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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 탐정]'노래방 제왕' 금영의 몰락…범인은 오너와 기업사냥꾼

이성기 기자I 2016.07.07 06:30:00

김승영 회장, 업계 2위 TJ미디어 인수에 170억 투자..무산되자 위약금 등 회삿돈 60억 횡령
'기업사냥꾼' 변호사 TJ미디어 인수 실패하자 다른 회사 사들여 2년간 250억 빼돌려
檢, 김 회장, 변호사 특경법상 횡령 배임 혐의로 구속 기소

[이데일리 이성기 이승현 기자] 동네 문방구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오락기를 생산해 판매해온 게임기기업체 ‘남경실업’의 김승영(66·사진)대표는 1980년대 중반 정부의 청소년 비디오 게임기 규제로 오락기 수요가 급감하자 사업을 접었다.

그즈음 김 대표의 눈에 들어온 게 일본의 가라오케(Karaoke)였다. ‘이거다!’ 싶었던 김 대표는 1989년 전자부품 및 음향, 노래반주기 사업으로 업종을 전환하고 ㈜금영을 세웠다.

◇ 노래반주기 업종 전환 8년 만에 노래방시장 석권

김 대표는 레이저디스크로 노래를 틀어주는 일본 가라오케와 달리 반도체 칩에 노래를 담는 방식을 도입했다. 훨씬 더 많은 곡을 담을 수 있었고, 검색과 업데이트도 쉬웠다. 일본식 가라오케는 점차 자취를 감췄고 국내 시장은 금영과 아싸, TJ미디어 3개업체 간 3파전으로 재편됐다.

1996년 세계 최초 ‘육성 코러스’ 노래반주기 미디(MIDI)를 출시하고 코러스·팡파르 기능을 더해 현실감을 보강한 결과 금영은 이듬해 경쟁업체들을 제치고 국내 노래반주기 시장 1위에 올랐다. 금영의 상호로 회사를 출범한 지 8년 만이었다.

금영은 승승장구했다. 1999년 기술경쟁력 우수기업으로 선정됐고 노래반주기 관련 국내외 특허도 25개를 등록했다.

2000년대 초 급속히 확산된 인터넷 전용선을 통해 신곡 업데이트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기술을 도입하면서 국내 노래반주기 시장은 금영 측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이어 최초로 무선 마이크 시스템 개발에 성공하면서 국내 시장은 금영의 독무대가 된다.

국내 시장을 석권한 뒤 해외로도 진출했다. 금영은 일본 가라오케 기기 빅3 중 한 업체의 콘텐츠 개발에 참여하다 2003년 ‘KY JAPAN’을 설립했다. 최초의 ‘한류기업’ 타이틀을 거머쥔 금영은 이후 중국에 합작법인을 설립한 데 이어 베트남에 노래반주기를 수출했다.

◇ 업계 2위 태진미디어 사들여 시장 독식 꿈꿔

거침없는 성장 가도를 달리던 김 대표는 과욕을 부리게 된다. 특수목적법인(SPC·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우회 인수’로 업계 2위 TJ미디어를 흡수해 시장을 독식하려 한 것이다.

김 대표의 이런 ‘꼼수’는 내부고발로 실체가 드러났다. 2014년 10월 금영 계열사 출신 A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김 대표가)독과점 규제를 피하려 페이퍼컴퍼니 SL&P를 통해 코스닥 상장사 K사를 사들여 TJ미디어 인수를 시도했다”며 “2008년 말 TJ미디어와 이미 인수 가계약을 체결했다”고 폭로했다. 고발의 핵심은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업체를 통합, 노래방 관련 상품 가격을 올리기 위해 짬짜미를 꾸몄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김 대표는 다른 기업관련 사건으로 알게 된 부산 출신 변호사 이모(57)씨에게 우회인수 업무를 맡겼다. 이씨는 금영 자금 170억원으로 K사를 자회사로 인수, 이 회사 명의로 TJ미디어 인수 본계약을 체결할 생각이었다. 이듬해 2월 K사는 800억원을 주고 TJ미디어 인수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돌연 입장을 바꾼 TJ미디어 측이 매각을 철회하면서 김 대표의 구상은 꼬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김 대표는 각종 불법·탈법 경영에 나선다. TJ미디어 인수 계약 파기에 따른 위약금 25억원을 투자회사가 아닌 자신의 개인계좌로 받았다. 이 돈을 개인 빚을 갚는 데 이용한 것을 시작으로, 상환 능력이 없는 자신의 개인 부동산개발회사에 담보나 대여로 21억원을 주는 등 김 대표는 회삿돈 60억원을 빼돌렸다.

◇ 태진미디어 M&A 무산되자 휴대폰 부품사 인수

김 대표는 우회인수 업무를 맡긴 변호사 이씨에게는 TJ미디어 인수가 무산된 만큼 170억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씨는 돈을 돌려주는 대신 엉뚱한 생각을 품었다. 더 큰 상장사를 인수하면 금영에서 빌려 온 170억원도 갚고 수익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K사 명의로 지난 2009년 12월 코스닥 상장사인 휴대폰 액정 부품업체 B사를 인수했다.

업체 대표가 된 이씨는 돈을 빼돌리기 시작했다. 2010년 12월부터 2012년 3월까지 금영 측에 상환한 120억원을 포함해 총 205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했다. 주로 기업을 운영하는 지인들에게 빌려주거나 투자한 것처럼 꾸미는 수법을 이용했다. 자기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상장사 두 곳을 확보한 이씨는 회장직에 올라 고액의 급여를 챙겼다. 이 뿐만 아니라 빼돌린 회삿돈으로 금영에서 빌린 돈을 갚아 ‘오너’ 자리를 꿰차려고 했다. 전형적인 무자본 기업 사냥꾼의 행태를 보여준 것이다.

그 사이 금영은 서서히 침몰해 갔다. 김 대표의 무리한 사업 다각화 등으로 2014년 말 금영의 부채 비율은 717%, 단기차입금은 416억원에 이르게 된다.

결국 김 대표의 횡령·배임 등 각종 범죄행각과 인수·합병을 위한 무리한 투자 탓에 한때 연 매출 700억원을 올리던 우량 기업 금영은 지난 2월 말 노래반주기 사업 전체와 상호를 신설회사에 양도하고 사실상 폐업했다. 2013년까지도 연 2000억원의 매출과 수십 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던 B사 역시 지난 4월 상장 폐지됐다.

◇ 내부고발 1년 7개월 만에 檢 수사로 전모 드러나

문방구 게임 제조사에서 출발해 한때 일본 가라오케 시장까지 석권했던 금영은 오너의 과욕과 부도덕한 경영, 그리고 기업사냥꾼의 탐욕이 끼어들면서 사실상 빈 껍데기만 남게 됐다. 내부 고발이 터져나온 지 1년 7개월 만에 검찰의 수사로 금영의 몰락 과정이 그 전모를 드러냈다.

금영을 둘러싼 ‘인수·합병 관련 기업 비리 사건’을 수사해 온 부산지검 특별수사부(부장 임관혁)는 지난달 17일 특경법상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김 대표와 이씨를 구속 기소했다. 또 지난달 말에는 이씨의 횡령과 자금 세탁을 도운 코스피 상장사 전 대표 윤모(50)씨, 금융컨설팅회사를 운영하는 변호사 박모(53)씨 등 4명도 횡령 공범 또는 상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무자본 기업사냥꾼들이 코스닥 상장사를 투기적 목적으로 장악한 뒤 거액의 횡령을 저지른 과정과 수법이 드러났다”며 “1인 지배 회사 오너의 불법·독단적 의사결정과 회사 자금 지출을 견제할 장치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점을 확인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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