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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장입구서 하객 맞고 드레스 대신 웨딩팬츠…용감한 신부들

김보영 기자I 2017.07.04 06:30:00

쇼윈도 같은 신부대기실 사양, 가족과 하객 맞이
주례·사회자도 더 이상 남성 전유물 아냐
"젠더 담론 활발한 신세대, 성차별 관행 탈피 움직임"

웨딩 드레스 대신 웨딩 팬츠를 선택하는 신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디자이너 김해연 제공)
[이데일리 김보영 김정현 기자] “제가 주인공인 인생에 몇 안 되는 축제잖아요. 결혼식 만이라도 주체적으로 치르고 싶었죠.”

다음달 결혼을 앞두고 있는 김은영(29·여)씨는 예비 남편과 상의 끝에 결혼식 당일 신부대기실 대신 식장 입구에서 하객들을 맞기로 했다. 움직임이 불편한 드레스 대신 웨딩 팬츠를 골랐고 사회는 여고 동창인 10년지기 단짝친구에게 맡겼다.

김씨는 “하객들 얼굴도 제대로 못본 채 식이 시작하길 기다리는 신부대기실은 남녀 불평등과 불합리한 결혼 문화의 상징같다”고 말했다.

◇쇼윈도 같은 신부대기실 ‘No’…드레스 대신 웨딩 팬츠

일상 속 여권(女權) 신장 및 양성 평등 문화가 확산하면서 결혼 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여자는 웨딩드레스’ ‘사회나 주례는 남성’이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웨딩 팬츠를 입는 신부, 여성 사회자 등 기존의 틀을 깨는 커플이 늘고 있다.

이들은 결혼식 시작 전 드레스 차림으로 앉아 있는 신부대기실도 거부한다. 어디로 팔려가는 ‘상품’처럼 쇼윈도에 전시돼 있는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틀에 박힌 결혼 문화를 탈피하려는 사람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맥마웨딩’(Make My Wedding) 운영자 김보경(28·여)씨는 “여성도 동등한 주인공인데 왜 굳이 대기실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대기실을 사용하지 않은 경험담을 묻는 예비 신부들이 많다”고 전했다.

드레스 대신 웨딩 팬츠도 등장했다.

지난 2015년부터 웨딩 팬츠를 제작해 판매 중인 김해연 한국웨딩드레스 디자이너협회장은 “과거와 달리 지금은 바지 입은 여성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웨딩 팬츠도 어색하지 않을 거라 봤다”며 “아직은 웨딩 드레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웨딩 팬츠를 찾는 신부들이 차츰 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 이어 주례도 여성 진출 늘어

결혼식 사회나 주례도 더이상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회사원 권진영(29·여)씨는 최근 처음으로 신랑 측 지인 자격으로 사회를 맡았다. 권씨는 “예비 신랑이었던 친구가 ‘왜 사회는 다 남자만 볼까’하며 묻더라”며 “성별 구분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친구가 부탁하기에 흔쾌히 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주례는 사회적 지위와 명망을 갖춘 남성이 맡는게 대세다.

결혼주례협회에 따르면 협회에 등록된 주례자 100명 중 여성은 고작 2명 뿐이다. 협회 관계자는 “남성 주례자가 보통 1주일에 4~5건 하는 데 비해 여성 주례자는 1년에 1~2건 맡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례 자체를 없애거나 색다른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이런 견고한 틀에도 균열이 가고 있다.

지난해 3월 결혼식을 올린 록밴드 ‘장미여관’의 보컬 육중완씨는 주례자로 가수 양희은씨를 섭외해 눈길을 끌었고 가수 인순이씨도 가요계 후배들 사이에서 주례 섭외 1순위다.

지난 4월 결혼한 회사원 구모(30)씨는 “아내와 상의 끝에 주례 시간을 양가 부모님들의 편지를 낭독하는 시간으로 대신 채웠다”며 “주변 지인들 반응도 좋아 우리 부부를 따라 주례를 없애겠다는 친구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양성평등 담론에 익숙한 세대가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면서 일어난 변화로 해석한다.

정영애 서울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과거 결혼식은 집안 간 행사여서 양가 부모들이 인정할 수 있는 남성이 주로 주례를 맡았지만 이제는 신랑·신부 의사를 보다 존중하는 경향이 생긴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현재 여성문화연구소 대표는 “과거에는 돈을 벌고 외부 인사와 접촉을 하는 일은 남성의 전유물, 여성은 그런 남편을 도우며 가정에서 다소곳이 있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돼 왔다”며 “신부대기실은 그런 성차별적 인식이 문화로 자리 잡은 경우인데 양성평등 논의가 활발한 20~30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과거 관행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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