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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아래 미술관서 '순수'를 찍어내다

김용운 기자I 2016.05.24 06:15:00

사진작가 한성필 '이노센스' 전
민통선 내 문 연 연강갤러리 개관전
연천군 일대 풍경 담은 사진 10여점·영상 등 전시
11월 20일까지

한성필 작가의 ‘트레이스’(Traces). 임진강 주상절리의 가을모습을 찍었다(사진=연강갤러리).


[연천=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지구가 수억년간 만들어낸 비현실적 시간의 증거는 남극이나 북극 등 먼 곳이 아니라 서울에서 불과 한 시간 남짓 떨어진 이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북한에서 쏜 곡사포 포탄이 떨어지는 동네. 군용차를 흔하게 볼 수 있고 민간인은 신분증을 제시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지역. 대북방송과 대남방송이 ‘휴전’ 상황임을 알려주는 곳. 경기 최북단의 연천군 중면은 휴전선 아래 민간인통제구역에 자리 잡은 지역이다. 이곳 횡산리 243번지에 미술관이 들어섰다. 지난 19일 개관한 ‘연강갤러리’는 옛 안보전시관을 리모델링해 개관한 민간인통제지역 내 첫 예술공간이다.

개관전은 사진작가 한성필(44)의 ‘이노센스’ 전이다. 한 작가는 사진작품을 활용한 건물 가림막을 만드는 대형 파사드(장막) 제작과 남극과 북극 등 극지를 앵글에 담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개관전에선 지난가을부터 올봄까지 연천에 머물며 촬영한 사진작품 10여점과 미디어작품, 건물 외벽의 대형 파사드작품을 선보인다.

전시에 앞서 연강갤러리에서 만난 한 작가는 “사실 처음 연천에 올 때는 휴전선 접경지역이라 까닭 모를 두려움이 있었다”며 “그러나 연천 또한 내가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종의 접경지역이란 점에 끌렸다”고 말했다. 막상 연천에 머물면서 작품을 위해 연천군 일대를 돌아다녀 보니 의외의 절경이 많았다. 특히 한탄강과 임진강 내 주상절리에 눈길이 갔다. 연천군 일대를 흐르는 임진강과 한탄강은 몇천만년 전 북한의 오리산에서 분출했던 용암이 흐르며 고생대와 중생대, 신생대에 걸쳐 형성한 국내 유일의 현무암 협곡이다. 덕분에 연천군은 한탄·임진강 국가지질공원 인증을 받기도 했다.

한성필 작가가 연강갤러리 개관전 ‘이노센스’전에 전시한 임진강 내 주상절리를 촬영한 ‘트레이스’ 앞에서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사진=김용운 기자).


한 작가는 “주상절리에는 지구가 만들어낸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남북 대치 상황으로 수십년간 보이지 않는 긴장이 팽팽한 이곳에 지구가 만들어낸 숭고한 풍광이 공존하고 있다는 현실이 아이러니했다”고 말했다. 한 작가가 말한 아이러니는 한 작가가 기록한 영상물에 고스란히 잘 드러난다. 안개가 스민 임진강의 고요한 아침을 깨는 사격장의 총소리와 기상나팔 소리, 별빛이 영롱한 밤하늘 아래 휴전선 일대 군 초소 등의 작품을 보면 연천이 지닌 극단의 아름다움에 묘한 감흥에 젖는다.

연강갤러리는 건물 자체도 일종의 작품이다. 한 작가의 임진강 주상절리 사진으로 전면에 대형 파사드를 치고 디자이너 조상기가 베트남 등지에서 가져온 ‘갤러리 도어’를 활용한 ‘평화의 문’을 벽에 세웠다. 민통선 안에 자리 잡은 탓에 이곳에 발을 들여놓으려면 신분증을 제시하고 검문을 통과해야 하는 번잡스러움이 있지만 이 또한 엄연한 분단의 현실이고 접경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연강은 임진강의 옛 이름이다. 전시는 11월 20일까지.

경기 연천군 중면 횡산리 243번지 옛 안보교육관을 리모델링한 연강갤러리 외관. 한성필 작가가 주상절리를 촬영한 작품 ‘트레이스’를 대형 파사드로 만들어 건물 외벽을 감쌌다(사진=김용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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