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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박물관]①궐련형 전자담배 둘 중 하나는 '릴'…'늦깎이' 반란

이성웅 기자I 2020.09.10 04:00:00

2017년 담배시장 격변기에 가장 늦게 제품 출시
지난해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서 점유율 50% 넘겨
소비자 의견 반영해 연사·휴대성·풍부한 연무량 실현
3년간 신제품 7종 선보이고 연구개발 투자

[이데일리 이성웅 기자] 2017년 궐련형 전자담배 등장으로 국내 담배업계가 격변기를 맞은 지 3년이 지났다. 지난 3년간 KT&G와 필립모리스,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BAT)는 미래 담배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2020년 현재 전에 없던 시장에서 과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한 곳은 가장 늦게 시장에 뛰어든 KT&G ‘릴(lil)’이었다. 후발주자였던 릴은 어떻게 글로벌 기업의 공세를 이겨냈을까.

(그래픽= 이미나 기자)
국내 소비자들에게 궐련형 전자담배라는 말 자체가 생소했던 2017년 ‘무주공산’에 먼저 깃발을 꽂은 것은 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였다. 지금은 한국에서 사업을 철수한 CSV(폐쇄형 액상전자담배) ‘쥴’이 등장하기 이전 ‘전자담배계의 아이폰’이라는 칭호는 아이코스의 것이었다. 2017년 6월 아이코스의 등장 이후 두달 간 아이코스는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점유율이라는 말 자체가 의미없던 시기였다.

같은 해 8월 BAT의 ‘글로’가 아이코스의 대항마로 등장했다. 연속 흡연이 불가능한 아이코스의 단점이 보완된 제품이었다. 다만, 연무량이 불과 몇 모금 만에 급감했던 1세대 제품은 아이코스를 따라잡기 역부족이었다.

해외 기업 공세 속 ‘패스트 팔로워’ 택한 KT&G

아이코스와 글로가 경쟁하던 시기 KT&G는 조용히 칼을 갈고 있었다. 사실 미래 담배시장을 염두에 둔 KT&G의 움직임은 2005년부터 시작됐다. KT&G는 2005년 전자담배 관련 원천 특허를 등록한 이후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에 들어갔다. 그렇지만 성급하지 않았다. 글로벌 담배기업들의 공세 속에 ‘왜 KT&G는 가만히 있냐’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신중히 적절한 시기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다 11월 KT&G가 공식적으로 릴을 공개하고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KT&G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을 구사해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을 충족시키며 빠르게 시장에 안착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1세대 아이코스와 글로의 단점으로 꼽혔던 연사 불가능, 휴대 편의성 및 연무량 부족 등을 모두 보완한 제품이었다.

시장 반응은 뜨거웠다. 최초 출시 전 사전예약 물량 1만대는 조기에 완판됐다. 정식 출시 후 편의점 GS25를 전초기지로 삼은 릴은 출시 초기 예약없이 구하기 어려운 제품이 됐다. 출시 100일 만에 판매량은 20만대를 돌파해 빠른 속도로 1위 제품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출시 1년이 채 안 된 2018년 10월 말 기준 릴 판매량은 100만대를 돌파했다.

그 결과 지난해 릴은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에서 점유율 50%를 넘기며 시장을 선점했던 아이코스를 제쳤다. 패스트 팔로워 전략이 적중한 셈이다. 출시 초기 아이코스의 전용 카트리지 ‘히츠’와 기기가 호환된다는 점 때문에 기기는 릴을 사용하면서도 카트리지는 히츠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현재는 기기 판매 확대와 함께 카트리지 점유율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지난 7월 말 기준 릴 브랜드 국내 누적 판매량은 240만대를 넘어섰다.

(그래픽= 이미나 기자)
전자담배에도 통한 한국 기업 ‘속도 DNA’

릴의 성공요인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빠른 신제품 출시다. KT&G는 한국기업 특유의 신속성을 갖고 소비자 반응을 신제품에 적극 반영했다. 릴 브랜드는 첫 모델 출시 이후 불과 3년 만에 7가지 모델을 선보였다. 같은 기간 경쟁사들은 4가지 모델을 출시하는 데 그쳤다.

첫 모델 출시 후 불과 6개월 만에 선보인 1.5세대 격 모델인 ‘릴 플러스’는 듀얼코어 히터를 적용해 더욱 풍부한 맛을 냈다. 또 가열부에 붙은 잔여물을 제거해 주는 ‘하이트닝 클린’ 시스템으로 청소 용이성을 높였다. 릴 플러스는 한달 만에 15만대가 팔려 첫 모델보다 같은 기간 3배 이상 높은 판매량을 보였다. 이어 기능 대신 디자인을 강화하고 무게를 40% 줄인 ‘릴 미니’를 선보였다.

릴 미니 이후 불과 1달만에 선보인 ‘릴 하이브리드’는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에서 새로운 영역을 구축했다. 연무량이 더욱 풍부하고, 궐련형 전자담배 특유의 ‘찐 내’를 동시에 해결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한 제품이었다. 이를 위해 릴 하이브리드는 궐련형 카트리지와 액상 카트리지를 모두 사용한다. 또 전용 카트리지 ‘믹스’엔 ‘Y’자 형태의 필터를 장착해 청소가 거의 필요없도록 개선했다. 릴 하이브리드도 출시 2달만에 10만대 판매를 돌파했다.

올해도 신제품 출시는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실내 흡연이 증가하며 전자담배 점유율이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2월말 편의점 판매 데이터 기준 전자담배 점유율은 13.1%다.

올해 선보인 ‘릴 하이브리드 2.0’은 궐련형 전자담배 최초로 모든 작동버튼을 없앤 제품이다. 전용 스틱을 삽입하면 자동으로 예열이 시작되는 ‘스마트 온’ 기능을 탑재하면서다. OLED 디스플레이도 장착해 사용자가 잔여 흡연 가능량 등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9일엔 2세대 제품 ‘릴 솔리드 2.0’도 출시했다. 끝까지 균일한 맛을 제공하는 ‘서라운드 히팅’ 기술과 배터리 효율을 개선해 완충 시 30개비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KT&G 핵심 부서로 거듭난 ‘NGP’

KT&G는 꾸준히 신제품을 선보이는 과정에서 특허출원도 늘어났다. 2017년 80건에 불과했던 관련 특허 출원 건수는 2018년 217개, 2019년 365건으로 늘어났다. 올해 상반기에만 397건을 출원해 이미 지난해 기록을 넘어섰다.

이 중에서도 릴 하이브리드 2.0에 적용된 스마트 온 기능은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특허가 됐다. 릴 관련 해외 특허는 지난해 179건, 올해 상반기 221건으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백복인 KT&G 사장 (사진=연합뉴스)
KT&G 내에서도 궐련형 전자담배 관련 연구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조직이 ‘NGP(Next Generation Product) 사업단’이다. KT&G는 지난해 3월 조직개편을 통해 제품혁신실을 NGP사업단으로 격상하고 전자담배 분야 연구개발을 강화했다. 이는 생산 R&D 부문장을 역임했던 백복인 KT&G 사장의 경영전략과도 일치한다. 이제는 궐련형 전자담배 연구개발 과정의 산물인 ‘냄새저감 기술’이 일반 궐련 담배에도 적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KT&G 전체 연구개발비용 역시 2017년 161억원, 2018년 179억원, 2019년 234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임왕섭 NGP사업단 단장은 “전자담배 시장은 담배 ‘브랜드’보다는 누가 더 기술의 혁신을 빨리 이뤄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주인공이 되느냐의 싸움”이라며 “혁신을 가속화해 혁신적이고 새로운 전자담배 플랫폼을 만들어 세계 담배 시장을 주도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 목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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