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유산도 모두 사회에 기부했다. 이미 지난 2월 입원 후에 당시 모든 재산을 명동밥집, 아동 신앙 교육 등에 기부한 상태였다. 이후 2개월 동안 서울대교구청이 은퇴 후 매달 지급하는 사제 수고비와 보훈처가 6.25 참전 용사에게 주는 연금 등으로 현재 800만원 정도의 잔액이 남은 것으로 전해졌는데 그동안 수고한 의료진과 주변인들을 위한 선물 마련 비용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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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90세의 나이로 선종에 든 고 정진석 추기경은 의식이 있을 때 사제, 의료진에게 이 같은 말을 남겼다. 그리고 실제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놓았다.
허영엽 서울대교구청 대변인은 28일 오전 10시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에서 정진석 추기경 선종에 대한 브리핑에서 “정 추기경은 항상 행복은 무언가 소유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시간과 자신을 헌신하는 과정에서 얻어진다고 강조했다”고 했는데 그 말과 같았다.
정 추기경은 42년간 청주교구·서울대교구장을 지내고 2006년 고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 추기경이 된 한국 가톨릭교회의 대표 인사다. 어린 시절 발명가를 꿈꿨다가 한국전쟁의 참상을 겪고서 사제의 길을 택한 그는 60년 사목 활동 중에도 독서와 집필을 놓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20년 가까이 교회법전을 번역하고 해설서를 펴내며 한국 가톨릭계에 큰 자취를 남겼다.
정 추기경은 1931년 12월 2일(호적상 7일) 서울 중구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출생 후 나흘만에 ‘니콜라오’라는 세례명으로 유아세례를 받았다. 외할아버지가 당시 명동성당 사목회장이었을 만큼 집안 신앙생활은 깊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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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6촌 동생과 함께 은신해 있던 집에서 잠이 들었는데 폭격으로 서까래가 무너져 내리며 동생이 숨지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이후 한국전쟁에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된 정 추기경은 미군 통역병으로 일하며 알게 된 미군 군종 신부의 책장에서 ‘성녀 마리아 고레티’라는 책을 가져와 읽고 사제의 길을 갈 것을 결심했다.
1954년 신학교에 입학해 1961년 사제품을 받았다. 1970년 39세에 최연소 주교로 발탁돼 청주교구장에 취임했다. 정 추기경의 첫 사목 표어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었다.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고 김수환 추기경이 정년을 맞아 교황청에 사직서를 내자, 당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이었던 정 추기경이 후임 교구장으로 선택됐다. 이후 2012년까지 14년간 서울대교구장을 지내며 교구 지구장을 신부들의 투표로 선출토록 해 지구 중심의 사목 체제를 만드는 등 여러 변화를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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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추기경의 선종에 문재인 대통령은 SNS를 통해 “서른아홉 젊은 나이에 주교로 서품되신 후, 한평생 천주교 신자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평화를 주신 추기경님의 선종이 너무나 안타깝다”며 “지상에서처럼 언제나 인자한 모습으로 우리 국민과 함께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추기경님의 정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영원한 평화의 안식을 누리소서”라고 추모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김수환 추기경이 아버지였다면, 정진석 추기경은 어머니와 같이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았고, 우리들을 품어주셨다”고 고인을 기렸다.
장례는 교구방침에 따라 5일장으로 치러진다. 28일 0시 선종미사를 봉행한 것을 시작으로 30일까지 사흘간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조문이 가능하다. 장례미사는 다음달 1일 오전 10시에 염수정 추기경의 집전으로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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