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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멧 녹인 불길속 아이 구한 `火벤저스` 홍천소방서 구조대 "소방관 할일 했을뿐"

송이라 기자I 2018.12.28 06:01:00

[2018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
홍천소방서 구조대 6인 대표 김인수 구조팀장 인터뷰
빌라 화재서 세발배기 아이 구조…헬멧 녹아 화상
LG의인상 상금 전액 기부…"자부심 느껴"
고질적 인력부족…"하루빨리 국가직 전환되길"
단순 생활민원으로 골든타임 놓칠 수 있다는 점 ...

지난 10월 28일 강원 홍천군 홍천읍의 한 다세대주택 4층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 출동, 화염을 뚫고 세 살배기 아이를 구한 홍천소방서 소속 대원들 (사진=강원소방본부)


[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불 났어요. 우리 애가 안방에서 자고 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지난 10월28일 오후 5시경. 홍천소방서에 정적을 깨는 비상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날따라 유난히 출동이 많았다. 고춧가루 기계에 손가락이 절단된 사고에 산악구조 신고까지 들어와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있을 틈이 없었다. 온갖 119 출동시 인명 구조에 최우선으로 투입되는 김인수(55) 홍천소방서 팀장(소방위)를 포함한 5명의 대원들은 그길로 장비를 챙기고 소방차에 올라탔다.

화기취급 부주의로 발생한 화재는 구조대가 현장을 도착한 시점에는 4층 빌라 전체를 집어삼킬 듯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최성기였다. 말 그대로 화세가 가장 왕성해져 실내온도가 1000도를 웃도는 상황에서 김 팀장을 비롯한 구조대원들은 한 치의 주저함 없이 빌라 안으로 진입했다. 눈앞은 암흑 속 강한 열기 뿐이었다.

그나마 온도가 낮은 바닥을 기다시피 낮은 포복 자세로 수색, 이불 위에 의식을 잃고 쓰러진 세살배기 어린아이를 들쳐안고 1층까지 순식간에 뛰어내려왔다. 아이를 구급대원들에게 인계하고 나니 그제서야 다리가 풀려 주저 앉았다. 구조대원 중 박동천(44) 소방장은 헬멧이 화염에 녹아내려 화상을 입은 줄도 몰랐다.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국민들은 이들에게 `화(火)벤저스`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김인수(사진) 홍천소방서 구조팀장이 지난 17일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사진=송이라 기자)


◇28년 베테랑 소방관…구조인원만 3만여명

지난 17일 화벤저스 대표로 이데일리와 만난 김인수 팀장은 “소방관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멎었던 심장을 뛰게 하고 불길 속에 뛰어들어 생명을 구조하는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1991년 임관한 김 팀장은 28년간 소방현장을 진두지휘한 베테랑 소방관이다. 그간 출동건수만 1만4000건, 구조한 인원만 해도 3만4000명이 넘는다.

흔히들 소방관이 화재 진압 역할만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소방관은 국민들이 긴급상황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도움을 요청하는 최전선에서 모든 일을 도맡는다. 벌집제거와 고드름 제거, 개·고양이 등 동물포획, 문 개방 등 각종 생활민원이 모두 구조대원의 몫이다.

김 팀장은 옛날부터 유난히 어린아이들 구조와 인연이 깊었다. 1995년 강원도에 한 병원 산부인과 신생아실에서 화재가 발생해 신생아 4명을 한꺼번에 구조했고 2001년 대관령 폭설 때 차들이 고립돼 오갈 수 없는 상황에서 분유가 떨어져 신고한 엄마에게 헬기로 따뜻한 물과 분유를 전달해 준 적도 있다. 당시 아이 엄마는 119가 정말 분유를 가져다줄 줄 몰랐다며 김 팀장을 와락 끌어 안았다. “그 날 빌라 화재 신고가 들어왔을 때도 이 아이는 반드시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불길 속에서도 팀원들이 주저함 없이 확신을 갖고 따라와준 덕분입니다.”

화벤저스 팀의 선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이 알려지면서 LG의인상 수상자로 선정돼 받은 상금 6000만원을 전액 강원소방장학회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흔쾌히 기부했다. 대원들은 “월급 받고 늘 하는 일인데 국민들의 성원으로 받은 상금인 만큼 우리보다 더 필요한 곳에 쓰는 것이 맞다”는 데 한 마음으로 의견을 모았다. 김 팀장은 “해외에서 유학 중인 딸이 현지 보도를 보고 자랑스러워했다”며 “이것만으로도 큰 선물을 받은 것”이라고 웃어 보였다.

홍천소방서 전경(사진=송이라 기자)


◇고질적 인력부족에 “국가직 전환 시급”…단순 생활민원 신고 신중해야

늘 우리 곁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소방관이지만 열악한 처우는 여전하다. 김 팀장은 “다른 것보다 팀에 딱 2명만 더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소방관은 구조, 진압, 구급, 예방 분야로 나뉜다. 홍천소방서의 관할구역인 홍천군은 전국의 군 중에 가장 넓지만 구조대원은 4명 뿐이다. 하나의 사건에 최소 2명이 투입되고 나면 같은 시간 또다른 신고가 들어와도 남은 인원으로는 역부족이다.

실제 지난해 수십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천 화재 당시 구조대원들은 고드름 제거 작업을 하다 현장 투입이 늦어졌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인터뷰 중에도 끊임없이 출동벨이 울렸다. 정부에서는 소방인력을 충원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일선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을 호소한다. 이러다보니 휴가를 제대로 못 쓰는건 당연하고 근무조가 아닐 때도 보강근무를 들어오는 것도 다반사다. 김 팀장은 “하루 빨리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돼서 업무체계나 당직근무 등이 일원화되길 바란다”며 “현장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게 인력 충원”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국민들을 향해서도 “단순 생활민원으로 119에 신고할 때는 꼭 정말 필요한 신고인지를 먼저 생각해달라”고 당부했다. 같은 개 포획 신고라도 급박한 상황이라면 당연히 119를 불러야 하지만, 개 한마리가 내 닭을 물어 죽인다는 이유 등으로 신고하다보면 해당 사건을 처리하는 시간에 정작 중요한 사건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어서다. “소방관은 국민들이 원하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든 출동합니다. 다만 나의 단순 생활신고가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소방관들에게 힘을 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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