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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황현규 기자] 어디를 가나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시장을 가도, 식당을 가도 받는 단골 질문이다. 늘 “경기도 안양”이라고 답한다. 100명 중 99명은 되묻는다. “어디라고요?” 웃으며 다시 또박또박 대답한다. “대한민국 경기도 안양요.”
검은 피부, 숯검댕이 눈썹, 새까만 머리카락까지 누가 봐도 외국인인 이레샤 페라라(45)씨. 이주민 여성 자립단체 `톡투미`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스리랑카 출신 한국인이다. 그에게 안양은 제2의 고향이다. 20년 전 안양에 정착해 2009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지금까지 안양에 살고 있다. 옷 디자이너로 일하던 이레샤씨는 한국에 온 지 이듬해 남편과 눈이 맞아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1학년 아들 두 명을 키우는 학부모이기도 하다.
이레샤 대표를 서울 용산구 갈월동 톡투미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조사 하나 틀리는 법이 없이 20년 경력의 완벽한 한국어를 쏟아냈다.
◇20년 살아도 여전히 이방인…언제까지 우리는 손님이죠?
최근 이레샤 대표는 톡투미 활동보다 베트남 아내에 대한 질문을 더 자주 받는다. 전남 영암에서 베트남 출신 이주 여성이 남편에게 무차별 폭행당한 사건 때문이다. `이주민 여성이 폭행에 많이 노출돼 있나`, `적응하는 데 무엇이 가장 힘든가`, `이주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등이다. 그러나 그는 이 질문이 내심 불쾌하다. 고향이 안양이라고 답하듯 쉽게 웃으며 말할 수 없다. 이레샤씨는 “마치 선 긋기 하듯이 이주민 여성사건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면 안 된다”면서 “이주민 여성 문제를 넘어 폭력적인 남편·아동 학대·미흡한 신고 등 사회적인 문제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주민도 한국인으로 봐주는 데서 문제 해결이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이주민을 이방인이 아닌 가족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레샤는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이주민이 어떻게 한국에 적응할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이주민을 어떻게 한국에 적응시킬 지보다 한국 사회가 어떻게 이주민을 보고 보고 있는 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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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스스로도 노력해 브랜드 바꿔야…”
이레샤 대표는 △무능력 △가난 △나약으로 대표되는 이주민의 브랜드를 긍정적인 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한국 사회가 이주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레샤씨는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며 밥벌이하는 이주민도 많은데 왜 그런 선입견이 생겼는지 모르겠다”며 “이번 베트남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 일종의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했다.
이레샤씨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을 브랜드화의 첫 걸음으로 꼽았다. 그는 “인도의 음식인 카레가 한국에서 친숙해지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오뚜기 3분 카레’”라며 “3분 만에 뚝딱 해 먹을 수 있는 상품이 나온 이후 더 이상 카레를 낯설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이것이 브랜드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이레샤씨가 2013년 설립한 톡투미는 이주민 브랜드 변화에 힘을 쓰고 있다. 요리, 뜨개질 특기자 등 이주민 여성 150여명이 회원으로 있는 톡투미는 전통 인형·복장 등을 판매해 수익을 얻거나 반찬 등을 만들어 이웃에게 나눠주는 봉사활동을 한다. 최근에는 직접 김장김치를 담가 아동 센터에 전달했다. 이레샤 대표는 “우리도 밥벌이 할 수 있다는 사실과 이웃이라는 사실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이레샤씨는 앞으로도 이주민 단체가 많이 생기길 기도한다. 한국 사회가 이주민을 선입견 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이주민 스스로도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며 “언제까지 도움을 받기만 할 건가. 우리도 똑똑하고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증명해줄 필요가 있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