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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에선 아빠가 기저귀 갈고 어린이집에 간다

송이라 기자I 2017.12.08 06:30:00

[지구촌 육아전쟁 탐방기 캐나다 퀘벡편]
아빠만 쓰는 '부성휴가'…5주간 유급휴가
출생 후 부모가 함께 아기돌봐…자연스러운 아빠애착 형성
기업의 부성휴가 비용부담 낮아…"눈치 안보고 휴가 써요"
"부부는 한팀, 여성에게 '육아+가사' 짐 지우는건 잘못"

[퀘벡(캐나다)=글·사진 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남성 육아휴직자가 1.5배 늘어나니 출생아 수가 7% 증가했다.’

이 한 문장이 캐나다 퀘벡주로 날아간 이유였다. 스웨덴이나 덴마크 등 북유럽 복지 선진국과 달리 북미권, 그 중에서도 캐나다의 가족정책에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심지어 미국은 육아휴직 자체가 없는 가장 후진적(?)인 나라다.

하지만 캐나다 퀘벡주는 달랐다.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아 유럽권의 복지 정책을 벤치마킹한 제도가 많다. 특히 아빠의 육아참여를 위해 도입한 ‘부성휴가’(Paternity Leave·아빠만 쓸 수 있는 육아휴가) 제도는 북미권에서는 오직 퀘벡주에만 있다.

퀘벡에서는 평일 낮 시간에도 아기띠를 하고 기저귀 가방을 든 아빠를 흔히 볼 수 있다.
◇아빠만 쓰는 부성휴가, 10명 중 8명 사용

퀘벡의 장 르사주 국제공항. 남자화장실에 입구에 붙어있는 ‘기저귀 교환대’ 표시가 눈에 띈다. 한국에서는 기저귀 교환대는 여자화장실에서만 볼 수 있다. 퀘벡에선 어딜 가든 남여화장실에 모두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돼 있다.

시내에선 평일 낮에도 유모차를 끄는 아빠를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 퀘벡도 처음부터 아빠들이 육아에 적극적이었던 건 아니다. 반세기 만에 아빠들의 태도가 극적으로 바뀌는데는 부성휴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퀘벡 화장실에는 남여 화장실 모두에 기저귀 교환대 푯말이 붙어 있다.
퀘벡의 부성휴가는 아이를 출산한 가정의 아빠에게 5주간 유급휴가를 주는 제도다. 5주 동안은 일을 하지 않지만 급여는 부모보험(Quebec Parental Insurance Plan·QPIP)에서 기존 임금의 최대 75%까지 지급한다. 규모가 큰 기업이나 공무원 등은 별도의 사내 기금이 있어 나머지 25%도 보전해 준다. 5주간은 월급은 그대로 받으면서 육아에 전념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단, 부성휴가는 오직 아빠만 사용할 수 있다, 아빠에게 아이 육아를 떠맡기기 위한 제도인 셈이다.

부모보험을 도입해 소득을 보전해준 영향은 컸다. 퀘벡 가족부에 따르면 부모보험이 도입되기 전인 2005년의 부성휴가 사용률은 32%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79%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아빠 10명 중 8명은 부성휴가를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퀘벡주 외교부에서 일하는 에릭 푸아송(Eric Poisson)씨가 5주 동안 부성휴가를 쓴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 키우며 가정의 소중함 깨달아…직장은 2순위

5주간의 부성휴가 기간동안 아내와 함께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면서 육아에 대한 아빠들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엄마와 아빠가 처음으로 부모가 돼 서툴기만한 과정을 함께 헤쳐 나가며 육아의 어려움과 아이의 소중함을 깨닫기 때문이다.

3살 아이 한 명을 기르며 부성휴가를 쓴 에릭 푸아송(Eric Poisson)씨는 “아이가 자주 깨 잠을 못자는 게 가장 힘들었다”며 “모유수유를 하느라 주로 아내가 아이를 돌보고 나는 자연스럽게 빨래나 요리 등 집안일을 맡아 했다”고 말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크리스티앙 포팅(Christian Fortin)씨 부부. 포팅씨는 2주 전 태어난 둘째를 위해 5주간의 부성휴가를 사용 중이다.
2주전 태어난 둘째 아이를 돌보기 위해 부성휴가를 사용중인 크리스티앙 포르탱(Christian Fortin)씨도 “아내는 신생아를 담당하고 나는 세살배기 첫째를 돌본다”며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집에와 집안일을 하다보면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고 말했습니다.

크리스티앙씨는 5주간의 부성휴가를, 크리스티앙씨의 아내는 1년 동안 육아휴직을 쓴 후 직장으로 복귀할 계획이다.

부성휴가를 쓴 퀘벡의 아빠들은 5주가 짧다고 입을 모은다. 유럽 육아선진국들처럼 적어도 3개월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푸아송씨는 “아이가 태어난 뒤 짧은 기간이지만 직접 부대끼며 키우면서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가족이 내 삶의 1순위, 직장은 그 다음”이라고 말했다.



◇기업에 부담 안주는 출산휴가…눈치 볼 필요없다

퀘벡의 부성휴가가 활성화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회사가 떠안는 비용부담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부성휴가 사용시 지급하는 급여는 대부분 부모보험이 책임진다. 회사는 부모보험에 매달 일정한 보험료를 내는 대신 부성휴가나 모성휴가를 사용중인 직원들에게 급여를 줄 의무가 없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3개월간 출산휴가를 간 직원 급여 대부분을 책임져야 한다.

국내 한 대형은행 임원은 “우리나라는 출산과 관련한 비용을 개별 기업에 지나치게 많이 전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아이를 여럿 낳아 매년 육아휴직을 쓰는 여직원들이 야속할 때도 있다. 결국 신입사원을 뽑을 때 어쩔 수 없이 남성을 더 많이 뽑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말했다.

가족경영으로 유명한 퀘벡의 IT기업 GSOFT에서는 매년 직원 가족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개최한다. (사진=GSOFT)
사진=GSOFT
‘퀘벡의 구글’이라 불리는 IT기업 GSOFT는 친가족경영으로 유명하다.회사가 아빠들의 부성휴가 사용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대부분 남성직원들이 부성휴가를 간다.

4개월간 부성휴가를 사용한 GSOFT 직원 매튜 카윙(Mathieu Caueng)씨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건 내 인생의 굉장히 큰 도전이었고 회사의 지원으로 나는 아빠로서, 사회인으로서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됐다”고 말했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민온 그는 가족정책에서만큼은 퀘벡이 유럽 복지국가인 스위스보다 선진국이라고 했다.

GSOFT에서 일하는 매튜 카윙씨는 부성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해 4개월간 아이를 돌봤다. (사진=GSOFT)
퀘벡이 아빠육아 천국이 될 수 있었던 건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빚어낸 결과다. 퀘벡주 정부는 육아에 들어가는 비용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부모보험을 조성하고, 아빠들의 육아휴가를 장려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울러 예산을 투입해 보육시설을 확충하고 공공시설마다 어린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아이들이 없으면 미래는 없다’는 모두의 공감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합계출산율 1.17명에 그치는 우리는 서로 남 탓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문제다.

◇용어설명

부성휴가(Paternity Leave): 아이를 출산한 가정의 아빠가 쓸 수 있는 5주간의 출산휴가. 휴가 기간 중 부모보험 기금으로부터 급여의 55~75%를 지원 받는다.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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