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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범 9%만 실형…10년새 10배 늘었는데 처벌은 '솜방망이'

이승현 기자I 2018.06.29 06:30:00

몰카범죄 12년 2462건→16년 5249건·성범죄 20% 차지
실제 판결은 벌금형 68%·집행유예 17%…징역형 '9%'
기존 대법원 판례 바탕 너무 엄격하게 처벌사유 해석 지적
"상습범·유포행위 등 처벌 강화해야"

27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판교역에서 열린 ‘불법촬영범죄 근절 및 빨간원 캠페인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식 및 캠페인 참여기업 1호점 인증행사’에서 여경들이 탐지기를 이용해 여자화장실 불법 촬영 기기를 찾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대학생 A(21)씨는 지난해 4~6월 길거리나 버스 등에서 총 12차례에 걸쳐 여성 8명의 허벅지 등을 휴대전화 무음 카메라 어플리케이션으로 촬영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1심 재판에서 이 부분에 대한 무죄판결을 받았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서부지법 형사10단독 김병만 판사는 “A씨가 여성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사진을 촬영해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면서도 “해당 사진들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촬영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당시 A씨가 찍은 것은 다리가 보이는 전신촬영 사진이었다. 온라인에선 이른바 ‘몰카(몰래카메라)’ 상습범에 대해 엄격한 처벌기준만을 내세워 무죄를 내린 이 판결을 두고 비난여론이 빗발쳤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몰카범죄와 데이트폭력 등은 여성의 삶을 파괴하는 악성 범죄”라며 강력한 처벌을 주문했지만 실제 법원의 형사처벌은 ‘솜방망이’라는 비난이 많다. 몰카범죄 근절을 위해선 사법부가 지금보다 처벌사유를 확대하고 유포 등 악성행위는 더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카메라 등 이용촬영에 의한 성폭력 범죄발생은 지난 2010년 1153건에서 2012년 2462건, 2014년 6735건, 2015년 7730건, 2016년 5249건을 기록하는 등 증가추세다. 2007년(564건)에 비하면 10년새 10배나 늘었다.

전체 성폭력 범죄에서 몰카 범죄 비율도 2012년 10.5%에서 2014년 24.1%, 2015년 24.9%, 2016년 17.9%, 2017년 20.2%로 높아진 상태다. 스마트폰 대중화로 손쉽게 촬영이 가능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몰카범죄 가해자의 98%는 남성이다.

성폭력처벌특별법는 몰카 범죄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실제 법원의 형사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지난 2012년 10월부터~2015년 4월까지 기간동안 몰카범죄에 대한 1심 판결 216건을 분석한 결과 벌금형이 68%(147건)로 가장 많았다. 집행유예는 17%(36건)였고 선고유예는 5%(11건), 기타 1%(2건)였다. 실제 징역형은 9%(20건)에 그쳤다. 몰카 범죄자 10명 중 1명만 실형을 사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법원이 몰카 범죄에 대한 지난 2008년 대법원 판례를 바탕으로 엄격하게 몰카범죄를 판단한 때문으로 본다.

대법원은 “촬영한 부위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객관적으로 피해자와 같은 성별, 연령대의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들의 입장에서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와 함께 △당해 피해자의 옷차림 △노출의 정도 △촬영자의 의도와 촬영에 이르게 된 경위 △촬영 장소와 촬영 각도 및 촬영 거리 △촬영된 원판의 이미지 △특정 신체부위의 부각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김영미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법률사무소 세원 변호사)는 “성기가 노출되지 않거나 단순히 다리나 엉덩이를 찍은 경우 (재판부가) 피해자의 피해감정이 다른 사건에 비해서 크지 않다고 보거나 (가해자의) 죄질이 그리 심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성변호사회 보고서를 토대로 발의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의 성폭력특별법 개정안은 몰카행위가 상습적이거나 사진·동영상 등을 유포한 경우 등에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도 최근 몰카 범죄에 대한 엄정대응 기조를 강조하며 영상을 상습적으로 유포하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라고 주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대법원이 최근 들어 여성대상 범죄에 대해 피해자의 입장을 강조하는 전향적인 판결을 내놓고 있다”며 “몰카범죄에서도 판례의 변경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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