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명예회장은 평생 제약 외길을 걸어온 인물로 1938년 17세에 약업계에 입문해 1946년 일양약품의 전신인 공신약업사를 창업했다. 창업 이후 한국 제약산업의 발전사와 함께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정형식 명예회장은 성실근면과 화목을 경영방침의 바탕으로 정해 일양약품을 글로벌 신약 개발 전문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업계는 정형식 명예회장의 창의성과 추진력, 부지런함, 끈기 등이 오늘의 일양약품을 성장시킨 원동력이라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고인은 약방을 경영하던 20대 시절 일본 제약서적을 탐독하고 분석해 스스로 복합·조제했던 위장약을 1957년 7월 일양약품 1호 의약품 ‘노루모’로 발전시켰다. 노루모는 한때 국민 위장약으로 불리기도 했다.
고인은 1960년대 최신식 생산시설 등에 과감하게 투자해 신제품 개발과 함께 현대식 경영으로의 전환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71년 6월에는 일양약품을 반석 위에 올려 놓은 품목으로 불리는 국내 최초 인삼드링크 ‘원비-D’를 발매해 힘들고 지친 국민의 피로회복제로 사랑을 받게 했다.
특히 고인은 중국이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으로 급부상할 것이라는 평소의지를 실천해 ‘통화일양’ ‘양주일양’을 현지에 설립했고 1995년 원비-D 중국 수출 1억병을 돌파해 산업포장을 수상했고 이듬해인 1996년에는 23회 상공의 날에 제약업계 최초로 ‘급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신약개발도 강조해 차세대 항궤양제 연구를 1990년대부터 시작해 미국, 일본 등에서 특허를 받으며 ‘놀텍’을 출시했고 아시아 최초의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슈펙트’를 개발하는데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정형식 명예회장은 평소 ‘정치나 기업은 정도를 택해야 한다’ ‘기업방향의 정도를 면밀히 설정해야 역동적이고 건강한 기업으로 발전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는 현 일양약품의 기업지침으로 자리잡았다.
고인은 서울 종로에서 출생해 1967년 고려대 경영대학원 최고과정을 수료하고 1993년 대한상공회의소 최고경영자 과정을 마쳤으며 2007년 중앙대 명예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회장 및 부회장, 대한약품공업협회부회장, 대한상공회이소 13대 상임위원, 한·방글라데시 경제협력위원회 부위원장, 의약품 성실신고 회원조합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대통령표창, 국무총리상 수장, 금탑산업훈장, 수출유공 표창, 보건사회부장관 표창, 노동부장관 표창, 재무부장관상 및 적십자 봉사장 금상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영자 여사와 장남 정도언 일양약품 회장, 차남 정영준 동방에프티엘 회장, 3남 정재형 동경 J 트레이딩 사장, 4남 정재훈 동방에프티엘 사장, 딸 정성혜를 두었다.
정 명예회장의 빈소는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실에 마련됐다. 영결식을 30일(화) 오전 7시 30분에, 발인은 같은 날 오전 8시 30분에 삼성서울병원에서 치러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