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法 "국민 존경받은 공인 인터뷰는 저작권 보호 대상 아냐"

김보영 기자I 2016.06.23 06:30:00

法, 평화방송 "고(故) 김수환 추기경 인터뷰 기사·사진 무단 인용 소송서 원고 패소 판결
"모든 사람에 존경받는 김 추기경 말씀 평화방송 독점은 잘못"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국민의 존경을 받는 ‘공인(公人)’의 인터뷰 기사는 저작권법상 독점 대상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남부지법 민사 13부(재판장 김도현)는 평화방송이 고(故) 김수환(사진) 추기경의 인터뷰 기사와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사진작가 전모(60)씨와 A출판사 대표 최모(57·여)씨를 상대로 “6억원을 지급하라”고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저작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법원에 따르면 평화방송은 지난 2003년 5월 18일부터 평화신문에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연재했고, 이를 엮어 2004년과 2009년에 각각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와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라는 책을 출판했다. 특집 기사 연재 당시 사진기자였던 전씨는 2011년 10월 평화방송을 퇴사한 뒤 2012년 12월 말 김수환 추기경의 이야기를 담은 책 한 권을 A출판사를 통해 출간했다.

이에 평화방송 측은 2014년 말 “책에 수록된 100여 개 사진들은 전씨가 업무 목적으로 찍은 것이고 인터뷰 내용이나 표현 역시 일부 도용해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전씨 등은 그러나 “사진 7개는 특집기사 사진으로 쓰였던 것이라 저작권을 침해한 게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나머지 사진들은 평화방송 기획과 별개로 개인 소장을 목적으로 찍은 것이라 저작권 침해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 “김수환 추기경의 이야기 저작권은 그 말을 직접 한 추기경에게 있으므로 평화방송 저작물에 수록된 내용 일부를 인용했다 하더라도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법인 소유의 저작물은 일정한 의도와 창의성에 기초해 저작물의 작성을 구상하고 구체적인 제작을 말하는 것”이라며 “기사에 게재된 7개 사진 외 나머지는 업무상 용도로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촬영했다는 것만으로 저작권 침해로 볼 근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기사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한 사실 역시 어문 저작물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일부 내용이 특집 기사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한 점은 인정되지만, 김수환 추기경이 언급한 내용을 그대로 받아적은 것은 창의성이 발휘됐다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씨의 책은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과 가르침을 소재로 독자들에게 교훈과 위로를 주기 위해 출판된 서적”이라며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된 인물로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공인이라는 점에서 그 말씀을 평화방송이 무조건 독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전씨 등에게 저작권법 위반이 인정된 사진에 대한 배상금 120만원만 지급하고 소송 비용의 90%는 평화방송, 나머지는 피고 측이 부담할 것을 주문했다.

정인섭 서울남부지법 공보판사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의 핵심은 ‘정신적 창의성’이 해당 저작물에 발휘돼 있느냐가 우선적인 기준이 되는데, 평화방송 저작물의 아이디어는 사실상 김 추기경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독점성을 주장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 판사는 “김 추기경과 같은 종교인이자 공인의 말씀을 무조건적으로 독점하는 것은 사리에 어긋난다고 보았다는 점도 종교의 특수성과 공인의 사회적 지위를 함께 참작한 판결이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김수환 추기경 인터뷰기사가 창작물이기 이전에 여러 사람에게 널리 퍼뜨려질 의무가 있는 ‘공익성 저작물’이란 점에 법원이 주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