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녀·한남충·외퀴·틀딱’…혐오 신조어에 몸살 앓는 대한민국

최정훈 기자I 2018.10.08 06:25:00

'김치녀 Vs 한남충' 혐오표현이 세대간 남여간 갈등 부추겨
해외선 법률로 혐오표현 규제…국내선 신용현 의원이 발의
전문가들 “표현의 자유 침해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해” 지적도

지난 3월 18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2018 세계 인종차별철폐의 날 공동행동’에서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혐오 신조어가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다. 노인·여성비하는 물론 기성세대와 남성 비하와 외국인 혐오 등 혐오 신조어에는 성별과 국적, 연령의 구분이 없다. 혐오표현은 갈등을 부추기고 고착화하는 데 일조한다.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해외에서는 혐오표현 사용을 금지하고 위반시 처벌하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반면 혐오표현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다는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다.

◇ 김치녀 Vs 한남충 혐오표현 세대갈등 부추겨

대한민국에서 여성은 ‘김치녀’(한국여성을 비하하는 표현) 남성은 ‘한남충’(‘한국남자’의 줄임말인 한남과 벌레 충(蟲)의 합성어)이다. 외국인은 ‘외퀴’(외국인+바퀴벌레)다. 지하철 등 다중이용시설에서 큰소리 치는 노인은 ‘틀딱’ (틀니딱딱의 준말)이다.

6살 아이를 키우는 최지혜(38·여)씨는 “어느 날 아이가 ‘김치녀’가 무슨 뜻인지 물어봐 섬뜩한 적이 있다”며 “또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맘충’ 소리를 들을까 겁이 난 적도 많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영숙(26·여)씨도 “인터넷을 10분만 해도 수백의 혐오표현 때문에 불쾌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따르면 2014년 861건이던 온라인상 차별·비하정보 심의건수는 △2015년 1184건 △2016년 3022건으로 2년새 3.5배나 급증했다. 올해도 7월 현재 1041건이 온라인상 차별·비하정보 심의 대상에 올라 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혐오는 어떤 계기를 만나면 거대한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며 “혐오표현은 소수자에게 상처를 주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위를 박탈하는 힘을 가질 뿐 아니라 폭력이나 실질적 차별로 나가는 계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해외선 법률로 혐오 표현 규제…국내는 계류중

해외에선 혐오 표현을 규제하는 법안을 마련해 이를 방지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다양한 법률에서 혐오표현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영국의 인종관계법 제6조는 피부색·인종·출신국에 대한 혐오를 선동할 의도로 위협·모욕적 내용의 문서를 배포하거나 공공장소 또는 공적 모임에서 그러한 표현를 사용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파운드(한화146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독일 형법 제130조는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거나 악의적으로 비방해 타인의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독일은 올해 1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특정 대상을 혐오하는 표현이나 내용이 게시되면 운영업체가 이를 삭제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을 발효했다.

국내에서는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달 18일 혐오표현 금지법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인종이나 지역, 성별,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차별하거나 편견을 조장하는 내용을 음란물과 마찬가지로 삭제·접속차단 조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 의원은 “최근 온라인상 성별이나 지역 등에 대한 혐오표현이 범람하면서 오프라인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며 “혐오표현이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과도한 차별·모욕적 표현에 대해 제재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표현의 자유 침해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해”

혐오표현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 2월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이 의원 시절 ‘혐오표현규제법안’을 발의했지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에 철회했다. 당시 김 의원은 “어떤 일이 있어도 국민이 가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한다”면서 “혐오표현은 우리 사회에서 논의할 만큼 성숙되지 않았다”고 철회 이유를 설명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증오는 물론 혐오를 표현하는 발언마저 사전적으로 규제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상대방의 발언을 틀어막는 방식의 규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커 위험하다”고 말했다. 홍성수 교수는 “혐오표현을 형사처벌하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며 “‘혐오표현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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