1시간 남짓에 불과했다.

부부 싸움이 잦아졌다. 반 년을 꾹 참고 홀로 통원치료를 감당해 온 이씨는 남편에게 “도와주지 않을 거면 갈라설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남편은 ‘잘릴 각오’를 하고 올해 초 6개월 동안 육아휴직을 냈다. 육아휴직 기간 수입은 5분의 1로 준 탓에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야 했지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마음은 풍족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이들을 교육시킬 일이 걱정이다.

지금 진영이는 집에서 차로 30분 가량 걸리는 서대문구의 한 통합어린이집(장애·비장애아동이 함께 다니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그나마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 자리 비어 있었으니 운이 좋았다.

이씨는 “비장애 아이들과 부딪쳐가다 보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보인다”며 “앞으로도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어렸을 때부터 적응시켜야 한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어린이집엔 보냈지만 초등학교 입학은 더 문제다. 관내 초등학교에 보내고 싶지만 엘리베이터가 있는 학교가 많지 않은 데다 특수반에 자리가 남은 초등학교가 거의 없다. 이씨는 “아무 대책이 없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이씨는 “일반 학교에 보내다 보면 장애학생 부모는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며 “‘아이가 가까운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게 행복’인 장애아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 사회 통합 차원에서라도 특수학교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부모가 죽은 뒤에도 아이들은 우리 사회 공동체 일원으로 살아가야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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