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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따져보기]일제강점 `한`서린 곳에 일장기라니…

김용운 기자I 2012.04.23 08:52:20

`문화역서울284`개관전
일장기 연상 작품 논란
일본 관광객들도 갸우뚱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4월 23일자 35면에 게재됐습니다.
▲ 아홉 장의 카펫으로 만들어진 김도형 작가의 `한일 카페트 로맨스`(460x270cm). 태극기의 팔괘 속에 태극문양 대신 일장기가 들어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사진=김용운 기자)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일제강점기의 한이 서려 있는 공간에 일장기를 연상하는 미술작품이 전시돼 논란이 되고 있다. 문화역서울284(구 서울역사)의 개관전 `오래된 미래`에 전시된 `한일 로맨스`란 작품이다.

문화역서울284는 지난 1925년 일제에 의해 경성역으로 건설됐다. 건설 6년 전에는 독립운동가 강우규 의사가 총독 사이토에게 수류탄 의거를 한 항일투쟁의 현장이기도 하다. 해방 후 철거하지 않고 2004년 고속철도 개통과 신 서울역사의 준공 전까지 일제강점기의 유물이자 한국철도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이후 구 서울역사는 사적 제284호로 지정됐지만 방치된 상태로 남아있었다. 결국 문화체육관광부가 2009년부터 복원공사를 통해 전시와 공연 등이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했고, 6개월간의 준비를 거쳐 지난 2일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이에 맞춰 김성원(서울과학기술대 조형예술학과 교수) 예술감독은 건축가·시각디자이너·공연문화예술인 80여명이 참가해 6월15일까지 열리는 개관전을 준비했다. 1900년 남대문정거장으로 시작해 근현대화의 중심에 있던 구 서울역을 통해 한국 근현대 일상의 문화를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다는 기획의도에서였다.

▲ 문화체육관광부가 3년여의 복원공사를 통해 전시와 공연이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한 문화역서울284(구 서울역사) 지난 2일 정식 개관했다.(사진=김용운 기자)
이 중 문제가 된 작품은 김도형 작가가 1층 다목적홀 바닥에 설치한 `한일 카페트 로맨스`. 일장기에 태극기의 팔괘를 합성한 모습으로 얼핏 `일장기`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현장에서 만난 일본인 칼럼니스트 오카모토 씨는 “왜 태극무늬가 아니라 일장기가 놓여 있는지 의아하다”며 “일장기에 팔괘를 얹은 작품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 관광객들을 안내하던 여행가이드 강정화 씨도 “한국인들이 보기에는 기분 나쁠 수도 있겠다는 게 일본 관광객들의 소감이다”고 전했다.

전시관계자에 따르면 ‘한일 카페트 로맨스’는 1층 대합실 홀 천정의 돔 형식을 반영한 것으로 1920년대 구 서울역사 건축 당시에 중앙 돔은 일장기를, 중앙 돔을 받치고 있는 철골은 태극기를 각각 본떠 지어진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어떤 의미에서 설치됐고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작품 주변에 안내판이 없는 상황이기에 관람객들이 일장기로 오해할 가능성이 높다.

문화역서울284 관계자는 “`한일 카페트 로맨스`는 언어유희와 설치미술의 접점을 찾는 작가의 아이디어도 함께 들어간 작품이다”며 “하지만 작품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아 얼핏 일장기로 보고 항의하는 관람객들이 있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작가는 “관람객들에게 일장기라고 느끼게 할 의도나 선동은 없었다”며 “(한일 간에) 정리돼야 할 것이 있는 상황에서 작가적 상상력을 가지고 지금 바라본 현실을 국기라는 정제된 상징을 통해 담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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