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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험 상품 못 권해요"…홍콩ELS 사태 후폭풍

김국배 기자I 2024.02.27 06:00:00

ELS 사태 이후 판매 분위기 위축…은행, ELB·ELD 등
원금 보장형 상품만 제안…WM부문 수익 타격 본격화
'타 업권 경쟁 치열한데'…ELS 가입 위해 증권사 이동

[이데일리 김국배 기자] “홍콩H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ELS) 사태가 알려진 후 일단 고객들이 (손실 가능성 있는) 투자 상품은 잘 안 하려고 하고 직원들은 아예 권하지도 않죠. 괜히 그런 상품 팔았다가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르니까요.”

홍콩H지수 연계 ELS의 대규모 손실로 은행 창구에선 고위험 파생상품 판매가 사실상 중단된 가운데 고객도 투자를 피하는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ELS는 이미 불완전판매 논란으로 우리은행을 제외하곤 대부분 주요 시중은행에선 판매를 전면 중단하면서 판매가 더 얼어붙었다. 이에 은행들은 이를 대체할 상품을 찾고 있으나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고위험·고난도 상품을 취급하는 것 자체에 당국과 여론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어서다.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피해자모임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뉴스1)
2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NH농협은행 등은 최근 ELS 상품 판매를 전면 중단한 후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 주가연계예금(ELD) 등의 판매를 늘리고 있다. 원래 ELS보다 수익률이 낮아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던 ‘원금 보장형’ 상품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홍콩 ELS 사태로 고위험 투자 상품 판매가 위축된 게 사실이다”며 “ELS 피해자건 아니건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고위험 상품을 추천하기에도, 고객도 가입하기에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고 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수익률이 ELS만큼은 아니지만 예금 금리보단 나아 ELB, ELD 등을 자산 배분 차원에서 제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 ELS 사태 반작용으로 예금 수요도 커졌다. 은행권 관계자는 “예금 금리가 많이 떨어졌다고 해도 아직 3% 중후반이라 단기보단 1년 이상 묶어두려는 요구가 많다”고 말했다. 현재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최고 금리는 연 3.55~3.9% 수준이다. 다만 그렇다고 ELS 수요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은행권에서 ELS를 못 팔게 되자, 증권사로 이동하는 고객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홍콩 ELS 손실에서 한 발 비켜나 있는 기존 ELS 상품 고객이 ELS에 가입하기 위해 증권사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당장 ELS를 못 팔게 된 은행들은 수수료 수익을 통한 비이자 이익 확대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원금 보장형 상품들은 ELS보다 마진이 적고, 방카슈랑스(은행 판매 보험) 등의 판매도 만기가 길고 새 회계기준 등으로 보험사 판매 유인마저 떨어지는 구조라 대안으론 부족하다는 평가다.

현재로선 ELS 등 은행에서 고위험 상품 판매 자체를 전면 금지할 가능성은 작아 보이지만 은행권 고위험 상품 판매 규제가 정비될 때까진 은행의 비이자 이익 부문 타격은 불가피해 보인다. 자산관리 서비스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산관리(WM) 부문의 수익을 내는데 ELS 판매가 큰 비중을 차지해온 건 맞다”며 “판매 정상화 전까진 실적 부진이 불가피하다. 타 업권과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원금보장 상품만 운용하는 것으론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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