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찾는 골목상권]②비어가는 상가, 상생서 길 찾는다

김용운 기자I 2019.10.04 05:00:01

임대료 급등에 상권 죽은 ''경리단길'' 반면교사
배달앱 이용 늘며 창업패턴 변화
유동인구 많은 1층 상가 선호도 뚝
건물주·상인, 임대료 상승 제한 협약도

지난 5월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상가의 모습. 사진=뉴시스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서울 강남구 압구정 로데오길,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은 3~4년 전만 해도 외국인들과 젊은층으로 북적이는 소위 ‘핫 플레이스’였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 딴판이다. 임차인을 구하는 팻말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고, 문을 연 가게들도 장사가 안돼 파리만 날린다며 하소연한다.

스마트폰 대중화와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온라인·배달시장이 커지고, 급격한 임대료 상승으로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현상)이 발생하면서 오프라인 위주의 유통시장이 침체 위기를 맞고 있다. 이는 단지 유명상권만이 아니다. 임대료가 저렴한 곳을 찾아 작은 골목으로 이동한 상가들까지 다시 젠트리피케이션 상황에 맞닥뜨리며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지자체, 상인연합회 등이 대안을 찾아 나서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추가적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 2분기 중대형 상가 공실률 11.4%

3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소규모상가(주용도가 상가 등인 2층 이하, 연면적 330㎡ 이하인 일반건축물)의 지난 2분기 공실률은 5.54%였다. 소규모상가 공실률은 2017년 1분기 3.93%로 최저를 기록한 이후 계속 상승해 2018년 2분기 5.25%로 집계된 이후 5% 이하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중대형상가(주용도가 상가 등인 3층 이상, 연면적 330㎡ 초과인 일반건축물) 공실률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2분기 11.4%로 지난 5년간 동안 분기별 조사에서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7년 1분기 9.5%로 저점을 찍은 이후 계속 공실률은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특히 음식을 집으로 배달해 먹을 수 있는 배달앱 증가는 외식업에 뛰어드는 자영업자의 창업 패턴을 바꾸면서 이른바 ‘유동인구가 많지만 임대료가 비싼 1층 상가’에 대한 선호도를 낮췄다. 실제로 배달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으로 유명한 우아한형제들에 따르면 등록 업소는 약 30만 개, 월평균 약 3600만건의 주문이 이뤄지고 있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비싼 임대료와 초기 창업 비용에 부담을 느꼈던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홀에 집중했던 가게 운영 방식을 배달 중심으로 바꾸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배달 주문의 경우 상권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아 비싼 임대료를 내고 목 좋은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 보니 기존의 상권이나 상가가 아닌 주택가 골목에도 창업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상가 생태계의 변화와 맞물려 공실률을 낮추기 위한 기존 유명 상권내 이해 당사자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특히 전국에 ‘○○길’ 열풍을 불러오며 골목상권의 상징이었다가 최근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적인 지역으로 전락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경리단길’ 사례가 반면교사로 활용되고 있다.

경리단길은 이태원과 해방촌 일대 남산자락 골목길에 형성된 상권으로 특색있는 소규모 음식점과 공방, 카페 등이 싼 임대료 덕에 자리를 잡으며 2010년대 중반 유명상권으로 부상했다. 지만 사람이 몰리면서 경리단길의 임대료는 2015년 대비 2017년까지 10.2% 올라 서울시 평균 1.8%보다 6배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임대료 부담을 느낀 자영업자들이 하나 둘 가게를 비우기 시작했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대안 찾아 나선 지자체·상인들

유명상권뿐 아니라 골목상권들까지 위기에 놓이자 각 지자체들이 상인들과 함께 대안 모색에 나섰다. 성동구가 대표적이다. 성동구 성수동은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갤러리아포레 입주, 일대 대규모 아파트단지 조성 등으로 뚝섬역을 중심으로 골목상권이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급등한 땅값은 비싼 임대료로 이어졌고 결국 견디지 못한 가게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떠났다.

성동구는 뚝섬역 주변 3개 골목을 ‘젠트리피케이션 예방지역’으로 정하고 건물주·상인들과 ‘상생협약’을 맺었다. 임대료가 급등하는 효과를 가져오는 대기업 프렌차이즈 입점 금지, 임대료 상승률 임대료 이하로 제한 등이다. 대신 성동구는 지역주민들을 위해 공용주차장믈 마련하고, CCTV와 LED 가로등 교체 등 안심길 조성사업을 벌였다. 그 결과 2016년 18%나 올랐던 임대료 상승률은 2017년 오히려 16% 낮아졌고, 땅값이 많이 오른 지난해도 2.5% 상승에 그쳤다. 글로벌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이 강남이 아닌 성동구 골목을 택한 이유도 젠트리피케이션 없는 지역이 더 낫다고 판단한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덕윤 성동구 지속발전과 팀장은 “서울숲 인근 땅값이 평(3.3㎡)당 7000만원에 이르고, 공시지가가 지난해 12%, 올해 25% 올랐지만, 임대료 상승률은 법정 상한선의 절반도 안된다”며 “상생협약은 강제성이 없는데도 건물주들이 잘 지켜주고 있어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효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뜨는 골목상권인 중구 중림동의 중리단길도 건물주와 임차인들의 상생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중리단길은 2016년 6월 중림로 상인 간담회로 시작해 서울시와 중구청, 설계전문회사, 상인들이 머리를 맞대 정비한 대표적 사례다. 당시 낡고 오래된 길을 정비해 보행로를 넓히고, 어지럽게 얽힌 전신주를 지중화했다. 건물주와 상인들로 구성된 상가운영위원회가 나서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자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고, 자연스레 음식값도 저렴해 공실이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는 아직 일부 지역 얘기일뿐 여전히 대안을 찾지 못하는 곳도 많다. 이태원과 경리단길은 용산구청이 주차장 확충 등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임대료에 대한 임차인과 임대인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상권은 계속 몰락했다. 지난 2분기 이태원 상권의 중대형상가 공실률은 26.5%로 한국감정원이 조사하는 서울시내 상권 가운데 가장 높았다.

현재 여당과 야당은 젠트리피케이션 발생시 자치단체장이 긴급하게 조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등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특별법’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지만 1년 넘게 계류 중이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