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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풀어낸 '조선족 정체성'

김용운 기자I 2015.04.03 06:41:00

재중교포 2세 작가 최헌기 개인전
8m 회화 '설국' 외 설치·조각 등 60여점 선봬
성곡미술관서 5월31일까지

재중동포 2세인 최헌기 작가가 회화 ‘수묵 No.10’ 앞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김용운 기자).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한국의 태극기와 중국의 오성홍기, 북한의 인공기. 세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의 이미지로 그린 유화 3점이 연이어 걸렸다. 제목은 ‘자화상’이다. 무슨 뜻일까.

중국인이 아니라며 무시했다. 한국인도 아니라며 꺼려했다. 부모의 고향은 봄이 빨리 오는 남도. 그러나 일제강점기 먹고살기 위해 봄이 더디 오는 대륙으로 건너가 길림성에 터를 잡았다. 중화인민민주주의공화국은 그의 국적이 됐다. 한국과 수교가 되면서 재중동포로 불렸다. 중국과 한국의 경계인이 됐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소외감과 열등감에 정체성의 혼란은 불가피했다. “어느 순간 한국을 가장 잘 아는 중국인, 중국을 가장 잘 아는 조선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술가로서는 정체성 혼란이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나만의 예술’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5월 31일까지 열리는 재중동포 2세 최헌기(53)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은 중국과 한국,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모두 경험한 작가의 개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회화·설치 작품 60여점을 선보인다.

최헌기 작가의 1994년 작 ‘자화상’(사진=성곡미술관).


옌볜대 미술과를 졸업한 최 작가는 중국 베이징을 근거로 한 보기 드문 조선족 작가다. 두각을 나타낸 것은 30대에 다시 입학한 베이징중앙미술학원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다. 교수들의 추천을 받아 1995년 중국국립미술관에서 ‘최헌기 유화전’을 연 이후 베이징의 미술관계자의 눈에 띄었고 이후 ‘조선족 작가’의 분명한 색깔을 이어오고 있다.

최 작가는 “이번 전시는 2013년 중국 베이징 위안덴미술관에서 선보인 ‘광초 10년’ 전을 보다 확장해서 꾸몄다”며 “예술이란 특별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란 신념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자화상’을 비롯해 길이만 8m에 달하는 최신작 ‘설국’ 등 회화 외에도 마르크스와 마오쩌둥 등 공산주의 사상가들의 허상을 풍자한 설치작품 ‘붉은 태양’,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마치 부처의 모습처럼 변용한 조각 등을 통해 ‘경계인 정체성’을 풍부하게 표현했다.

최 작가는 “한때는 주변인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어디에나 다 속한다고 생각한다”며 “베이징에서 주로 작업하지만 한국 동해안에 중국작가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양쪽을 오가며 활동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02-737-8643.

최헌기 작가의 길이 8m 대작 ‘설국’(사진=성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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