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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확대경] 성급한 '전세의 월세전환'..급하면 체한다

정수영 기자I 2014.02.11 08:07:46
[이데일리 정수영 기자] 정부는 올해 주택 정책의 방점을 ‘임대’ 두 글자에 찍을 예정이다. 정확하게는 네 글자로 ‘월세 임대’다. 지난해 전세수요를 매매로 돌려 시장 정상화를 꾀하려던 정부가 방향을 틀어 올해는 월세에서 해답을 찾기로 한 것이다.

정부는 이달 말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한다. 여기에는 전세의 월세 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이 담긴다. 골자는 월세 임대 공급 확대와 수요 촉진이다.

우선 민간의 월세 임대주택 공급 유도 방안이 담길 예정이다. 민간회사가 주도하는 부동산 투자회사 ‘리츠’가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임대주택 용지를 매입해 임대주택을 건설·공급하는 방식이다. 또 매입임대사업자에 대한 의무 임대기간을 5년에서 4년으로 줄이고, 지난해 4월1일 이전에 취득한 주택도 준공공임대주택으로 등록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월세 수요 진작책도 내놓는다. 전셋값 상승세가 잦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반면 월셋집은 빈집이 넘치고 있어 수요를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연소득 5000만원 이하·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에 사는 무주택자로 제한돼 있는 월세 소득공제 대상을 중산층까지 확대하는 방안이다. 월세대출 지원 방안도 내놓을 예정이다. 전세대출 보증 한도를 축소해 과열된 전세시장 수요를 낮추는 방안도 포함된다.

정부는 전세의 월세 전환 속도가 빨라지면 월세제도가 정착돼 시장이 안정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노리는 것은 단순히 시장 안정뿐만은 아니다. 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 부실 우려를 사전에 제거하겠다는 또다른 목표가 있다. 전세대출은 지난해 6월 말 기준 60조1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전세대출 감소로 가계부채가 줄면 내수 소비가 늘 것이라는 계산까지 깔려 있다.

결국 정부가 목표로 삼은 것은 ‘전세제도’의 칼질이다. 전세제도.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이 임대차 방식은 1970년대부터 40년 넘게 우리 주거문화의 보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잡아 왔다. 또 내 집을 마련하는 중요한 수단으로써 정부가 못해주는 사금융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전세로 사는 서민들에게도 전세보증금은 전 자산이면서 곧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정부가 내놓는 서민 주거 안정 방안에도 항상 전세 안정대책이 꼭 포함돼 있었다. 전세대출 확대 및 금리 인하, 전세대출 소득공제 및 세 부담 완화 등은 서민 주거를 안정시키기 위한 최우선 방안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이제 전세제도는 쓸쓸히 퇴장해야 할 퇴출 대상이 돼버렸다. ‘깡통전세’가 늘면서 보증금을 보호받지 못하는 일이 속출하기 시작했고, 전셋값은 76주째 상승하고 있다. 전세대출도 급증하면서 지금 전세제도는 시장 안정을 헤치는 원흉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계획이 항상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수요자들의 월세 전환을 유도하려한다 해도 금리보다 높은 월세 부담을 반길 리 만무하다. 또 월세 임대 공급을 확대하려는 정부 정책이 공급량 증가·수요 부족으로 남아도는 현상이 생길 수도 있다. 향후 이를 매입해야 하는 LH에게는 또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소지도 있다.

전세의 월세 전환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긴 사실 힘들다. 하지만 수요자들은 안가겠다고 버티는 데 정부가 나서서 끌어당기려고만 한다면 또다른 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다. 급하게 먹으면 체하기 마련이고, 넘치는 것은 부족하니만 못하다고 했다. 성급하게 월세 전환을 유도하기보다 차라리 전세를 공급하는 임대사업자나 집주인에게 세 부담 완화 등을 통해 전세 공급량을 늘리도록 권고하는 게 어떨까. 전세의 월세 전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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