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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이 '일상' 재난관리실 24시…13명이 대한민국 재난 모두 관리해

한정선 기자I 2017.07.28 06:30:00

재난 막으려 안간힘 써도 피해 발생하면 온갖 민원 시달려
월 초과근무 150시간 달하지만 수당 받는 건 최대 57시간 뿐
10명 증원 요구에 4명 뿐…"비상근무 끝나 아들 얼굴 봤으면"

정부세종2청사 행정안전부 중앙재난관리실에서 집중호우 대처방안 점검을 위한 관계기관 긴급 영상 대책회의가 열리고 있다.(사진=행정안전부)
[이데일리 한정선 기자] 시간당 최대 58.5mm, 총 126.0mm의 폭우가 청주에 쏟아지기 시작한 지난 24일 오전 7시 30분. 세종시에 있는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옛 국민안전처) 재난관리실은 비상근무체계에 돌입했다. 재난관리담당부서는 폭우가 예상되면 하루 전부터 비상근무체계를 가동한다.

재난관리실에서 근무 중인 나는 1996년 소방방재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2년째 안전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최근 폭우는 과거와 많이 다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비가 내리다보니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하더라도 피해를 막기가 어렵다. 오늘도 밤을 새울 각오로 출근했다.

사무실에서 가장 자주 하는 업무는 구름 떼의 이동모습을 확인하는 것이다. 평소 배수가 원활하지 않은 전국의 7000여곳을 지나갈 것으로 예상되면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폭우 피해에 대비할 것을 주문한다.

이날도 기상청은 청주 무심천 주변으로 구름떼가 이동할 것으로 예상했다. 폭우를 동반한 이 구름떼로 인해 청주 무심천이 범람하고 인근지역의 침수피해가 불가피해 보였다. 청주시에 연락해 무심천 주변 13개 도로 통제를 요청하고 주차장의 차량 19대를 대피시킬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호우특보가 없으면 대피를 시키기 어렵다. 지자체에 “요즘 폭우는 예전과 다르다. 삽시간에 물이 차고 피해가 발생한다”고 경고지만 소귀에 경읽기로 끝나기 일쑤다.

때로 동네 통반장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큰 비가 오니 농사보다 어르신들이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라고 알릴 때도 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어르신들이 많은 시골 마을은 뉴스나 재난문자를 보지 못해 대피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서다.

이처럼 최선을 다해 만반의 노력을 다하지만 쏟아지는 민원과 항의에 허탈할 때가 많다.

최근 침수피해를 겪은 한 민원인은 “지금 당장 우리 집으로 와서 물을 빼달라.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대책을 이런식으로 밖에 마련하지 못하면서 무슨 재난관리실이냐”며 화를 냈다.

“현재 전국의 하수도와 펌프 시설들은 10년에 한 번 올법한 비, 30년에 한번 올 법한 비를 대비해서 지어졌다”며 “요즘에는 200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집중호우가 쏟아지곤 한다”고 설명했지만 민원인의 화를 누그러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민원인은 “내가 낸 세금은 다 어디에다 쓴거냐?”고 소리를 지르고 끊었다. 민원인의 항의와 원성을 한바탕 듣고 나면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진다.

옆에서 민원인과의 통화를 듣던 후배는 “우리가 지으면 200년에 한 번 올 법한 비도 견디게 하수도와 펌프장을 지을텐데. 우리가 짓는게 아니니까 문제지”라며 씁쓸해했다. 경제성을 이유로 비용을 줄여 하수도와 펌프장을 짓는 건 정부와 지자체지만 침수피해가 발생하면 욕을 먹는 건 우리다.

옆자리 후배는 상황이 더욱 딱하다. 이 후배는 얼마 전 부인에게 이혼을 요구받았다. 일에 치여 청사에서 밤을 새우는 일이 다반사였고 퇴근하는 날도 오후 10~12시나 되야 귀가하기 일쑤다 보니 부인이 더이상 같이 못살겠다며 헤어지자고 했단다.

재난관리실에서 일하는 직원은 총 13명. 과거에는 폭염, 홍수, 황사, 대설, 녹조를 3개과가 나눠 관리했지만 지금은 재난관리실이 모두 맡아 관리한다.

사람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재난관리실 근무를 희망하는 사람은 전무(全無)한 게 더 문제다. ‘똑바로 안하면 재난관리실로 보내버린다’고 부하들을 협박(?)하는 부서장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10명을 증원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다음달에 4명만 충원한다는 소식이다. 한숨이 나온다.

한달 평균 초과근무 시간은 150시간에 이른다. 하지만 규정상 초과근무수당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최대 57시간이다. 나머지 약 100시간은 ‘유노동·무임금’이다. 정부가 매주 금요일을 가족의 날로 지정해 칼퇴근 한 탓에 금요일에는 초과근무를 해도 인정도 되지 않는다.

중학교 1학년인 아들 얼굴을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토요일만이라도 쉬었으면 좋겠지만 인력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 나혼자 쉬겠다고 말을 꺼내기 힘들다. 비상근무가 해제돼 ‘퇴근’을 할 수 있게 되면 아들과 치킨이라도 마음 편하게 먹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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