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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뼈있는 옛날 이야기 '그때를 아십니까'

이진우 기자I 2008.03.16 17:13:37

옛날 이야기에 '경제위기 탈출론'담아
결론은 늘 '공무원들 변해라'

[이데일리 이진우기자] 이명박 대통령은 요즘 공무원들을 모아놓고 곧잘 옛날 이야기를 한다. 주로 젊은 시절 어려웠던 이야기나 현대건설 재직시절의 현장 이야기다. 16일 장차관 워크숍에서도 옛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놨다.

육하원칙을 지키며 조리있게 또박또박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대통령의 이야기는 의외로 구수하고 듣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편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말은 내용을 요약해서 전달하는 것보다 중언부언이 있더라도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가감없이 풀어서 전달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대통령의 이야기는 내용을 곱씹어봐도 '그냥 웃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늘 뼈가 있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이를 두고 '언중유골의 MB식 화법'이라며 "대통령이 던지는 화두는 늘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말했다.

16일 장차관 워크숍에서 쏟아낸 '옛날 이야기'에도 대통령이 생각하는 '경제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길'이 담겨 있었다.

◇ 근로자들 북돋워주고 사명감 심어줘야

대통령은 "근로자의 생산성이 높아지면 원자재값 상승분을 상쇄할 수 있다"며 "다만 노사문화가 아직도 원숙한 단계에까지 올라오지 못한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을 꺼냈다. 이어진 대통령의 '옛날 이야기'에 대통령이 생각하는 답이 들어 있다. 근로자들의 사기를 높여야 한다는 뜻이다.

"과거 1차 오일쇼크를 기억하시지만, 그때는 중동이라는 탈출구가 있었습니다. 중동에 기업들이 나가 달러 가져오는 것으로 극복했고, 그 당시 제 기억으로는 대통령이 중동에 나가있는 근로자들에게 연초에 편지를 보내서 여러분은 근로자가 아니고 산업역군이다, 여러분이 번 달러는 한국에 와서 한국 경제를 살린다는 편지를 보내줘서 제가 그 편지를 근로자들을 아침에 모아놓고 애국가 부르고 새마을 노래 부르고 대통령이 보내준 편지를 읽었습니다.

훌쩍 훌쩍 우는 사람도 있었어요. 돈 벌러 열사에 온 근로자에게 '산업역군이다, 이 나라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첨병이다 여러분이 번 달러가 대한민국 살린다'는 편지를 쭉 서서 청와대에서 대통령 이름으로 보내준 것을 제가 쭉 읽었어요.
모든 기업들이 읽고, 근로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대통령 누구라고 찍은 수건을 우리가 배에 싣고 가서 나눠주었습니다.

아무튼 근로자들에게 상당히 감동을 줘가지고, 외국에 나가서 달러 벌어 진귀한 물건 사고 싶은 거 많은데 사라, 사지 말라 하기 이전에 달러 아껴서 전부 본국에 송금하는 그 때 그 모습을 제가 상상해 봅니다. 그 때 근로자 국민 정부가 하나되어 위기를 극복하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 기업인들 우대해야 경제 살아난다

대통령은 근로자들 뿐 아니라 해외에서 뛰는 기업인들의 사기도 북돋워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1차 오일쇼크 이후에 2차 오일쇼크로 가는 그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때 기업들이 참 열심히 하긴 했는데, 저도 기억이 나는 것은 수출을 많이 권장할 때이고 수출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정말 격려도 해주고 했던 그런 기억이 나는데, 한 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를 좀 하면 그 때 내가 소속하던 회사가 있었는데 그 때 자동차가 생산되지 않을 때입니다.

그 때 대한민국 수출 1등한 기업에게 그 당시 최고 좋은, 크라이슬러에서 나오는 자동차… 이름이 뭐죠? 링컨은 포드에서 나오는 거죠, 그 당시에 아무튼 수출 1등하는 회사는 크라이슬러에서 나오는 제일 좋은 자동차를 수입해서 타고 다닐 수 있게 했어요. 2등하는 사람은 포드에서 나오는 거 타고, 3등은 무슨 차인지… 하여튼 급수대로 수입해서 타고 다니게 해서 수출확대 회의를 할 때 그거 타고 가면 그 당시에 시발택시 있고, 일본 자동차 도요타에서 나온 것을 조립하던 시대인데, 하여튼 그걸 타고 들어갔는데 우리 회사는 3등 해서 스포츠카 비슷한 것을 탔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그 당시에 고물승용차 타고 다닐 때인데 (새로 받은 스포츠카는) 투 도어에요. 뒷자리는 형편없이 좁고 앞자리가 넓은데, 스포츠카이니까… 내가 과장 때인데 정주영 회장이 새로 나온 것을 탄다고 자기는 높은 사람이니까 뒤에 타고 나는 운전기사 옆에 탔는데 반쯤 누워서 타도 되더라구요. (웃음)

아주 편하고 좋은데, 나보고 그러시더라구요. “이거 뭐 형편없네.. 차 좋다더니" 덩치는 큰데 무릎을 펴지도 못하고…. 스포츠카가 처음 나와서 그게 무슨 용도인줄도 모르고 한 달쯤 타다가 옛날 차로 돌아갔는데… 그렇게 형편없던 시절에도 정부는 민간기업을 굉장히 격려하고 인센티브 줬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때 사회 전반적 우리의 수준이랄까 이런 것이 낮을 때이지만, 정부는 기업하는 사람들 격려하고 그 때 그런 자동차 타고 다니면 아주 부잣집 아이들 타는 거 수입해서 도심에 지나가면 손가락질하고 누가 타도 유명해 지던 그 시절에 기업에게 줬던 시절이 있습니다."

◇ 기업인들은 열심히 뛰는데 공무원들이 문제다

대통령의 옛날이야기 대상은 주로 장차관들을 비롯한 공무원들. 결국 '공무원들이 변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대통령이 기업에서 일하면서 수없이 느꼈던 '을(乙)의 기억'은 대통령의 발언중에 수시로 녹아나온다. 16일 장차관 워크숍에서도 공무원의 무사안일을 꼬집는 일화가 또 등장했다.

"제가 이란 이라크 전쟁이 났을 때 외무부는 아마 알겁니다.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수출했느냐면 우리 예비군복, 그게 모래사막에서 전쟁할 때 입으면 잘 표시가 안 나니까 그걸 파는데, 이라크 시장을 처음 개척했고 국교를 열 때 그 자체를 사담후세인 만나고 한 그 역사가 있는데, 하여튼 이란 이라크 시장을 열게 되었는데, 전쟁이 나서 군복이 필요하니까 양쪽에 다 팔아먹었어요.

전쟁할 때 바스라라고, 바로 위쪽에서 육탄전이 벌어졌어요. 육탄전이 벌어지니까, 옷이 비슷하니까 니 군대인지 내 군대인지 몰라서 문제가 생겼어요. 그래서 바그다드 종합상사 책임자가 구속되고 즉결처분 받게 되었을 때 참 위험에 처했을 때 CEO로서 방문하는데 외무부에서 전쟁지 방문을 못하게 했어요, 위험하다고.

그런데 외무부에서 공문이 하나 날아 왔더라구요. 전쟁 중에 위험하니까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문은 날아왔는데 가는데 말리지는 않더라구요.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피하려고 문서를 하나 띄워놓은 것 같아요. 막상 가는 데는 말리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두 달간 갔던 기억이 있는데 그렇게라도 옷 조각 하나 팔려고 전쟁 중에 양쪽을 쫓아다니며 우리가 했던 그 때를 기억해봅니다."

대통령은 행정안전부 업무보고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경찰청장이 있기 때문에 옛날에 있었던 얘기 하나 하겠습니다. 학생시절에 운동권 학생을 자랑할 것은 못되는데, 도망 다니다가 숨을 때도 없고, 그때 친절하게 경찰청 정보과 형사 한 분이 가족들에게 설득해서 자수하면 불구속 되니 자수를 시키라고.

자수할 마음이 없었지만 가족이 권유해서 남쪽에 숨어 있다가. 그런데 또 그 형사가 친절하게도, 오다가 잡히면 구속이 되니까 올라올 때까지 조심하게 올라오라고 해서, 천신만고 끝에 올라왔어요.

서울에 올라오면 잡히니까. 안양에 내려 걸어서. 서울시경까지 무사히 걸어서 자수했습니다. 그런데 조사를 다 받았는데. 5년 구속. 정보가 형사가 나중에 나를 잡은 걸로 특진을 했더라구. 내가 되게 억울했는데. 하여간 그 공로로 특진했는데. 신뢰가 없는 거지. 지금은 그런 사람 없으니까"

공무원들이 국민들을 속이고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뜻이다. '지금은 그런 사람 없으니까'라고 덧붙이며 다독이긴 했지만 대통령에게는 '아픈 추억'이고 그 이야기를 듣는 공무원들에게는 '아픈 지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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