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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보다 싼 '미국산 카스'…맥주공장 해외이전 신호탄 되나

강신우 기자I 2018.05.09 06:00:00

맥주 1병에 주세에 교육세, 부가세까지
주세 90%→73% 낮췄지만 여전히 높아
업계선 역수입에 수입맥주 판매 비율↑
“자연스레 국내 맥주 제조업 위축될 것”

고동우 오비맥주 대표(가운데)와 카스 모델들이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며 ‘뒤집어버려’라는 메시지를 담은 ‘카스 후레쉬 월드컵 스페셜 패키지’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오비맥주)
[이데일리 강신우 기자] 다 같은 국산맥주인데 가격이 다르다?

가격 경쟁력이 있는 이른바 ‘역수입 맥주’가 들어오면서 업계가 요동치고 있다. 오비맥주가 러시아 월드컵 한정판 ‘카스’를 미국에서 수입해 기존 카스보다 12% 싸게 팔고 나서면서다. 주세법상 수입맥주가 국산맥주보다 세 부담을 낮추기 쉽기 때문인데 당장 국내 맥주 제조업이 위축,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세·교육세·부가세까지 ‘세폭탄’

오비맥주가 지난 1일 출시한 러시아 월드컵 한정판 카스 가격은 3500원(740㎖)이다. 100㎖당 가격이 473원으로 국산 카스(540원)보다 67원 저렴하다. 내수와 수출용 맥주의 출고가를 비교하면 가격 차이는 더 벌어진다. 하이트진로 ‘하이트’ 맥주의 내·외수 가격을 보면 각각 2만2933원(500㎖, 20병), 1만139원으로 내수용이 약 56%가량 더 비싸다.

가격차의 주원인은 세금에 있다. 세금을 더하지 않은 수출용과는 달리 내수용의 공장출고가는 순매가인 과세표준(제조원가·판매관리비·이윤의 합)에 주세(제조원가의 72%)와 교육세(주세의 30%), 부가세(과세표준·주세·교육세의 10%)를 포함해 최종 결정된다. 이를테면 맥주의 순매가가 1000원이면 여기에 주세 720원, 교육세 216원, 부가가치세 194원이 붙어 소비자가격은 2130원이 된다.

업계 관계자는 “출고가격에서 제조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47% 정도밖에 안 된다”며 “해외에서 맥주를 만들어 국내로 들여오면 더 싸게 팔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수입맥주는 수입신고가(공장가+운임비+운임 보험료)에 수입신고가의 30% 관세가 붙고 나머지 주류세, 교육세, 부가가치세가 국내 주세와 동일하게 적용된다. 다만 수입맥주는 수입신고가격을 낮게 책정할 수 있어 세금을 적게 부담할 수 있다. 국산 맥주의 제조원가에는 판매관리비와 영업비, 이윤 등이 포함돼 있지만 수입가격에는 판관비와 이윤이 빠져있다. 이 때문에 수입신고가를 낮게 신고하고 이후 유통과정에서 가격을 올려 팔 수 있는 구조다. 또 올해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에서 수입한 맥주에 관세가 없어졌고 오는 7월부터는 유럽연합(EU)의 맥주에 대해서도 무관세가 적용된다.

주세율은 지난 2004년 개정 주세법 시행으로 2005년 90%에서 2007년 72%까지 단계적으로 인하됐지만 여전히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맥주에 부과하는 72% 세율은 도수가 높은 소주나 위스키 등 증류주와도 같다. 업계 관계자는 “맥주는 고급주종이 아닌데다 도수도 소주보다 낮지만 증류주와 같은 세율을 매기고 있다”며 “고도주고세율 저도주저세율이라는 보다 합리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맥아 함량 10% 이상이면 맥주, 이하면 기타주류?

맥주 원료인 맥아 비율로 주종을 나눠 세율을 달리한 것도 업계에선 문제점으로 꼽고 있다. 현재 주세법상 맥아 함량이 10%만 넘어도 맥주로 분류한다. 그 이하면 기타주류로 보고 주세는 순매가의 30%, 교육세는 주세의 10%로 낮아진다. 하이트진로의 ‘필라이트’가 기존 맥주보다 40% 가량 싼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필라이트는 맥아 비율이 10% 이하여서 맥주가 아닌 기타주류로 보고 맥주의 세율을 적용받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맥아 함량이 50% 이상일 때 맥주로, 그 이하면 발포주로 분류해 세율을 달리 매긴다. 이 때문에 국산 맥주는 일본 맥주에 비해 맥아 함량이 더 낮을 것이라는 인식이 많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카스와 하이트 등 국산 맥주 대부분이 70% 이상의 맥아를 사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경기 침체 당시 맥주 판매가 감소하자 맥아 함량을 25% 미만으로 낮춰 주세 감축을 통한 단가 인하로 맥주 판매를 증가시켰다”며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은 경우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1999년 맥아 함량을 66.7% 이상에서 10% 이상으로 주세법을 변경한 것”이라고 했다.

◇“해외로 공장 이전, 역수입 늘 것”

상황이 이렇자 앞으로 수입 맥주 비중이 더욱 늘고 맥주 제조공장을 해외로 이전해 ‘역수입’을 하려는 업체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세계적인 시장조사업체 AC닐슨(Retail Index)에 따르면 2016년 맥주 판매량 대비 작년 판매량이 0.3% 증가했다. 다만 이는 같은 기간 수입맥주가 36.2% 성장하며 전체 맥주시장을 주도한 것으로 국산 맥주 판매량은 7.6% 감소해 수입과 국산 맥주 시장의 희비가 엇갈린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맥주 수입량은 33만1211톤으로 전년(22만508톤)에 비해 50% 가량 늘었다. 연도별로 보면 2015년 17만919톤, 2014년 11만9500톤, 2013년 9만5210톤으로 매년 꾸준이 증가하는 추세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 있는 해외 기업은 생산지를 국내에서 해외로 돌려 역수입하는 것이 이윤이 많이 남기 때문에 그런 추세가 가속화될 것”이라며 “순수 국내 주류업체도 국산 맥주보다 수익이 많이 남는 수입 맥주의 판매 비율을 더 높일 것이고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국내서 맥주 제조업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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