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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가자 미스터리'…세계 最古냐 세계적 망신이냐

김성곤 기자I 2015.11.02 06:37:00

2010년 공개 후 5년간 진위논란…핵심쟁점은?
세계 最古 금속활자본 직지보다 138년 앞서나
구체적 출처·유통경로 불투명
국과수 '위조' 결론에 혼란 극심
문화재청 뒤늦게 조사 착수
진짜면 '세계사적 쾌거'
가짜면 '문화재 신뢰 떨어져'

‘증도가자’의 진위 논란이 거세다. 2010년 첫 공개 이후 위조 시비가 끊이지 않은 데다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가짜’ 결과가 나오면서 파문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진위 논란에 시달리는 증도가자(사진=경북대 산학협력단).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를 둘러싼 미스터리가 풀리지 않고 있다. 해법은커녕 갈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양상이다. 이른바 ‘증도가자’(證道歌字) 진위 논란이다. 증도가자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라는 게 입증되면 이는 세계 인쇄·출판사를 새로 써야 할 대형사건이다. 문제는 2010년 첫 공개 이후 ‘진짜냐 가짜냐’를 두고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가짜로 최종 판정이 나면 국제적 망신 속에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에 그치고 만다.

◇“위조해 들여온 정교한 위작”?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의 마지막 장에는 “고려 우왕 3년(1377) 청주목 외곽에 있는 흥덕사라는 절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해 펴냈다”는 간기(刊記)가 있다. 고려 당시 최첨단 미디어인 금속활자 인쇄술을 수도 개성이 아닌 지방인 청주의 사찰에서 사용했다는 점은 금속활자 사용이 전국적인 현상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고려의 금속활자 인쇄는 1200년대 초 개성에서 시작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최초 기록은 이규보의 문집 ‘동국이상국집’에 나온다. 1234년에서 1241년 사이 상정예문 50권 28부를 금속활자로 인쇄해서 조정 각 부처에 배포했다는 것이다. 이는 직지보다 더 오래된 금속활자의 존재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증도가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0년 9월. 서지학자인 남권희 경북대 교수 연구팀은 다보성고미술전시관(고미술품과 골동품 등을 전시하는 서울의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활자 100여개 중 12개를 공개하고 증도가자 목판본과 서체가 동일한 ‘진짜’ 증도가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전문가 사이에선 진위 여부와 위조가능성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특히 중국서 위조한 뒤 국내 고미술상을 통해 들여온 위작이란 소문과 함께 논란은 5년간 이어졌다. 특히 구체적인 출처나 입수 경위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논란은 확산됐다.

현재 증도가자로 추정하는 금속활자는 109개로, 다보성고미술전시관이 101개, 청주고인쇄박물관이 7개, 국립중앙박물관이 1개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청주고인쇄박물관 소장 활자를 제외한 102점은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신청 대상이다.

진위 논란이 일고 있는 증도가자(사진=경북대 산학협력단))


◇국과수 “7개는 가짜”…나머지 102개도?

증도가자의 진위 논란은 지난 2월 분기점을 맞았다. 남 교수가 이끄는 경북대 산학협력단이 ‘증도가자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라는 연구용역 보고서를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제출하고 109개 증도가자 중 62개가 진품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근거는 증도가자에 묻어 있는 먹의 탄소연대 측정치. 측정결과 1033년에서 1155년 사이에 만든 먹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8개월 뒤에는 정반대의 주장이 나온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지난달 31일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에 발표한 ‘금속활자의 법과학적 분석방법 고찰’이란 논문에서 청주고인쇄박물관 소장 증도가자 7점이 모두 가짜라고 주장한 것. 3차원 금속 컴퓨터단층촬영을 한 결과 수백년에 걸쳐 부식된 것처럼 꾸미기 위해 금속활자를 다른 물질로 감쌌고 안팎의 성분과 밀도도 다른 것은 인위적인 조작의 흔적인 만큼 위조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과수 발표가 파장을 낳은 것은 109개 활자의 출처가 모두 같을 수 있기 때문. 이 경우 국과수의 분석이 맞다면 현재 증도가자로 추정한 모든 활자는 가짜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경찰이 서둘러 증도가자 109개의 입수경로에 대한 조사에 들어간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문화재청 “모두 가짜? …그건 아닐 거다”

증도가자의 진위를 최종판단은 이제 문화재청으로 넘어갔다. 문화재청은 신중한 입장이지만 증도가자가 모두 가짜라는 확대해석은 경계한다. 문화재청 고위관계자는 “현재 3개 분야 12명의 ‘고려금속활자 지정조사단’을 구성해 증도가자에 대한 지정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과수 조사결과도 검증작업에 참고할 것”이라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진위여부를 검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르면 연말까지 아니면 내년 상반기에 최종 발표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만일 증도가자가 진품이라는 게 확인되면 이는 세계사적 쾌거다. 현존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보다 138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1455)보다는 200년 이상 앞서는 금속활자를 보유하는 것이기 때문. 하지만 위조로 결론이 날 경우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된다. 미술품이나 문화재 시장에 위작 논란이 만연한 가운데 문화재 전반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 고 천경자 화백의 대표작 ‘미인도’의 위작 논란이나 위조가 드러나 국보에서 해제된 ‘귀함별황자총통’ 사태를 재연할 수도 있다. 문화재청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5년 동안 무성한 진위 논란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혼란을 키웠다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증도가자란

1239년 고려시대에 제작한 보물 제758호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찍을 때 사용한 금속활자로 추정한다.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1377)보다 무려 138년이나 앞선 것이다.

남권희 경북대 교수 연구팀이 ‘증도가자’의 진위 논란과 관련해 방사성탄소연대분석 조사를 위해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사진=경북대 산학협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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