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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채상병 청문회'서 드러난 전략적 사유의 빈곤

김관용 기자I 2024.06.25 06:15:00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지난 21일 국회에서 ‘채상병 특검법’ 입법을 위한 청문회가 열렸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관련된 장군들이 좀 더 당당한 모습으로 임하기 바랬던 필자의 기대는 허망했다. 일부는 증인 선서를 거부하고, 일부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를 들어 증언을 회피했다. 명예를 존중하는 군인이라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당당하지 못한 태도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전략적 사유’의 빈곤이다. 장군들에게 기대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전략적으로 사유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전쟁은 단순한 물리력의 경쟁이 아니다. 정치적 목표(ends)를 달성하기 위해 효과적인 수단(means)과 방법(ways)을 정합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미국이 베트남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실패했던 것도 정책적 목표에 부합하는 올바른 수단과 방법을 실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발단은 채상병 수사기록에서 임성근 해병 1사단장의 혐의를 빼고자 하는 국방부의 결정이었다. 이러한 결정의 원천이 대통령의 의사든 국방부장관의 판단이든, 초기 단계에서는 이론적으로 두 가지 처리방식, 즉 당근과 채찍이 존재했다. 국방부는 채찍을 선택했다.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을 항명 수괴 혐의로 기소하면서 극단적인 대립을 자초했다. 전략적 오판의 출발점이었다. 박 대령의 입장에서는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혐의가 인정되면 항명죄로 감옥에 가야 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항명죄로 기소된 박 대령측은 ‘대통령의 격노’를 중심으로 수사개입 의혹을 증폭시켰다. 지난 1년 박 대령의 투쟁은 해병대 내에서뿐만 아니라, 야당들로부터 강력한 지원을 이끌어냈다. 모든 화살이 대통령으로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이 가만히 있으면 이상한 일이다. 군검찰의 항명죄 기소에 대해 박 대령측은 대통령의 직권남용이라는 핵폭탄급 대응으로 맞서면서 국방부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한 국방부와 대통령실의 대응은 ‘회피와 거부’였다. 이종섭 전 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했다가 다시 소환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특검법을 밀어붙이자,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어떤 전략적 사유를 발견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정부측 인사들이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조직의 발전인지 알기 어렵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대통령의 연루 혐의는 더욱 짙어진다. 대통령에게도 결코 유리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국방부나 해병대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연루 장성들의 떳떳하지 못한 태도는 군에 대한 불신만 심화시켰다.

수단과 방법 역시 효과적이지 않다. 국회 청문회에서 법률적 틈새를 이용하여 증언선서를 거부하거나 증언을 회피하고 있다. 법률적 근거로 내세우는 형사소송법 제148조(유죄판결을 받을 사실이 드러날 염려가 있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 자체가 유죄 혐의를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회피적 태도로 인해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야당의 공세에 대해 신뢰할 만한 설명을 제공한 적이 없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그 어떤 출구전략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에 대한 주도적인 입장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든 법망을 벗어나고자 하는 개인들의 구차함만 두드러진다. 전략적 사유가 얼마나 빈약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필자가 이들의 전략적 무능함을 문제 삼는 것은 장성급 군인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이 전략적 역량이기 때문이다. 평시 위기상황에서 전략적 유능함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들이 전쟁 상황에서는 어떻게 행동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장군들은 이들과 크게 다를 것이라 믿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말로만 전략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평시 상황에서도 현명한 판단과 올바른 메시지를 구사할 수 있는 전략적 소통 역량을 갖추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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