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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상 이 작품] 분노도 두려움도 유쾌하고 당당하게

장병호 기자I 2018.08.09 05:50:00

- 심사위원 리뷰
페미씨어터 기획 ''제1회 페미니즘연극제''
여성주의 주제로 ''지금'' ''여기''의 ''차별'' 다뤄
''이번 생에…'' ''미아리고개예술극장'' 등 눈길

연극 ‘이번 생에 페미니스트는 글렀어’의 한 장면(사진=전진아, 페미씨어터).


[김소연 연극평론가] 제1회 페미니즘연극제(기획 페미씨어터·6월 20일~7월 29일 미아리고개예술극장·드림시어터·달빛극장)가 막을 내렸다. 연일 계속되는 불볕더위를 통과하며 40여 일간 진행한 이번 연극제에서는 소극장 공연 6편, 야외공연 2편, 장소특정이동형 공연 1편, 그리고 번외편처럼 진행한 낭독공연 2편까지 첫 회임에도 풍성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소극장 공연도 드라마로 전개되는 희곡 중심의 공연은 두 편이었다. 자기 고백적인 강연 형식의 작품들부터 실제 인물의 인터뷰가 삽입되는 등 여성주의를 주제로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차별’을 이야기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졌다.

‘이번 생에 페미니스트는 글렀어’(제작 페미니스트극작가모임 호랑이기운·6월 20~24일 미아리고개예술극장)는 자신의 삶에서 여성주의적 관점을 견지하고자 하는 ‘지옥’과 ‘지은’ 두 인물의 고군분투를 다룬다. 무대를 상하로 나눠 두 인물의 공간을 분리하고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지옥의 알콩달콩 사랑싸움 같은 일상적 장면과 연극계 미투운동 이후 배우로서 자신의 작업과정을 되돌아보는 지은의 성찰적 독백이 교차된다.

마치 두 인물이 대비되는 듯이 전개되지만 사랑이건 분노이건 세상의 관습에 눈감지 않고자 할 때 두렵고 버거운 것은 마찬가지다. 연극은 두 인물을 통해 우리가 만나게 되는 다양한 차별과 폭력을 드러내면서도 비판에 멈추지 않고 그에 맞서는 의지와 행동, 그 과정의 갈등을 섬세하고 따뜻하게 그려낸다.

연극 ‘미아리고개예술극장’의 한 장면(사진=박동명, 페미씨어터).


‘미아리고개예술극장’(제작 여기는당연히극장·6월 28~7월 1일 미아리고개예술극장)은 배우 ‘이리’의 모노드라마다. 이리는 연극배우이고,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고, 고양이를 키웠지만 좁은 옥탑방에는 고양이 장난감만 남아 있다. 연극이 끝나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여호와의 증인 선교 활동을 했고 지금은 행인들의 다리가 올려다보이는 창이 난 반지하에서 애인과 사랑을 나눈다.

두서없이 전개되는 이야기에는 청년주거·연극·배우·퀴어 등 우리 사회 약자들의 삶의 양태들이 교차된다. 배우 이리는 결코 만만치 않은 삶을 과장 없이 담담하게, 때로 날카롭게 현실의 이면을 들추면서도 시종 유쾌함을 잃지 않음으로써 자신과 우리의 지친 삶을 위로한다.

이외에도 장애인 여성의 성문제를 다룬 ‘조건 만남’ 등 페미니즘연극제는 ‘여성주의’라는 테마를 통해 미처 드러나지 않았던, 혹은 돌아보지 않았던 삶의 세세한 국면들을 무대 위에 펼쳐놓았다. 우리는 극장에서 또 다른 삶의 모습, 또 다른 삶의 갈등을 만난다. 여성주의라는 시선이 세상을 얼마나 넓고 깊게 볼 수 있는지, 연극을 얼마나 더 다채롭게 하는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축제가 막 끝난 지금 내년 축제를 기다리는 이유다.

연극 ‘이번 생에 페미니스트는 글렀어’의 한 장면(사진=전진아, 페미씨어터).
연극 ‘미아리고개예술극장’의 한 장면(사진=박동명, 페미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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