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사설] 불황의 그늘, 술·담배에 기대는 사회

논설 위원I 2016.06.04 06:00:00
술과 담배 소비가 늘었다고 한다. 경기침체 장기화로 가계가 여가 활동비와 옷값, 자녀 학원비 등의 씀씀이는 줄였지만 술과 담배 소비는 되레 늘렸다는 것이다. 오랜 불황으로 빚은 늘어나고 취업난에 전·월세난 등이 겹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자 술이나 담배에 기대어 울화를 달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불경기일수록 술과 담배가 많이 팔리는 불황의 역설이다.

한국은행의 ‘1분기 국민소득 잠정치’에 따르면 지난 1분기의 오락·문화 등 여가활동 관련 가계 지출은 전분기보다 2.1% 줄었다. 옷과 신발(-1.8%), 자녀 학원비(-2.1%)도 감소했다. 하지만 술·담배는 4.6%나 늘었다. 지난해 4분기(-0.4%)에 비해서는 큰 폭의 증가다. 통계청 조사에서도 개인별 1분기 월평균 술·담배 지출액은 3만 4900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22.2%가 급증했다.

(사진=연합뉴스)
술과 담배 소비 증가는 결코 반갑지 않다. 중독성, 의존적 약물로 시름을 달래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게다가 술·담배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것은 잠시 스트레스를 외면하는 착각에 불과하다. 정신·육체적 건강을 위협해 의료비 부담을 늘리는 등 불필요한 경제·사회적 비용만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앞으로도 걱정이다. 경제는 총체적 위기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5%로 2분기 연속 0%대다. 메르스 여파로 얼어붙었던 지난해 2분기(0.4%)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소비와 투자, 수출 모두 감소세다. 더욱이 발등에 떨어진 산업구조조정에 청년실업, 가계부채, 전·월세난 등 어느 하나 만만한 과제가 없다. 서민층이 술과 담배를 찾을 일이 더 많아질 공산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책무가 크다.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챙겨 국민이 술·담배에 빠지기보다는 건강한 웃음을 찾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구조조정 지원책을 놓고 한은과 엇박자를 내는 등 상황을 헤쳐 나갈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무책임한 정치권은 원 구성을 놓고 자리다툼이나 할 뿐 민생은 나 몰라라다. 지친 국민을 위로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술 권하는 사회’를 조장하는 꼴이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