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패션산업](中)3인의 전문가 "변화 없이는 미래도 없다"

최은영 기자I 2015.12.04 06:00:00

디자이너·연구원·상품기획자 3인 인터뷰
"콘텐츠·유통방식 다 뜯어고쳐야..."

[이데일리 최은영, 염지현 기자] 유니클로의 한국 매출 1조 돌파로 국내 패션 시장을 점검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3~4%대 저성장의 늪에 빠진 패션 시장에서 우리는 못한 일을 외국 브랜드는 해냈다. 한국은 인구 5000만 명의 분명한 시장 한계를 지녔지만 전자, 화장품,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선 구조적인 틀을 뛰어넘었다. 한국 패션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은 무엇인가. 국내 최고 패션 전문가 3인에게 한국 패션의 문제점과 위기 극복 방안, 나아갈 길을 물었다.

정구호 휠라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부사장
◇“한국에서 벗어나라. 세계는 하나다”

“유니클로의 성공은 콘텐츠에 있지 않다. 남보다 빨리 글로벌 시스템을 도입해 적용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한국 패션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내수에만 초점을 맞춰서다. 로컬과 글로벌을 따로 두고 얘기하는데 세계는 이미 하나다.”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인 정구호 휠라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겸 부사장은 한국 패션의 체질 개선을 강도 높게 주문했다. ‘시장은 작고 콘텐츠는 많고’ 포화상태에 이른 한국시장에서 벗어나야만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

내수에 초점을 맞춘 기획, 생산, 유통 방식이 지금의 어려움을 초래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여기에 혁신하려는 노력 없이 과거의 성과를 답습, 반복한 것이 위기를 키웠다고 안타까워했다.

그가 강조한 것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세계화’였다. 무대를 ‘한국’이 아닌 ‘세계’로 바꿔야한다고 말했다. “세계화는 한국 패션의 미래이며 거부할 수 없는 물결”이라는 말로 그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시대에 안 그래도 규모가 작은 내수시장만을 고려해 상품을 기획하고 만들고 판매하니 어려움을 겪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러한 부조화는 창작 과정에서도 엿보인다고 지적했다. 휠라코리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서울패션위크 총감독으로도 활동 중인 그는 “신인 디자이너들은 글로벌한 감성에 맞게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려 노력하는데 산업적인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고 기성 브랜드들은 시스템은 갖췄으나 현실에 안주하려 든다. 비록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닐지라도 성공이 보장된 내수 시장과 앞으로 도전해야 할 글로벌 시장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이다. 이러한 틀을 깨야 한다”고 조언했다.

K팝, K무비, K뷰티 등 앞서 세계화에 성공한 한국의 콘텐츠를 패션에 접목하는 것 또한 세계화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한복이나 우리 고유의 민속적인 것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것만이 한국적인 것은 아니다. 한국의 문화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꾸준히 발전하고 진화해왔다. K팝과 같은 문화·IT 강국으로서의 플랫폼 등 한국 패션을 알릴 방법은 많다. 이러한 이점을 살려 세계화를 이뤄낸다면 충분히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인경 삼성패션연구소 선임연구원
◇“유통 변화에 둔감..빅데이터 활용해야”

“아직도 온라인 통합몰 하나 구축하지 않은 패션 회사가 수두룩하다. 백화점에 목매는 예전 유통 방식으로는 모바일로 해외 직구를 하는 10~20대 젊은이들을 잡을 수 없다. 유통 변화에 촉각을 곤두 세워야 한다.”

나인경 삼성패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현재 패션산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뒤늦은 시장 변화 대응’을 꼽았다.

나 연구원은 “브랜드를 여러 개 가지고 있는 꽤 큰 중견업체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온라인 통합몰 하나 없는 경우가 흔하다”며 “아직도 백화점 입점이 최고라고 여기는 패션업체가 적지 않은데 백화점의 시대는 끝났다. 앞으론 빅데이터를 활용해 온라인 시장을 파고들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나 연구원은 온라인 채널에 주력하는 것이 ‘자라’, ‘유니클로’ 등 글로벌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규모가 작은 한국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은 대량 생산으로 원가를 낮추고 이를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팔아치우는 유니클로, 자라 같은 글로벌 기업에 ‘규모의 경제’에서 밀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신규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온라인·모바일 채널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빅데이터 활용은 필수라고 조언했다. 빅데이터를 통해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에겐 정장을, 요가 학원을 검색하는 30대 여성에겐 스포츠 의류를 권하는 방식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강화해야한다는 것이다. 인구가 줄고, 소비자의 기호가 다변화하면서 고객 개개인의 생활 방식을 보다 세밀하게 파악하는 일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나 연구원은 “사람들이 먹고, 자고, 입는 모든 라이프 스타일을 파악한 후 이 생활 방식에 적합한 패션을 제안해야 한다”며 “미래 시장에서의 생존 여부는 이 능력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운식 이랜드 스파오 신사·액세서리 부문장
◇“시장 확대, 세계화·현지화 사이 균형 중요”

‘저성장, 인구 감소’. 내수 시장은 한계에 봉착했다. 국내 패션업체들이 성장하기 위해선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중국 시장은 한국 패션기업에 가장 큰 미래 먹거리다. 접근성이 좋고, 체형과 취향이 비슷한 아시아 문화권에 속해 있어 ‘기회의 땅’으로 불린다.

그러나 지난 1994년 불모지에 가까웠던 중국에 진출해 지금은 국내에서보다 더 많은 매출을 현지에서 올리고 있는 패션기업 이랜드는 “기회의 땅인 동시에 살얼음판”이라고 중국시장을 이야기했다.

“중국 현지 브랜드의 성장세는 상상 이상이다. 로컬 브랜드 담당자들이 샘플 장만을 위해 우리나라 서울 명동을 자주 찾는데 그러고 나면 며칠 뒤 백화점에 똑같은 상품이 더 싸게 나와 있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이랜드를 비롯해 한국의 많은 패션기업들이 고급화 전략으로 중국을 공략했다면 앞으로는 달라야 한다. 합리적인 가격에 트렌드를 실시간으로 반영한 제품이 뜨고 있다.”

최운식 이랜드 SPA 브랜드 ‘스파오’ 신사·액세서리 부문장은 중국의 사례를 들어 급변하는 시장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비해야만 해외 진출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글로벌한 감각’은 필수다. 유니클로의 경우 디자인을 단순화하고 기술력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세계화를 실현했다.

지역별로 다른 문화와 유행을 반영하는 ‘현지화’도 중요하다. 이랜드는 곰을 좋아하고, 과감한 디자인에 열광하는 중국인들의 취향을 공략해 ‘티니위니’를 중국의 ‘랄프로렌’으로 성장시켰다.

최 부문장은 세계화와 현지화가 모두 중요한데 그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것이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랜드가 집중하고 있는 중국시장만 하더라도 20여년 사이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최 부문장은 “중화권 고객들의 눈이 점점 높아지고 성(城)에 따라, 남방인지 북방인지 등 지역에 따라, 학업 수준에 따라 수요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이를 세밀하게 고려해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며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술력과 감각을 바탕으로 하되 현지화라는 양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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