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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탈리오 법칙' 퇴장, 아직 이르다

최은영 기자I 2018.06.27 07:00:00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전 서울변호사회장] 여기 사람을 잔혹하게 살인한 연쇄 살인마가 있다. 피해자 가운데 여성, 아동 등 사회적 약자도 포함돼 있다. 심지어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흔적도 발견됐다. 만일 이같은 범죄가 세상에 알려지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까? 아마도 범죄자에 대해 ‘똑같이 죽여라’는 여론이 높지 않을까 싶다. 마치 내 식구들이 피해를 입은 양 사람들은 격분한다. 사형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력한 근거가 여기에 있다. 사형은 범죄자에 대한 가장 강력한 응징이
자 피해자의 보복감정을 만족시키는 정의의 원리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오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형벌의 목적은 범죄자에 대한 응보가 아니라 교화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사형 폐지론을 주장하는 견해도 강력하다. 1975년 대법원 판결 선고가 나온 지 18시간 만에 8명의 무고한 인명이 사형 집행 당한 아픈 역사가 우리에게 있다.(2007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선고했다)

한편, 2016년 기준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한 국가는 104개국이고,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폐지국으로 분류되는 국가도 30개국에 달한다.

사형이란 사람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형벌이다. 사형제가 곧 형벌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사형은 유래가 깊은 형벌이다. 일찍이 고조선의 ‘기자 8조금법’(箕子 八條禁法)에 “사람을 살해한 자는 죽음으로 갚는다”는 조문이 들어있고, 헌법은 제110조 제4항에서 법률에 의해 사형이 형벌로서 선고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해 사형 제도를 인정하고 있다. 개별법으로는 형법을 비롯한 무려 20여개의 법률에 사형이 규정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30일 사형수 23명에게 마지막으로 사형을 집행한 이래 더 이상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2007년 12월 사실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됐다. 그렇지만 이후에도 법원은 법적 절차에 따라 사형 선고를 하고 있으며, 현재 교정시설에 수용된 미집행 사형수는 군인 4명을 포함해 모두 61명이다.

지난 18일 사형제 존폐와 관련 국내외적으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우선 국내에서는 오는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 정부의 ‘사형집행 중단 방침’을 공식 선언하는 방안이 추진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추진 주체는 국가인권위원회다. 인권위는 2005년 국회의장에게 사형제 폐지 관련 의견을 표명했고, 2009년에는 헌법재판소에 사형제 폐지 의견도 제출했다. 지난 20여 년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았지만 정부는 공식적으로 집행 중단 방침을 밝힌 적은 없었는데 과연 공식적으로 집행 중단 방침을 선언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국외에서는 태국이 2012년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26세 죄수에 대해 2009년 이래 9년 만에 사형 집행을 재개한 것이 논란이 됐다. 10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면 ‘사실상 사형 폐지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2019년을 불과 1년 앞두고 돌연 사형 집행을 재개한데 대해 국제인권단체 등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사형제 존폐론은 앞으로 뜨거운 이슈가 될 전망이다. 헌법에 사형제를 전제로 하고 있는 이상 극단적인 존폐론 보다 고의적인 살인범으로 사형제를 한정하고 다른 범죄의 경우 폐지해 대폭 축소하고, 오판을 줄이기 위한 과학수사 기법의 보강 등 형사 절차적 노력을 기울이는 게 보다 현실적이지 않나 싶다.

사형제 폐지가 세계적인 추세인 것임은 분명하다. 국제엠네스티는 사형제를 극도로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며 존엄성을 침해하는 형벌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법정에서 극악무도한 범죄자에 의해 희생된 피해자의 유족들이 울부짖으며 사형을 요구하는 처절한 목소리를 외면해도 되는 것인지. 타인의 생명을 함부로 침해하는 자에게 공권력에 의해 자신의 생명도 침해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가치는 있지 않을까.

지난 2월 서울북부지방법원은 딸의 초등학교 동창인 중학생을 성추행하고 살인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 법칙’(lex talionis·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이 퇴장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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