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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목 자사고연합회장 “일반고 전환 압박말고 차라리 없애라”

김소연 기자I 2018.03.27 06:00:00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고 자사고 압박 수단으로 피말려"
당장 올해 고입부터 일반고와 자사고 동시선발…반발 극심
자사고 "헌법소원·가처분신청 냈고, 소송도 불사할 것"

오세목 서울자율형사립고연합회장(사진=이데일리 DB)
[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자사고)는 존폐 기로에 서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자사고가 고교 서열화를 고착화하고 선발경쟁을 부추겨 교육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판단한다. 외고·국제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다.

오세목 서울자율형사립고연합회장(중동고 교장)은 정부가 ‘자사고 죽이기’ 정책을 펼치면서 교육현장을 망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 회장은 지난 22일 서울시 강남구 중동고등학교 교장실에서 가진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차라리 정부에서 법적 근거를 만들어 ‘자사고 폐지’ 정책을 추진하면 될 것”이라며 “여론을 의식해 일반고 동시선발·완전추첨제 도입·자사고재지정평가 등 여러 압박 수단으로 피를 말리고 있다”고 분개했다.

그는 “정부가 이런 식으로 정책을 펼치면 안 된다”며 “국민들을 설득하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법을 만들어야지 이렇게 자사고를 스스로 무릎 꿇게 유도해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일반고 동시선발 위헌소송 제기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지난해 12월 올해 고등학교 입시부터 자사고·외고·국제고는 일반고와 동시에 신입생 모집을 실시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금까지 자사고는 전기(11월)에 신입생을 우선 선발하고 자사고에 떨어진 학생들은 후기(12월)에 일반고에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인 학생이 자사고에 지원하려면 ‘임의배정 동의서’를 내야 한다. 자사고에 떨어지면 일반고에 임의로 배정될 수 있음에 동의한다는 내용이다.

일반고 동시선발을 두고 자사고 관계자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최명재 민족사관학원(민족사관고) 이사장, 홍성대 상산학원(상산고) 이사장, 오연천 현대학원(현대청운고) 이사장 등 전국단위 자사고 이사장들과 자사고 지망 중학생·학부모 등 9명은 지난달 28일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80조 제1항 중 ‘전기에 선발하는 고등학교’에서 자사고를 제외한 부분과 제81조 제5항 중 자사고 중복지원을 금지한 조항 등이 위헌이라는 주장이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효력정지 가처분신청도 함께 제출했다.

오 회장은 서울시교육청이 오는 30일 발표하는 ‘2019학년도 고입전형 기본계획’ 내용을 검토한 뒤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교육문제를 사법부의 판단에 맡긴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오 회장은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라는 정부 정책에 따를 경우 겪어야 할 진통이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서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환한 학교들 사례를 비춰볼 때 발생하는 갈등은 어마어마했다”며 “일반고로 전환하면 3년간 6억원을 지원한다고 하는데 지원금은 현실에 맞지 않는 터무니없이 낮은 액수다. 3년간 60억원을 지원해도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자사고→일반고 전환…“학생혼란 등 부작용 속출”

앞서 2015년 미림여고와 우신고는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환했다. 자사고가 일반고 전환을 결정하더라도 기존 재학생이 졸업할 때까지는 자사고 교육과정을 적용한다. 이 때문에 재학중이던 2, 3학년 학생들은 자사고에 입학했지만 중간에 학교가 일반고로 바뀌면서 혼란을 겪었다.

오 회장은 “일반고로 전환하면서 학부모들이 거세게 항의했고 일부 학생들은 전학을 가버렸다”며 “같은 학교에서 같은 선생님과 수업을 하는데 1학년은 일반고 등록금을 내고 2, 3학년은 일반고보다 세 배 비싼 자사고 등록금을 낸다. 누가 순순히 돈을 내겠냐”고 반문했다.

자사고는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정부가 일반고에 지원하는 연간 40억원 수준의 학교 운영비 등 재정지원을 받지 않는다. 대신 일반고 학생보다 많은 등록금과 학교 법인의 법정전입금으로 학교를 운영한다.

그는 “일반고는 사립학교라도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다. 자사고는 지금까지 정부의 재정지원도 받지 않고 재단에서 교육 환경과 과정에 투자했다”며 “공론화 과정도 없이 이렇게 자사고를 폐지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일방적으로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할 경우 자사고가 그동안 투자한 인프라도 문제다. 오 회장은 “일반고로 전환할 경우 주변 지역에 사는 신입생들이 학교에 입학하기 때문에 그동안 마련한 기숙사는 무용지물이 된다”고 했다.

오 회장은 국가로부터 신뢰가 깨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의 약속을 믿고 법령에 근거해 자사고를 운영·투자를 해왔는데, 합의나 동의 과정 없이 일반고로 전환해야 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것이다. 오 회장은 “국가로부터 신뢰 깨졌다”며 “이에 대한 문제점을 계속해서 제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

건학이념에 따라 교육과정, 학사운영 등을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학교별로 다양하고 개성있는 교육과정을 실시하는 학교다. 2002년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는 대신 학교 자체적인 교과과정을 운영하고 학생과 교사의 선발, 교육비 책정 등에 대해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학교로 자립형사립고가 도입됐다. 2010년 이명박 정부 때 자율형사립고로 명칭이 바뀌었다. 자율형사립고는 등록금을 일반고의 3배까지 받을 수 있고, 사회통합자전형(사통전형)으로 정원의 20%를 뽑도록 의무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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