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 리뷰
''단테의 신곡, 정은혜의 지옥''
다채로운 몸짓·표정 인상적
판소리 본질 제대로 활용한 창작품
[남화정 국악전문방송작가] 고전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는 말이 있다. 단테의 ‘신곡(神曲)’은 그 중에서도 가장 읽히지 않는 책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책 두께도 만만찮은데다, 700년 전에 쓰인 서사시다보니 그 안에는 수많은 은유와 상징과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 시대적·문화적·사상적 배경을 모르고서는 책장 한 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 ‘정은혜: 지옥의 얼굴들’의 공연 모습(사진=케이뮤직공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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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는 2013년 국립극장에서 연극 ‘단테의 신곡’을 초연할 때 베아트리체 역을 맡으면서 단테를 처음 만났다. ‘인생길 반 고비에서 올바른 길을 잃고 어느 캄캄한 숲 속에 있었던’ 단테처럼 나아갈 길을 찾고 있던 시점, 그는 자신을 찾고 드러내는 여정으로 단테와 신곡을 선택했다. 2017년 판소리 낭독극 형식으로 첫선을 보인 후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닦아내며 지난해에는 음반을, 올해 초에는 음악과 함께 하는 영상을 발표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6월 21일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판드라마(Pan-Drama) 시리즈2 ‘정은혜: 지옥의 얼굴들’로 관객과 만나게 된 것이다.
‘판드라마’라는 용어는 최근에 만들어진 것으로, 창작판소리와 다양한 실험적 기법으로 제작된 영상이 함께하는 드라마 장르를 가리킨다. 지난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첫선을 보인 안이호 주연의 ‘야드(YARD)’ 이후 ‘정은혜: 지옥의 얼굴들’이 두 번째 작품이다. 지옥처럼 어둡고 음산한 무대에서 1인 낭독극 형식으로 진행된 이 작품에서 정은혜는 연출과 작창, 그리고 낭독자를 맡아 단테, 스승이자 안내자 역의 베르길리우스, 뱃사공 카론, 불륜으로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받는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어지간해서는 읽기 어려운 신곡을 차근차근 자신의 언어와 노래로 풀어서 ‘듣는 신곡’ ‘잘 들리는 신곡’으로 만든 것이다. 피아노, 기타, 첼로 같은 서양음악적 요소들까지 포함해 다양한 노래로 관객들을 지옥으로 안내한다. 지옥의 처참함을 묘사하는데 판소리가 얼마나 훌륭한 도구인지, 아이들의 해맑은 동요가 지옥의 섬뜩함을 얼마나 선명하게 드러내는지를 느낀다면 창자가 이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 알 수 있다.
| ‘정은혜: 지옥의 얼굴들’의 공연 모습(사진=케이뮤직공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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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속 정은혜의 다채로운 몸짓과 표정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하나의 공연에서 한 사람이 이렇게 여러 가지 역할을 담당하고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소화한다는 것이 놀랍지만, 사실 판소리꾼들은 옛날부터 자연스럽게 해 오던 일이다. 다만 이야기가 달라지고, 노래가 달라지고, 반주하는 악기가 달라졌을 뿐이다. 무엇보다 판소리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장르다. 많은 이들이 제목만 아는 단테의 신곡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노래로 들려준다는 점에서 ‘정은혜: 지옥의 얼굴들’은 판소리의 표면이 아닌 본질을 제대로 활용한 창작품이 아닌가 싶다.
공연의 완성도와 비례해서 강하게 드는 의문은 ‘이렇게 오랜 시간, 이렇게 많은 공을 들여서 굳이 지옥을 경험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였다. 공연 관련된 어떤 곳에서도 그 이유를 뚜렷이 밝히고 있지 않다. ‘지옥이 대체 나의 삶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나의 지옥은 어떤 곳인가’ ‘그렇다면 나의 천국은 또 어떤 곳인가’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하게 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정은혜가 단테의 신곡을 선택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 ‘정은혜: 지옥의 얼굴들’의 공연 모습(사진=케이뮤직공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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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혜: 지옥의 얼굴들’의 공연 모습(사진=케이뮤직공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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