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투자자 외면한 공시·회계제도]<上>"지정 감사보수, 비용 아닌 투자다"

김도년 기자I 2016.05.13 07:01:00

-'기업 활력 불어넣는 공시·회계제도 개선안' 심층 분석
"상장 준비 비용 대부분은 주관사로…감사 비중은 미미"
"시총 급락도 기업 부실 징후…지정 감사 제외해선 안돼"
"지정 감사를 규제로 보는 건 잘못…정확히 볼 때 필요한 돋보기 같은 것"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지정 감사를 받게 되면 감사보수는 3배로 늘지만, 감사에 투입되는 회계사나 감사시간은 3배로 늘지 않는다. 폭리다”

“회계법인은 시장 경쟁으로 계약하는 자유수임 방식으로는 보수가 낮아지기 때문에 경쟁이 없는 지정 감사 계약에서 보수를 높여 이익을 취하려 한다”

최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공시·회계 제도를 바꾸게 한 기업의 주장들이다. 기업에 부담이란 전제 아래에서 금융당국은 증시 상장 예정 기업의 지정 감사수수료를 깎아주고 주가와 시가총액이 미달해 관리종목으로 편입된 기업은 지정 감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이런 기업측 주장을 반박하는 또 다른 현장의 목소리가 있다. 이번 제도 개편은 회계 투명성과 정보 대칭성을 악화시켜 경제주체들의 합리적 선택에 제약이 되는, 이른바 시장 실패를 부추길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다.

◇“지정 감사 보수가 높은 게 아니라 자유수임 보수가 제값 못 받는 것”

증시 상장을 준비하는 벤처기업연합체 옐로모바일은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 11억원을 내며 흑자전환했다. 만성적인 적자 행진과 시장과의 소통 부족으로 주당 400만원을 넘나들던 장외주식 가치는 1년 만에 100만원대로 떨어졌다. 이 회사는 하락한 기업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했고 지정 감사를 받은 회계 정보를 내세우며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다.

이상훈 옐로모바일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해 연말 흑자전환은 3분기까지 회사 스스로 진행한 가실적 발표가 아니라 금감원 지정 감사인의 공신력 있는 감사를 통한 성과라서 더욱 의미 있다”며 소셜미디어서비스(SNS)에서 널리 홍보하고 있다.

△자료 :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
옐로모바일은 상장을 준비하면서 안진회계법인으로부터 지정 감사를 받았다. 지정 감사수수료는 자유수임으로 감사를 받은 직전연도 2억원보다 5.4배 늘어난 10억 7900만원이 들었다. 감사 소요시간은 1452시간에서 5033시간으로 3.5배 증가했다. 감사수수료는 늘었지만, 더 많은 시간과 인력이 투입된 감사를 받으면서 그만큼 ‘흑자전환’이란 회계 정보는 믿어도 된다고 홍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정 감사보수는 회계법인 간의 출혈 경쟁으로 형성되는 자유수임 보수보다 높다. 그러나 ‘감사시간은 3배가 늘었는데 감사보수는 3배 이상 늘었다’는 식의 기계적 계산으로 지정 감사보수가 높다고 봐서는 곤란하다는 게 회계업계의 시각이다. 증시에 상장하려고 하거나 부실이 늘어난 지정 감사 대상 기업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일선 회계사들의 감사업무 강도가 다르다. 외부 전문가 활용도 더욱 많이 이뤄진다. 이런 질적 부분이 지정 감사비용을 높이는 요인들이다.

자료 : 한국공인회계사회(각사 사업보고서 및 공시자료 취합)
회계업계에선 현재 자유수임제 아래에서 형성되는 감사보수가 제값을 못 받는 것이지 지정 감사보수가 높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국공인회계사회에 따르면 지난 2012년 기준 자산총액 181조원 규모 삼성전자가 외부감사인과 계약한 감사보수는 37억원이었던 반면, 자산 규모가 비슷한 애플은 82억원이었다. 자산총액 258조원 규모 국민은행의 감사보수도 20억원이었던 반면 이보다 규모가 작은 호주 맥쿼리은행의 감사보수는 93억원이었다. 우리나라 기업 상당수가 글로벌 기업 대비 낮은 감사보수를 외부 감사인에게 지급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인회계사회는 감사보수를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지 않으면 감사품질 저하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가운데 지정 감사보수를 낮추기 위한 금융위의 정책은 또 다른 부작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회계감사는 기업의 자금조달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투자가 아니라 일종의 부담으로 인식됨으로써 지정 감사뿐만 아니라 자유수임 감사수수료도 낮추려는 동기가 생겨난다. 감사보수 인하는 곧 회계 투명성 악화로 이어져 투자자 보호 인프라가 훼손될 수 있는 것이다.

◇“상장 준비 비용 대부분은 주관 증권사에 지급…감사 비중은 적어”

최근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유니트론텍(142210)은 상장을 준비하는 데 약 4억~5억원 가량을 투자했다. 이 중 3분의 2인 3억여원을 주관 증권사에 지급했고 지정 감사인에게 지급한 감사수수료는 9000만원이었다. 나머지가 법률실사와 컨설팅 등에 들어간 돈이다.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 대부분은 회계법인보다는 주관 증권사에 지급하는 수수료 비중이 가장 크다. 지정 감사수수료가 부담돼 기술·벤처기업의 상장에 걸림돌이 된다면 우선 상장 주관 증권사 수수료부터 깎아줘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A회계법인 관계자는 “상장을 위해서는 기업실사와 법률실사, 대표 주관사 비용 등 상당한 상장 비용이 들어가지만 이는 당연히 부담해야 할 비용으로 취급하면서 지정 감사로 고작 1억~2억원의 비용이 나가는 것을 두고 ‘과도한 부담’ 운운하는 것은 상장할 기본 자세가 안 돼 있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지정 감사보수, 회계법인 총매출액의 2%에 불과”

회계법인이 지정 감사보수로 폭리를 취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기 어렵다는 게 회계법인들의 입장이다. 한 회계법인이 밝힌 2012년~2015년 평균 매출액 대비 지정 감사보수 비중은 2% 수준이었다. 4개연도 평균 매출액 2800억원 중 지정 감사로 들어온 매출액은 56억원. 회계법인 입장에선 지정 감사보수를 높이든 낮추든 매출액에 주는 직접적인 타격은 미미하다.

B회계법인 관계자는 “지정 감사보수가 어떻게 결정되든 매출액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지만 그런 정책이 가져올 상징적인 효과가 더 우려스럽다”며 “시장 전반에 기업 편의를 위해 감사보수가 낮아지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흐르면 회계법인 간의 저가 수임 경쟁으로 감사품질이 악화될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시총 50억 아래로 하락하는 건 부실 징후…지정 감사 제외해선 안돼”

금융위는 또 관리종목 지정 사유 중에서 기업 부실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거나 회사가 통제할 수 없으면 감사인 지정 대상에서 제외했는데 기업부실과의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도 주관적이다. 가령 금융위는 시가총액 50억원 미달인 상태가 30일 동안 지속돼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회사는 지정 감사 대상에서 제외했는데 시장에선 주가가 폭락한 상태가 30일 동안 지속된다는 것은 기업 부실과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최근 몇 년간 시가총액 미달로 관리종목에 지정된 기업은 많지 않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부 중견 건설사나 부동산투자회사들이 있었다”며 “주가는 기업의 현재와 미래가치를 반영하는데, 부동산 경기 하락에 따른 부실 우려가 시가총액에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C회계법인 관계자는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면 상장폐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정확한 재무 정보를 돋보기로 들여다볼 필요성이 있을 때 지정 감사를 하는 것”이라며 “지정 감사를 규제로 생각하다 보니 기업이 잘못한 게 아니면 지정 감사를 받지 않게 해주겠다는 식의 발상이 생겨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 관련기사 ◀
☞ [투자자 외면한 공시·회계제도]<下>`깜깜이 공시`론 기업도 돈 못구한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